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혜순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김혜순으로 살다가 다시 김혜순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지요!
특집을 기획하며 ①특별한 계기에 쓴 시 ②극지에서 고독에 떨며 피흘리며 쓴 「사람의 가을」과 「응」 ③운명적인 만남 ④저주받은 걸작은 끝내 쓰지 못한 걸작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걸어온 시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소설에서의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①새로운 개성과 공감의 가능성을 열다 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번역 후기
“선생님, 저 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했어요”라며 찾아오는 학생들이 가 끔 있다. 그러면 “그래? 왜 그렇게 좋은 생각을 했어?”라고 말하며 “좋 은 작품 그냥 읽지”라고 생각한다. 해서 결국은 묻는다. “부자가 될 생 각은 없는 거지?” 이번 학기에 번역 워크숍에서 김경욱 작가의 단편 「스 프레이」를 다루었고, 그 워크숍에 참가했던 학생 둘도 문학 번역가가 되 고 싶단다. 어쩌나.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고 작가가 되 는 것은 아니듯,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잘한다고 해서 번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번역. 세상에 있는 쉽지 않은 일 중 하나이다.
작업 방법은 번역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는 독일인과 공동번역을 하 는데 우리의 방법은 이렇다. 우선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부터 시작해서 최대 한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 번역 결정을 한다. 그다음 내가 멋지게 완성한 원고를 공동번역자에게 보내고, 얼마 후 그 원고가 빨강 내지 파랑으로 색칠이 되어 돌아온다. 아주 다양한 질문을 달고. 그다음 만나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가며 싸운다. 그렇게 다섯, 여섯 번 원고를 읽고 고치고 하다 보면 처음 내가 완성한 원고와는 다소 다르지만 나름 멋진 원고가 나온다. 거기까지 이어지는 토론은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가 소 설 한 권 번역하는 데 몇 년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인용된 <아비정전>의 대사를 번역하기 위해 우선 그 영화를 찾아서 봤고, 그 문 장의 원본을 비롯해 한국어, 영어, 독일어 번역문을 살펴보고 번역을 완성했다. 시작한 김에 <천녀유혼> 도 봤고 <영웅본색>도 다시 봤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번역하려고 존 오즈번의 희곡을 읽었고, 『낭만 적인 서사와 적들』에는 철학자들의 인용이 여러 개 있다. 그러니 그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의 원본은 불어이고, 나는 불어는 못 하지만 한국어와 독일어 번역본을 조금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비틀스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번역할 시간이 없다.
물론 힘든 부분도 여럿 있다. 이번 번역서에 속한 단편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중 홈쇼핑 채널에 서 만능 밥솥을 판매하는 장면. “삼계탕부터 식혜까지 못 하는 요리가 없다고 호스트가 힘주어 말 했다.” 그런데 독일사람은 삼계탕도 식혜도 모른다. 해서 처음에는 짧은 주석을 달아 이 음식을 설 명했다. 번역원고를 세 번째 읽으면서 “닭을 통째로”와 “쌀로 만든 음료”라고 고쳤다. ‘갔던’, ‘가는’ 유형의 분사가 많은 한국어 문장은 독일어로 옮기면 대부분 주문장과 부문장이 생겨서 원문은 간 단한데 번역문에서는 꽤 긴 문장이 될 수 있다. 원문의 리듬을 최대한 살리면서 어떤 때는 마침표 로 여러 문장을 만들고, 또 어떤 때는 세미콜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단어인 “눈곱”을 “잠”이라고 풀어서 쓰는 독일어가 근사하긴 하나, 독일어에 “장 롱면허”나 “셔터맨”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개념은 어렴풋이 존재한다. 문학 번역을 얘기할 때 문화 번역이란 말이 함께 언급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문학에 많이 등장하는 무명씨들. “그” 내지 “그녀”를 주어로 하는 간단명료한 문장들의 번역은 쉽지 않다. 독일어의 모든 명사가 여 성, 중성 또는 남성의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가 그에게 그를 하나 주문했다”라는 이 상한 문장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어떤 작품이든 문맥상 이상하게 어색한 문장이 하나쯤은 있다.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번역본에서는 살며시 사라지는 문장 내지 문구. 그런 것은 잘 기억했다 가 앞이나 뒤에 딱 맞은 자리가 생기면 살짝 끼워 넣기도 한다. 이번엔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에서 이런 소형 정형이 있었다(작가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를 찾아 나선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다. 대부분은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의 원고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 와는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어 우리도 대단히 아쉽습니다.”라는 답장이 온다. 이 제는 이런 말에 실망할 단계는 넘어섰다.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내 맘에 드는 답을 하고, 책이 출판 된다. 하지만 출판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분명 고치고 싶은 문장이 발견될 터이니. 작품이 어떤 반 응을 가져올지, 누군가 읽기는 할지, 그런 것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이 그렇 다던데, 나도 번역하면서 쌓인 지식이 책 출판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렇지 않다 면 지금쯤 필시 만물박사가 되어 있을 텐데. 그렇게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자, 이제 『개와 늑대의 시간』 번역을 새로 시작했으니, 나에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온 셈이다.
13개의 소단원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라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던데.
독일 사람은 모르는 ‘삼계탕’과 ‘식혜’ 그리고 수많은 ‘무명氏들’
독역 김경욱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
글 김혁숙 ㅣ 번역가, 프랑크푸르트대학교 한국학과 강사, 1963년생
역서 『노을』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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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다고 작가가 되 는 것은 아니듯,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잘한다고 해서 번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번역. 세상에 있는 쉽지 않은 일 중 하나이다.
작업 방법은 번역가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나는 독일인과 공동번역을 하 는데 우리의 방법은 이렇다. 우선 내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부터 시작해서 최대 한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 번역 결정을 한다. 그다음 내가 멋지게 완성한 원고를 공동번역자에게 보내고, 얼마 후 그 원고가 빨강 내지 파랑으로 색칠이 되어 돌아온다. 아주 다양한 질문을 달고. 그다음 만나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 가며 싸운다. 그렇게 다섯, 여섯 번 원고를 읽고 고치고 하다 보면 처음 내가 완성한 원고와는 다소 다르지만 나름 멋진 원고가 나온다. 거기까지 이어지는 토론은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가 소 설 한 권 번역하는 데 몇 년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인용된 <아비정전>의 대사를 번역하기 위해 우선 그 영화를 찾아서 봤고, 그 문 장의 원본을 비롯해 한국어, 영어, 독일어 번역문을 살펴보고 번역을 완성했다. 시작한 김에 <천녀유혼> 도 봤고 <영웅본색>도 다시 봤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번역하려고 존 오즈번의 희곡을 읽었고, 『낭만 적인 서사와 적들』에는 철학자들의 인용이 여러 개 있다. 그러니 그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의 원본은 불어이고, 나는 불어는 못 하지만 한국어와 독일어 번역본을 조금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비틀스도 들어야 한다. 그래서 번역할 시간이 없다.
물론 힘든 부분도 여럿 있다. 이번 번역서에 속한 단편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중 홈쇼핑 채널에 서 만능 밥솥을 판매하는 장면. “삼계탕부터 식혜까지 못 하는 요리가 없다고 호스트가 힘주어 말 했다.” 그런데 독일사람은 삼계탕도 식혜도 모른다. 해서 처음에는 짧은 주석을 달아 이 음식을 설 명했다. 번역원고를 세 번째 읽으면서 “닭을 통째로”와 “쌀로 만든 음료”라고 고쳤다. ‘갔던’, ‘가는’ 유형의 분사가 많은 한국어 문장은 독일어로 옮기면 대부분 주문장과 부문장이 생겨서 원문은 간 단한데 번역문에서는 꽤 긴 문장이 될 수 있다. 원문의 리듬을 최대한 살리면서 어떤 때는 마침표 로 여러 문장을 만들고, 또 어떤 때는 세미콜론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단어인 “눈곱”을 “잠”이라고 풀어서 쓰는 독일어가 근사하긴 하나, 독일어에 “장 롱면허”나 “셔터맨”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 개념은 어렴풋이 존재한다. 문학 번역을 얘기할 때 문화 번역이란 말이 함께 언급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문학에 많이 등장하는 무명씨들. “그” 내지 “그녀”를 주어로 하는 간단명료한 문장들의 번역은 쉽지 않다. 독일어의 모든 명사가 여 성, 중성 또는 남성의 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가 그에게 그를 하나 주문했다”라는 이 상한 문장이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어떤 작품이든 문맥상 이상하게 어색한 문장이 하나쯤은 있다.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번역본에서는 살며시 사라지는 문장 내지 문구. 그런 것은 잘 기억했다 가 앞이나 뒤에 딱 맞은 자리가 생기면 살짝 끼워 넣기도 한다. 이번엔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에서 이런 소형 정형이 있었다(작가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를 찾아 나선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다. 대부분은 몇 달이 지난 후 “당신의 원고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 와는 맞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어 우리도 대단히 아쉽습니다.”라는 답장이 온다. 이 제는 이런 말에 실망할 단계는 넘어섰다.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내 맘에 드는 답을 하고, 책이 출판 된다. 하지만 출판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분명 고치고 싶은 문장이 발견될 터이니. 작품이 어떤 반 응을 가져올지, 누군가 읽기는 할지, 그런 것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이 그렇 다던데, 나도 번역하면서 쌓인 지식이 책 출판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렇지 않다 면 지금쯤 필시 만물박사가 되어 있을 텐데. 그렇게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자, 이제 『개와 늑대의 시간』 번역을 새로 시작했으니, 나에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 온 셈이다.
13개의 소단원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진 작품이라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던데.
※ 독역 『Was? Leslie Cheung ist tot? 장국영이 죽었다고?』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독일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