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가 지은 일본식 목조건물

▲벨기에 벽돌로 지어진 군산세관

근래 군산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주말 군산행 고속버스는 늘 붐빈다. 이채로운 일이다. 이성당, 히로쓰 가옥, 복성루, 초원사진관, 경암동 철길, 동국사 등등이 관광객들의 주요 대상이다. 한 해 1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근대역사박물관이 그 중심이고 그 옆의 옛 군산세관(프랑스인 설계, 벨기에 벽돌로 짓고 화강암 마감. 1908년)도 그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근래 군산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주말 군산행 고속버스는 늘 붐빈다. 이채로운 일이다. 이성당, 히로쓰 가옥, 복성루, 초원사진관, 경암동 철길, 동국사 등등이 관광객들의 주요 대상이다. 한 해 100만 명 넘게 방문하는 근대역사박물관이 그 중심이고 그 옆의 옛 군산세관(프랑스인 설계, 벨기에 벽돌로 짓고 화강암 마감. 1908년)도 그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철새관광지를 보러오는 사람도 있었고 은파저수지와 물빛다리를 걷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경암동에서 채만식문학관과 금강하구둑에 이어지는 해변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새만금개발에 따라 폐항(?)이 된 하제포구를 보러오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관광지수의 측정계라 할 수 있는 택시기사에게 물으면 앞에서 말한 주요 관광지는 근래 변화했다.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월명동 일대를 찾는 사람들, 둘째는 경암동의 철길, 은파유원지와 물빛다리를 거닐러 오는 사람들, 셋째 신시도를 기점으로 하는 선유도 일대의 관광객 등이 그것이다. 수년 전부터 군산여행이 인문여행이 되어야한다고 주창하는 이성환(모산방 경영)씨는 동백대교개통과 함께 고군산 열도 중심의 해상관광이 앞으로 새로운 중심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실제로 군산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 낯설다. 불과 십여 년 동안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군산에 사는 사람들은 앞서 말한 곳이나 건물들이 살며 늘 보아왔기에 그리 특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려니와 십여 년 전, 해망동 산비탈의 집들을 대상으로 무슨 ‘프로젝트’를 한다면서 허물어져가는 집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골목에 알록달록한 표지판을 붙이더니 어느 날은 그림작업은 물론 집이나 골목조차 모두 철거하고 나무를 심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던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탁류』는 물이 아니라 군산 사람들의 얼굴이다 글 강형철 ㅣ 시인. 1955년생 시집 『해망동 일기』 『야트막한 사랑』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환생』, 평론집 『시인의 길 사람의 길』 『발효의 시학』 등

관광이란 말은 풀면 빛을 본다는 말인데 이렇게 오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나름의 빛을 찾아갈까? 이즈음 관광이란 말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것을 보는 것으로도 쓰이고 특별한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도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쌀로 만든 빵이라는 특별한 의미의 이성당 빵이나 한 사발 가득 나오는 홍합껍질을 집어내며 시원한 국물과 함께하는 복성루의 짬뽕맛이 특별하기 때문에 올 수도 있다. 한때 푸짐하고 다양한 밑반찬 해물류는 물론 값이 싸면서도 신선한 생선회를 먹기 위해 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윤리적 선을 밀어제치고 희소성 중심의 경제적 가치가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세상(이반 일리치)에서 고유한 맛을 그리워하고 푸짐한 옛정을 상기하며 옛 건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군산이란 곳의 정취를 찬찬히 음미하는 일도 그런 점에서 귀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얘기한 건물과 지명들은 특별하게는 우리 역사의 치욕이라 할 수 있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의 유산인 바 그 의미를 상기하며 오늘의 군산을 보고 그 앞날을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럴 때 사람들에게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 있다. 군산의 역사와 문화 등등을 깊이 있게 살핀 책들이다. 『근대 항구도시 군산의 형성과 변화』(김영정 소순열 외, 한울아카데미, 2006), 『해륙의 도시 군산의 과거와 미래』(김종수 김민영 외, 선인, 2009), 『군산의 근대 풍경: 역사와 문화』(공종구 김민영 외, 도서출판 선인, 2015)이 그것이다. 또한 군산 답사의 필독서라 할 수 있는 『군산 답사여행의 길잡이』(김중규, 도서출판 나인, 2003)는 군산의 역사 관광의 광범위한 안내서고, 『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이동훈 강석훈 외, 글누림, 2014)는 요즘 젊은이들의 관광 여행의 깊이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중 앞의 세 권을 중심으로 개략적인 군산의 역사를 본다.
군산은 항구로서 개항하기 이전에도 금강 하구 수륙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로부터 선사문화가 발달하였고 삼국통일기에는 한중일 삼국이 접전을 벌였으며 고려 말에는 진포대첩의 현장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조운과 상업이 발달하였던 곳이다. 즉 군산은 개항 이전부터 우리 역사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군산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문호개방이 강요되었다(『해륙의 도시 군산의 과거와 미래』, 23쪽)

  

▲ 채만식문학관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군산은 1899년 5월 1일 ‘대한제국 정부’ 외부(外部)의 청원과 의정부의 결정에 의해 개항한다. 고종 황제의 세력 균형 정책, 독립협회의 자유무역주의에 의한 개항정책 주장, 정부의 재정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개항 이후 한성에서 한국 외부대신과 일본, 프랑스 등의 사신 간에 각국조계장정이 체결되고 약 17만평에 해당하는 공동조계계획이 승인된다. 하지만 실제의 조계상태는이름만 각국조계였지 일본 전관조계나 다름없었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은 대한정부에 압력을 가해 강안매축공사와 고정잔교시설에 투자하게 하여 군산항은 본격적으로 항구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군산항이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개항된 항구가 아니고 대한제국의 뜻으로 개항했다는 점은 주목할점이지만 개항 이후 전주 군산 간 도로(전군도로)가 우리나라 제1호 포장도로였다는 사실에서 보듯 식민지수탈정책이 군산의 외부변화의 핵심 요인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개항 이후 군산은 크게 보아 세 시기로 나누어 변화하는데 첫 번째로 식민도시 형성 발전기(1899~1945)두 번째로 도시발전의 정체 쇠퇴기(1945~1985) 세 번째로 자본주의 도시화 이행 도약기(1985년 이후)다. 이는 식민지 도시, 정체도시, 성장전략도시로 개념화된다.
1899년 개항된 군산항은 일제의 필요에 의해 개발된 식민지 수탈 거점항이었다. 김제 만경평야 등지에서 생산된 쌀을 자국으로 수출하고 전북지역의 모든 상공업품을 관리 통제할 목적으로 성장시킨 식민지 거점도시로서, 1914년에 부(府)로 승격된 이후 1945년 해방 당시 까지 인구·경제·산업 등 제 분야에서 가속적인 성장을 보인 도시였다(김영정 외, 『근대 항구도시 군산의 형성과 변화』, 한울, 2006. 참조).

▲  일제가 쌀수탈을 위해 설치했던 군산항 뜬다리

 

▲ 장항과 군산을 잇는 동백대교

 

일제 식민지 시대에 달성된 성장의 영향은 해방 이후 1960년대에까지 미쳐 1965년 군산시의 인구 및 생태적 자원의 집적도는 서울, 대구에 이어 전국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이후 군산의 경제, 인구, 문화시설 등 주요 도시 구성 요인의 집적도는 크게 하락한 반면, 수도권과 영남권의 집적도는 절대적·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했고 이러한 군산시의 침체현상은 1980년대 중반까지 가속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된 이유로 연구자들은 1970년대 초반 이후 수도권과 영남 지역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고 진행된 국가차원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남지역은 지역 편향적 경제발전 정책의 대표적인 피해지역으로 규정될 수 있고 군산시는 정책적으로 소외된 도시의 퇴행적 발전이 어떻게 진전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다”(15쪽). 군산시민의 입장에서 쉽게 말하면 박정희 정권 이후 군산은 지독한 정체상태로 일관됐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한 경제적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정치적 이해와 대공산권무역의 활성화를 위한 무역 전진기지의 개발이라는 정책적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군산시는 비로소 자본주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그러한 계획의 기반사업으로 금강 하구둑 공사, 새만금 간척사업, 군산항 부두 건설공사 등이 착공, 완공되면서 이른바 새만금시대의 거점도시로서 거듭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의 군산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와 설명으로 군산을 다 말할 수 없다.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하고 쇠락해간 외부적 환경을 설명하고 있으나 그 환경을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사람살이 모습이 빠진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군산에 오기 전에 채만식의 『탁류』 읽기를 권하고 싶다. 여기엔 식민지 시대 군산 사람들의 진정한 맨얼굴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소설 『탁류』는 그 시대의 군산을 배경으로 곤혹스런 민중의 삶이 지닌 치욕과 굴욕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대비하여 이른바 주류세계의 흉악하고 난폭함을 정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아버지 정주사는 물론 은행원 고태수, 약국주인 박제호, 어음할인꾼 장형보로 상징되는 지배세계의 온갖 협잡과 탐욕 속에서 만신창이로 부서지다가 “내가 느이허구 무슨 원수가 졌다고 요렇게두 내게다 핍박을 하느냐? 이 악착스런 놈들아… 아무 죄도 없구, 아무도 건드리잖구 바스락 소리도 없이 살아가는 나를, 어쩌면 느이가 요렇게두 야숙스럽게… 아이구우 이 몹쓸 놈들아!” 외치며 장형보를 살해하는 행위를 통해 슬픔의 저 극단, 절망의 끝에서 간신히 새 삶을 열어가는 초봉의 한 많은 삶이야말로 식민지 조선 민중의 맨얼굴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흙탕물 속 사람들의 얼굴!
썰물 후에 군산항 뜬다리 앞에 서면 개펄 위에 얹혀 기울어진 배들을 볼 수 있다. 영락없는 폐선들의 집합체로 보인다. 처량한 폐선들이 어떻게 항해할 것인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러나 밀물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뱃전에 바닷물을 함뿍 축이면서 배들은 설렌다. 온 항구가 깊은 속살을 서로의 몸에 문대면서 붐빈다.
그렇게 먼 바다를 향해 관절을 풀고 생기를 찾은 배들을 보면 채만식의 『탁류』에서 또 다른 주인공인 가난한 의사 남승재를 보는 것 같다. 첫사랑의 주인공 초봉의 참혹한 인생 전체를 보면서도 거기에 패배하지않고 도리어 희망을 기어코 찾아내는 남승재의 모습을. 초봉의 동생 계봉과 함께 참된 사랑과 당당한 동지애를 다짐하면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온마음으로 나누는 정성스럽고도 뜨거운 입맞춤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식민지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그 이후의 정치 경제적 불공평을 통과하여 새만금과 함께 저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군산 사람들과 군산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군산 군도의 섬들인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마침내 선유도를 지나 또 다른 바다가 활짝 열리는 저 푸른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