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①우리 공동체의 테두리와 깊이 ②언제든 다시 광장으로 ③국경을 지우기, 이주민을 환대하기 ④소수자, 현장, 연결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1920~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음식에 대한 몇 가지 소묘
첫번째｜먼 우레처럼, 두번째｜열등감에 대하여 세번째｜너무 빨리 온 미래 네번째｜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는 것
글밭단상
2015년 가을, 강원도 사북으로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한때, 동양 최대 탄광이던 동원탄좌는 ‘사북석탄유 물보존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작업복, 안전등, 장화, 각종 기계, 월급봉투, 작업일지, 탄 때 묻은 검 은 비누, 머리빗까지 그때 광부들의 시간을 그대로 보 여주는 수많은 물건들로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광부들을 갱 안으로 실어 나르던 인차를 타보 는 경험을 하고서야 그곳을 조성한 이들이 그곳에서 일했던 광부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지난 삶에 큐레이터가 되고 관광가이드가 된 사람들의 심정을 다 이해할 길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갱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급 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입구를 지난다는 느낌 - 자연히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문에 있다는 문구가 떠 올랐다. ‘이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광부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언제 무 너질지 모를 검은 하늘 아래 살아야 했던 그때 그들의 삶이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간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난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정사진 앞에 서고,
집회에 나가고,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주위를 맴돌기만 했을 뿐,
유가족들에게 말 한 번 붙여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 한 집회에서
유가족들과 집회 참석자들을 마주보게 한 후 인사를 하게 한 적이 있다. 난
처음으로 1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만났다.
그때 내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래 전 보게 된 광부들의 사진 - 얼룩진 얼굴과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와 갱을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을 보면 서 어떤 경외심을 넘어 ‘열등감’을 느꼈다. 인생의 막장이라 불리는 곳, 죽음 바로 옆에서 생을 살아야 하는 그들은 평범한 내가 알 길 없는 수많은 비의(秘義)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난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정사진 앞에 서고, 집회에 나가고, 그 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주위를 맴돌기만 했을 뿐, 유가족들에게 말 한 번 붙여볼 용기가 나 지 않았다. 언젠가 한 집회에서 유가족들과 집회 참석자들을 마주보게 한 후 인사를 하게 한 적이 있다. 난 처음으로 1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만났다. 그때 내 아이들도 함께 있었 는데, 아이들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 역시 아무 준비 없이 맞닥뜨린 그 순간이 당 황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리보 다 더 얼어붙어 있던 그들의 표정이다. 우린 사회자의 신호에 따라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얼 싸안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강력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것을 바로 곁에서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히 구분지어지는 순 간의 공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검은 하늘은 그들을 덮쳐 쓰러뜨릴 만큼 막강해졌고, 투명인간들 혹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 다. 난 그들이 미소 짓는 것을 보았고, 농담하는 소릴 들었고, 그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말 하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광장 한 복판에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는 이 세계의 비의(秘義)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고통과 슬픔의 대상만이 아니 다. 오랫동안 그들에게 느껴온 감정은 연민이나 미안함, 부끄러움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현 실만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열등감이다. 언제 쓰게 될지 자신 없었던 그 이 야기는 올해 3월, ‘검은 입김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초고를 냈고, 7월 대학로의 가장 작은 극 장,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된다.
난 아직도 그들이 본 것을 옮길 능력이 없다.
두번째｜열등감에 대하여
글 고연옥 ㅣ 극작가. 1971년생
희곡집 『인류 최초의 키스』 『고연옥 희곡집 2』
『웃어라 무덤아』 『처의 감각』 등
열등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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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보게 된 광부들의 사진 - 얼룩진 얼굴과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와 갱을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을 보면서 어떤 경외심을 넘어 ‘열등감’을 느꼈다. 인생의 막장이라 불리는 곳, 죽음 바로 옆에서 생을 살아야 하는 그들은 평범한 내가 알 길 없는 수많은 비의(秘義)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2015년 가을, 강원도 사북으로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한때, 동양 최대 탄광이던 동원탄좌는 ‘사북석탄유 물보존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작업복, 안전등, 장화, 각종 기계, 월급봉투, 작업일지, 탄 때 묻은 검 은 비누, 머리빗까지 그때 광부들의 시간을 그대로 보 여주는 수많은 물건들로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광부들을 갱 안으로 실어 나르던 인차를 타보 는 경험을 하고서야 그곳을 조성한 이들이 그곳에서 일했던 광부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지난 삶에 큐레이터가 되고 관광가이드가 된 사람들의 심정을 다 이해할 길은 없었지만, 그들과 함께 갱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급 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입구를 지난다는 느낌 - 자연히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지옥문에 있다는 문구가 떠 올랐다. ‘이곳에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광부들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언제 무 너질지 모를 검은 하늘 아래 살아야 했던 그때 그들의 삶이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간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난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정사진 앞에 서고,
집회에 나가고,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주위를 맴돌기만 했을 뿐,
유가족들에게 말 한 번 붙여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젠가 한 집회에서
유가족들과 집회 참석자들을 마주보게 한 후 인사를 하게 한 적이 있다. 난
처음으로 1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만났다.
그때 내 아이들도 함께 있었는데, 아이들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래 전 보게 된 광부들의 사진 - 얼룩진 얼굴과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미소와 갱을 나서는 그들의 발걸음을 보면 서 어떤 경외심을 넘어 ‘열등감’을 느꼈다. 인생의 막장이라 불리는 곳, 죽음 바로 옆에서 생을 살아야 하는 그들은 평범한 내가 알 길 없는 수많은 비의(秘義)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난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정사진 앞에 서고, 집회에 나가고, 그 들과 함께 걸었다. 그러나 주위를 맴돌기만 했을 뿐, 유가족들에게 말 한 번 붙여볼 용기가 나 지 않았다. 언젠가 한 집회에서 유가족들과 집회 참석자들을 마주보게 한 후 인사를 하게 한 적이 있다. 난 처음으로 1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만났다. 그때 내 아이들도 함께 있었 는데, 아이들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 역시 아무 준비 없이 맞닥뜨린 그 순간이 당 황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리보 다 더 얼어붙어 있던 그들의 표정이다. 우린 사회자의 신호에 따라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얼 싸안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강력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것을 바로 곁에서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히 구분지어지는 순 간의 공포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위로 드리워진 검은 하늘은 그들을 덮쳐 쓰러뜨릴 만큼 막강해졌고, 투명인간들 혹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 다. 난 그들이 미소 짓는 것을 보았고, 농담하는 소릴 들었고, 그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말 하고 싸우는 것을 보았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광장 한 복판에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는 이 세계의 비의(秘義)를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고통과 슬픔의 대상만이 아니 다. 오랫동안 그들에게 느껴온 감정은 연민이나 미안함, 부끄러움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현 실만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열등감이다. 언제 쓰게 될지 자신 없었던 그 이 야기는 올해 3월, ‘검은 입김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초고를 냈고, 7월 대학로의 가장 작은 극 장,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된다.
난 아직도 그들이 본 것을 옮길 능력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