2006년도 대산문학상 예심 결과

제14회 대산문학상 예심이 8월 25일 끝났다. 시와 소설 부문에서 진행된 예심은 두달 남짓의 기간 동안 진행되어 각 부문 10편의 본심대상작을 내놓았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시 부문에 『밤 미시령』(고형렬 作) 외 9편, 소설 부문에 『빛의 제국』(김영하 作) 외 9편이다(표 참조).

재단은 대산문학상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지난해 대산문학상 발전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2005년부터는 변경된 운영방안에 의해 시, 소설 부문은 예․본심의 양심제로 운영하고, 희곡, 평론, 번역 부문은 단심제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본심에서는 심사위원 수를 늘리고 약 두달 동안 충분한 독회 및 토론을 가진 후 무기명 투표로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따라서 예심은 시, 소설 부분에서 진행되어 2005년 4월부터 2006년 8월까지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진행되었다. 예심은 시부문에 김기택 김정란 임동확, 소설부문에 김동식 류보선 서하진 이승우 선생이 수고했다.

예심에서는 지난 1년간 한국문학이 쏟아낸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그 속에서 본심에 오를 10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다양한 문학적 성향과 작가의 세대를 넘어 작품의 문학성, 독창성, 보편적 가치를 심사기준으로 하여 부문별로 선정된 10편의 작품들은 한국문학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심은 8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약 2개월 동안 진행되어 부문별로 약 3회의 독회를 갖는다. 심사위원은 부문별 5명이다. 수상작 선정은 마지막 모임에서 최종 논의작에 대한 투표를 통해 심사위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1작품으로 한다. 적절한 후보작이 없는 경우에 수상작을 내지 않는 원칙에 따라 작년에는 희곡부문의 수상작이 없었는데, 올해는 전 부문에서 수상작이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시상식은 11월 24일(금)에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제14회 대산문학상 본심대상작(시, 소설)

     < 시 >  

작품

저자

출판사

밤 미시령

고형렬

창비

가만히 좋아하는

김사인

창비

냄비는 둥둥

김승희

창비

캣츠아이

노혜경

천년의시작

문인수

문학동네

상자들

이경림

랜덤하우스중앙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토종닭 연구소

장경린

문학과지성사

님시집

하종오

애지

야생의 꽃

허만하

  < 소설 >

작품

저자

출판사

시계가 걸려있던 자리

구효서

창비

빛의 제국

김영하

문학동네

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창비

낙서문학사

김종광

문학과지성사

펭귄뉴스

김중혁

문학과지성사

강산무진

김훈

문학동네

소설 법

박상륭

현대문학

배수아

문학동네

보이지 않는 손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희고 둥근 달

정찬

현대문학

예심 심사평

<시부문>

  많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시의 죽음을 진단했었다. 그러나 시는 여전히 쓰여진다. 여전히 쓰여질뿐만 아니라 점점더 많이 쓰여진다는 생각마저 든다. 심사 대상인 시집은 줄잡아 수 천 권에 달했다. 엄청나게 많은 시집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는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견, 신인 할 것 없이 모두들 부지런히 걷고 있다. 그 걸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든, 시인들의 걸음은 성실해 보인다.

  화려한 영상 문화의 그늘에서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은 거의 종교적 열정을 요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시가 더 이상 문화의 중심이 아닌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 각자가 스스로의 것으로 인지하는 소명 안에서 시의 작업은 아직 그 생생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시의 표면적 위상이 무너지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 의미는 생생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시인들은 모두 내면의 화사한 자율성과 그 자율성을 점점 더 깊이 침해하고 해체시키는 외적 요건들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중간지대를 탐색하고 있다.

  우리는 열 권의 시집을 최종심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허만하의 『야생의 꽃』은 사물의 팍팍한 껍데기 속으로 시적 시선을 끊임없이 침투시킨다. 그 시선에 의해 사물의 껍데기는 스르르 열려 의미를 생성시킨다. 문인수의 『쉬!』는 세계와 자아의 새로운 관계를 집요하게 탐색한다. 대체로 사물은 말이 없지만, 시인은 인간의 껍데기를 허물어 사물과의 관계 안에 재배치시킨다. 고형렬의 『밤 미시령』은 풍경의 쓸쓸한 표면을 돌아다니는 산책자의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성찰은 빼곡하게 시인의 내면을 채우고 있다. 그 성찰 안에서 시인의 사람됨의 색채가 드러난다. 이경림의 ꡔ상자들ꡕ은 한국시가 도달한 묘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사물을 언어의 그물로 포획하는 데 비상한 재능을 보인다. 뿐더러 사물은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스며나오는 쓸쓸함과 허망함을 겸손한 사색의 회로 안에서 성찰적으로 기록한다. 노혜경의 『캣츠아이』는 상상력의 지평을 아주 멀리까지 밀어붙인다. 그 내면성의 생생함, 그리고 영적 깊이는 일찍이 한국 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김승희의 『냄비는 둥둥』은 문명의 사물들 안에서 사회적/철학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 장석남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는 언어를 능숙하게 다룬다. 그것이 죽음을 다스리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을 이 시집은 내색하지 않고 말한다. 장경린의 『토종닭 연구소』는 사회적 정황 안에 처한 시인의 어려운 위치를 지성적 언어 안에 힘차게 담아낸다. 하종오의 『님시집』은 사람에 대한 집요한 탐구이다. 그들의 생생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시인의 시선은 촘촘하고 익살스럽다.

  고독 안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시인들은 모두 기릴만하다. 그들은 모두 상찬 받아 마땅하다. 시가 문화의 가장 앞선 지표인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러나, 심사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시인들이 너무 자잘한 일상에 매달려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일상의 묘사가 문화적 저항의 표지인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깊이와 규모가 한국시에 필요하다. 그리고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재현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새로운 터를 발명하여, 안으로부터 기둥을 일으켜 세우는 사유와 상상력의 힘도 필요하다. 

                                                               김기택 김정란 임동확

<소설부문>

  2006년 대산문학상 소설부문 예심은 모두 3번의 회의를 거쳤다. 6월 27일의 1차 회의에서는 심사대상 및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심사일정을 조정하였다. 2005년 4월부터 2006년 8월까지 발간된 국내 소설 단행본들을 대상으로, 각각 10편씩을 추천한 후 다수결 원칙에 의해 본심 대상작을 가리되, 논의가 필요하거나 심사과정 중에 발표된 신작들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선정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그 후 약 한달 남짓한 동안 예심위원들은 예심 대상작들을 면밀히 검토하였고, 8월 9일의 2차 회의에서 예심위원들이 추천한 작품들을 조합하여 5편의 작품을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논의가 필요한 작품들과 8월에 발간된 신작들에 대해서는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다. 8월 25일의 3차 회의에서는 13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논의․추천하는 과정을 거쳐 추가로 5편을 본심 대상작으로 결정하였다. 본심에 추천할 10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무순)

  박상륭의 ꡔ소설법ꡕ은 소설 바깥과 소설 이전의 글쓰기 영역에서 소설의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다시 사유하며, 복거일의 ꡔ보이지 않는 손ꡕ은 한국의 현대사를 거쳐 온 지식인-소설가의 체험과 사유를 소설적 육체 속에 담아내고 있으며, 김훈은 ꡔ강산무진ꡕ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통해서 허무의 발생학을 치열하게 펼쳐 보인다. 구효서의 ꡔ시계가 걸렸던 자리ꡕ는 탄생과 소멸의 모티프의 섬세한 변주를 통해서 새로운 자아의 생성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으며, 정찬은 ꡔ희고 둥근 달ꡕ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며 인간의 영혼에 대한 치밀한 탐구를 보여준다. 김인숙은 ꡔ그 여자의 자서전ꡕ에서 여성의 삶에 드리워진 억압과 자율의 이중적 변주를 통해서 여성을 바라보는 새로운 문학적 시선을 제시하며, 배수아의 ꡔ훌ꡕ은 자기분열적인 발화와 시점의 기묘한 배치를 통해서 타자와의 경계선을 공유하는 문학적 주체의 자리를 보여준다. 또한 김영하는 ꡔ빛의 제국ꡕ에서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변화를 현대적 일상의 계보학으로 탈바꿈시켜 제시하고 있으며, 김종광의 ꡔ낙서문학사ꡕ는 낙서를 통해서 문학에 잠재된 또는 문학이 잊고 있던 하위문화적 전복성을 다시 사유하며, 김중혁은 ꡔ펭귄 뉴스ꡕ에서 사물과 도구의 존재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2006년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10편에는 수십 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원로작가, 문학적 원숙기에 이른 중견작가, 그리고 이제 첫 작품집을 낸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다양한 세대들이 망라되어 있다. 본심 대상작 중에서 장편소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예심 과정은 한국문학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대산문학상이 다양하면서도 새로운 문학성들이 분출하는 문학적 축제의 장이 되길 기원한다.

                                                      김동식 류보선 서하진 이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