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기획특집
반려묘 까맹이의 탄생과 고양이 죽이기 모티프
• 한국 현대소설에서 동물들은 처음에는 주로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되었다. 동물들은 구체적인 삶 의 이야기 속에서 온전히 제 몫을 가지고 등장하기보다는 대개 인간의 부정적인 수성(獸性)을 폭로 하고 비판하기 위해 동원되기 쉬웠다. 인간의 ‘짐승 같은’ 저열함이나 아둔함, 공격성과 반이성적 행동 및 욕망이 동물에 비유되었던 것이다. 널리 읽힌 작품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동이와 나귀 처럼 인간과 동물은 유비적 관계로 짝을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소설의 무대에서, 동물들은 주역 이거나 인간 옆자리를 얻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다만 때때로 인간 삶의 우화와 비유를 위한 자리에 개(이를테면,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의 생명력)와 학(이를테면, 황순원의 「학」의 인간애) 같은 동 물들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곤 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고양이 까맹이의 삶 역시 황 진사 집안의 하인 송 서방의 불운한 삶과 포개어 진다. 아씨의 손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복수를 당해 까맹이는 죽임을 당한다. 유일한 반려였던 까맹이 를 잃은 송 서방 역시 고양이의 부르짖음에 미친 듯이 따라나선 뒤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뒤로도 우 리 소설에서 자주 등장했던 ‘살묘(殺猫) 모티프’가 이 소설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보다 의미 있게 생 각할 점은, 고양이를 “유일한 벗”으로 여기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주인공의 태도에 있다. 소설의 형 식적 세련됨은 오늘날의 소설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반려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며 더불어 삶의 끝을 함께 할 정도의 동물 애호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반려동물 소설의 출현과 새로운 가족의 탄생
• 가축에서 애완동물로, 다시 반려동물로. 인간 삶과 문화가 시간에 흐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처 럼,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에 대한 관념도 변모한다. 우리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도 그런 인 식 변화와 더불어 달라졌다. 특별히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애호 현상은 소설의 지형 도마저도 바꾸어놓고 있을 정도다. 애완동물(pet)이 동물을 키우는 데서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을 강 조한 것에 비해,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더불어 사는 친구(伴侶)임을 강조한 말이다. 1983 년,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가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 이라고 한다(이원영,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문학과지성사, 2017, 16쪽).
동물이 장난감과 같은 사물이 아니라 가족이나 벗이라고 하는 인식은 동물학의 이론이나 동물 해 방 담론, 동물권(animal rights) 논의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삶의 양식 변화에도 크게 빚지고 있다. 핵 가족, 1인 가구,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族)의 증가나 인구의 노령화는 자연스레 가족의 빈 자리를 반려동물에게 내어주게 된 것이다. 반려동물은 이제 더 이상 ‘애완 장난감’이나 ‘움직이는 사물’ 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자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한 식구로서 인간의 벗이 되었다. 인간과 동물 관계 를 다루는 소설들도 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이형의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오늘날의 변화된 가족의 의미를 묻는 반 려묘 소설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제는 우리 소설의 중심에 반려동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윤이형의 이 소설은, 가족의 일원이자 동반자인 반려묘가 표제와 서사의 중 심에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살이가 고양이살이와 일정하게 포개어지면서 서사를 이룬다는 점에서 긴 시간을 뛰어넘어 김동인의 「송동이」의 뒤를 잇고 있다.
물론, 김동인의 창작 시대인 일제 식민지 시기의 동물 인식과 이즈음 윤이형 소설에 나타나는 동물 인식은 전혀 다르다. 또한, 두 소설이 가족사의 굴곡을 반려동물 이야기와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가 족관 역시 비교할만하다. 거의 전근대적인 계급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던 김동인 소설에서 고양이 역시 인간의 계급화 현상과 함께 종 차별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바, 그저 미물(微物)에 불과하다. 아씨의 신체를 훼손한 고양이가 사물처럼 죽임 당해도 항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인의 삶이 주인의 권력에 중속 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이 기르거나 보살피는 동물들 역시 인간의 처분을 기다리는 종속 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다만 「송동이」에서 송 서방은, 그 시대에 지배적인 사회 현상이자 이념인 인 간 계층화와 종 차별에 항거가 아니라, 비극적으로 스스로 자취를 감춤으로써만 예외적인 동물 사랑 을 표현할 뿐이다.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서는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 시대의 변화하는 가족상을 대변하는 주역이자, 사유와 공감을 촉발시키는 의미 있는 역할을 맡고 있 다. 윤이형 소설에서 고양이는 한 가족의 탄생과 확대, 해체와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함께 한다. 반려 묘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결혼이라는 제도와 육아의 고통, 이혼 뒤의 가족 분리에 대한 도저한 탐구가 이 소설을 이룬다.
‘희은’과 ‘정민’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이인 ‘초록’이 두 번째 고양이 ‘순무’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 은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거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희은의 경우,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반려묘의 죽음은 “그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그 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문학사상, 2019, 29쪽)고 할 정도로 심각한 충격이었다. 이 소설에 선 가족인 고양이들과의 동거 생활보다 결혼이란 제도를 통과해 부부가 되고 육아를 해나가는 과정 이 더 낯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희은이 일하게 되는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양육 방식을 실험한다. 연구소 대표는 말한다. “옛날에는, 여자는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니었어요. 가축 같은 존재였 죠.”(83쪽)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Man, 그러니까 남성-인간에 비해 차별받는 타자적 존재로서 동물과 여성은 그 권리를 뒤늦게 인정받았다. 그러니 남성-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달라진 가족 관계 속에서 동등한 존 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꼽는다면, 이른바 ‘테마 소설집’이라 불리 는 기획 소설선집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고양이’를 소재로 젊은 작가 11인이 집필한 소 설집 『캣캣캣』(현대문학, 2010)이나 ‘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을 부제로 삼은 미니픽션 주제소설집 『공공 연한 고양이』(자음과모음, 2019. 실제로는 ‘고양이 시점’의 소설만 다룬 것은 아니다. 주로 고양이 소재 를 선택한 소설들이다)를 주목해볼 만하다. 16편의 미니픽션을 수록한 주제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 자』(걷는사람, 2019)는 동물권을 주제로 했으니, 동물 소설의 윤리적 성숙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인간과 친숙하고 충성스러운 애완동물 또는 애교 넘치는 반려동물로 강아지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에서도 강아지는 매우 친숙한 동물 가운데 으뜸이었다. 최근에는 “나만 없어 고양이” 라는 새로운 표현이 낯설지 않다. 현대 도시의 싱글 라이프에는 특별히 고양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좁은 주거 공간에서도 잘 적응하고 냄새도 잘 나지 않아 목욕이 거의 필요 없고, 독립적인 성격도 현 대 도시인들의 삶에 잘 맞기 때문이란다. 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고양이 애호가는 차고 넘친다. 원고 마감을 위해 늦은 밤과 새벽까지 고독과 싸울 때 고양이는 좋은 벗이 된다고 고백하는 작가들도 있다. 조남주의 「테라스가 있는 집」(『공공연한 고양이』)도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처 럼 가족의 탄생 순간을 포착한다. ‘유성’과 ‘지나’라는 두 연인이 결혼과 신혼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하 는 과정을 그린다. 지나는 전세 원룸에서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기로 하는데, 그 테라스에서 고양이 ‘쿠키’가 비도 맞아보고 자연을 만끽하기를 희망한다. 쿠키가 집을 나가버리자 지나는 결혼을 취소하고 만다. 지나에게 결혼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본래 함께 살던 가족 쿠키였던 것. 그러니까 반 려묘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인간-동물 관계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서사로 편입된다고 할 수 있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는 작가, 최은영의 「임보 일기」(『공공연 한 고양이』)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을 실감나게 그린다. ‘임보’(임시 보호)나 ‘꾹꾹이’(고양이가 앞발 을 꾹꾹 누르는 애정 표현), ‘눈 뽀뽀’(고양이가 느릿하게 눈을 감는 애정 표현)와 ‘골골송’(고양이가 골 골 소리를 내는 애정 표현), ‘아깽이 대란’(봄철 아기 고양이가 대거 태어나서 길에 발견되는 사태) 같은 애묘인들의 은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소설적 인물이나 플롯 구성에 공들이기보다는, 실제의 경험담이 나 수기처럼 느껴질 만큼 사실적이다. 또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의 윤리를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
한편, 양원영의 「묘령이백」(『공공연한 고양이』)은 반려동물의 미래가 어떠할지, 그리고 반려동물 소 설이 끝 간 데가 어딘지 보여준다. 이 소설은 SF와 판타지의 복합적인 장르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표제에서 드러낸 것처럼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바이센테니얼 맨」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웹툰에서 영화로 제작된 <신과 함께>에서처럼 차사(저승사자)가 일인칭 주인공이다. 그는 ‘반려동물 영혼 회수반’에서 일하는데, ‘묘령이백(猫齡二百)’이라는 고양이가 골칫거리다. 이 고양이는 사실 사이 보그(cyborg, 생명체와 기계의 결합) 고양이다. 로봇 공학자였던 첫 주인이 로봇 고양이의 몸에 고양 이의 뇌를 이식했던 것. 그러니 제때 죽지 않고 이백 살이나 살게 되었다. 애묘인의 고양이 사랑을 장 르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소설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 반려 로봇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포스트휴먼(posthuman, 인간 이후의 인간, 즉 미래의 인간)이 된 우리 는 정말로 전기양의 꿈을 꾸게 될까?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 한국 현대소설의 반려동물
글 노대원 ㅣ 평론가,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1983년생
‘펫의,펫에 의한,펫을 위한’ 문학 2
반려묘 까맹이의 탄생과 고양이 죽이기 모티프
• 한국 현대소설에서 동물들은 처음에는 주로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되었다. 동물들은 구체적인 삶 의 이야기 속에서 온전히 제 몫을 가지고 등장하기보다는 대개 인간의 부정적인 수성(獸性)을 폭로 하고 비판하기 위해 동원되기 쉬웠다. 인간의 ‘짐승 같은’ 저열함이나 아둔함, 공격성과 반이성적 행동 및 욕망이 동물에 비유되었던 것이다. 널리 읽힌 작품인,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동이와 나귀 처럼 인간과 동물은 유비적 관계로 짝을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소설의 무대에서, 동물들은 주역 이거나 인간 옆자리를 얻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다만 때때로 인간 삶의 우화와 비유를 위한 자리에 개(이를테면,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의 생명력)와 학(이를테면, 황순원의 「학」의 인간애) 같은 동 물들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곤 했다.
‘한국 문학을 종단(縱斷)하는 고양이들’(이 책의 부제)을 광범위하게 다룬 문학주제학 연구서 『고양 이 한국문학』(서강대학교 출판부, 2018)에서 이재선 교수는 현대소설 속 최초의 반려묘로 김동인의 단편소설 「송동이」(1929~1930)에 등장하는 ‘까맹이’를 들고 있다. 황 진사의 아들과 자신의 아내를 전 염병으로 잃고 상심하던 송 서방(송동이)은 담장 위에 웅크린 검정고양이 새끼를 발견하고 데려와 키 운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웃음이 그의 입에 떠돌았다. / 이리하여 이 집안 식구에 고양이가 한 마 리 더 늘었다”(『김동인 전집 2』, 조선일보사, 1988, 92쪽). 까맹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으니 명실상부한 반려고양이로 우리 소설사에 존재를 전면에 드러낸 순간이다.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고양이 애호가는 차고 넘친다. 원고 마감을 위해 늦은 밤과 새벽까지 고독과 싸울 때 고양이는좋은 벗이 된다고 고백하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고양이 까맹이의 삶 역시 황 진사 집안의 하인 송 서방의 불운한 삶과 포개어 진다. 아씨의 손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복수를 당해 까맹이는 죽임을 당한다. 유일한 반려였던 까맹이 를 잃은 송 서방 역시 고양이의 부르짖음에 미친 듯이 따라나선 뒤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뒤로도 우 리 소설에서 자주 등장했던 ‘살묘(殺猫) 모티프’가 이 소설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그보다 의미 있게 생 각할 점은, 고양이를 “유일한 벗”으로 여기며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주인공의 태도에 있다. 소설의 형 식적 세련됨은 오늘날의 소설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반려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며 더불어 삶의 끝을 함께 할 정도의 동물 애호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기억할 만하다.
반려동물 소설의 출현과 새로운 가족의 탄생
• 가축에서 애완동물로, 다시 반려동물로. 인간 삶과 문화가 시간에 흐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처 럼,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에 대한 관념도 변모한다. 우리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도 그런 인 식 변화와 더불어 달라졌다. 특별히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애호 현상은 소설의 지형 도마저도 바꾸어놓고 있을 정도다. 애완동물(pet)이 동물을 키우는 데서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을 강 조한 것에 비해,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더불어 사는 친구(伴侶)임을 강조한 말이다. 1983 년,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가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한 개념 이라고 한다(이원영,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문학과지성사, 2017, 16쪽).
동물이 장난감과 같은 사물이 아니라 가족이나 벗이라고 하는 인식은 동물학의 이론이나 동물 해 방 담론, 동물권(animal rights) 논의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삶의 양식 변화에도 크게 빚지고 있다. 핵 가족, 1인 가구,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族)의 증가나 인구의 노령화는 자연스레 가족의 빈 자리를 반려동물에게 내어주게 된 것이다. 반려동물은 이제 더 이상 ‘애완 장난감’이나 ‘움직이는 사물’ 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자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한 식구로서 인간의 벗이 되었다. 인간과 동물 관계 를 다루는 소설들도 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이형의 중편소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는 오늘날의 변화된 가족의 의미를 묻는 반 려묘 소설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제는 우리 소설의 중심에 반려동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윤이형의 이 소설은, 가족의 일원이자 동반자인 반려묘가 표제와 서사의 중 심에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살이가 고양이살이와 일정하게 포개어지면서 서사를 이룬다는 점에서 긴 시간을 뛰어넘어 김동인의 「송동이」의 뒤를 잇고 있다.
물론, 김동인의 창작 시대인 일제 식민지 시기의 동물 인식과 이즈음 윤이형 소설에 나타나는 동물 인식은 전혀 다르다. 또한, 두 소설이 가족사의 굴곡을 반려동물 이야기와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가 족관 역시 비교할만하다. 거의 전근대적인 계급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던 김동인 소설에서 고양이 역시 인간의 계급화 현상과 함께 종 차별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바, 그저 미물(微物)에 불과하다. 아씨의 신체를 훼손한 고양이가 사물처럼 죽임 당해도 항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인의 삶이 주인의 권력에 중속 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이 기르거나 보살피는 동물들 역시 인간의 처분을 기다리는 종속 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다만 「송동이」에서 송 서방은, 그 시대에 지배적인 사회 현상이자 이념인 인 간 계층화와 종 차별에 항거가 아니라, 비극적으로 스스로 자취를 감춤으로써만 예외적인 동물 사랑 을 표현할 뿐이다.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서는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가족의 일원으로서, 이 시대의 변화하는 가족상을 대변하는 주역이자, 사유와 공감을 촉발시키는 의미 있는 역할을 맡고 있 다. 윤이형 소설에서 고양이는 한 가족의 탄생과 확대, 해체와 재구성에 이르기까지 함께 한다. 반려 묘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결혼이라는 제도와 육아의 고통, 이혼 뒤의 가족 분리에 대한 도저한 탐구가 이 소설을 이룬다.
‘희은’과 ‘정민’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이인 ‘초록’이 두 번째 고양이 ‘순무’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들 은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거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희은의 경우,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반려묘의 죽음은 “그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그 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문학사상, 2019, 29쪽)고 할 정도로 심각한 충격이었다. 이 소설에 선 가족인 고양이들과의 동거 생활보다 결혼이란 제도를 통과해 부부가 되고 육아를 해나가는 과정 이 더 낯설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희은이 일하게 되는 연구소에서는 새로운 양육 방식을 실험한다. 연구소 대표는 말한다. “옛날에는, 여자는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니었어요. 가축 같은 존재였 죠.”(83쪽)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Man, 그러니까 남성-인간에 비해 차별받는 타자적 존재로서 동물과 여성은 그 권리를 뒤늦게 인정받았다. 그러니 남성-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과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달라진 가족 관계 속에서 동등한 존 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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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고양이, 혹은 고양이를 위한 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꼽는다면, 이른바 ‘테마 소설집’이라 불리 는 기획 소설선집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고양이’를 소재로 젊은 작가 11인이 집필한 소 설집 『캣캣캣』(현대문학, 2010)이나 ‘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을 부제로 삼은 미니픽션 주제소설집 『공공 연한 고양이』(자음과모음, 2019. 실제로는 ‘고양이 시점’의 소설만 다룬 것은 아니다. 주로 고양이 소재 를 선택한 소설들이다)를 주목해볼 만하다. 16편의 미니픽션을 수록한 주제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 자』(걷는사람, 2019)는 동물권을 주제로 했으니, 동물 소설의 윤리적 성숙도 가늠해볼 수 있겠다.
인간과 친숙하고 충성스러운 애완동물 또는 애교 넘치는 반려동물로 강아지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에서도 강아지는 매우 친숙한 동물 가운데 으뜸이었다. 최근에는 “나만 없어 고양이” 라는 새로운 표현이 낯설지 않다. 현대 도시의 싱글 라이프에는 특별히 고양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좁은 주거 공간에서도 잘 적응하고 냄새도 잘 나지 않아 목욕이 거의 필요 없고, 독립적인 성격도 현 대 도시인들의 삶에 잘 맞기 때문이란다. 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고양이 애호가는 차고 넘친다. 원고 마감을 위해 늦은 밤과 새벽까지 고독과 싸울 때 고양이는 좋은 벗이 된다고 고백하는 작가들도 있다. 조남주의 「테라스가 있는 집」(『공공연한 고양이』)도 윤이형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처 럼 가족의 탄생 순간을 포착한다. ‘유성’과 ‘지나’라는 두 연인이 결혼과 신혼집으로의 이사를 준비하 는 과정을 그린다. 지나는 전세 원룸에서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기로 하는데, 그 테라스에서 고양이 ‘쿠키’가 비도 맞아보고 자연을 만끽하기를 희망한다. 쿠키가 집을 나가버리자 지나는 결혼을 취소하고 만다. 지나에게 결혼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본래 함께 살던 가족 쿠키였던 것. 그러니까 반 려묘 이야기는 이제 단순히 인간-동물 관계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서사로 편입된다고 할 수 있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는 작가, 최은영의 「임보 일기」(『공공연 한 고양이』)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을 실감나게 그린다. ‘임보’(임시 보호)나 ‘꾹꾹이’(고양이가 앞발 을 꾹꾹 누르는 애정 표현), ‘눈 뽀뽀’(고양이가 느릿하게 눈을 감는 애정 표현)와 ‘골골송’(고양이가 골 골 소리를 내는 애정 표현), ‘아깽이 대란’(봄철 아기 고양이가 대거 태어나서 길에 발견되는 사태) 같은 애묘인들의 은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소설적 인물이나 플롯 구성에 공들이기보다는, 실제의 경험담이 나 수기처럼 느껴질 만큼 사실적이다. 또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일의 윤리를 아주 섬세하게 다룬다.
한편, 양원영의 「묘령이백」(『공공연한 고양이』)은 반려동물의 미래가 어떠할지, 그리고 반려동물 소 설이 끝 간 데가 어딘지 보여준다. 이 소설은 SF와 판타지의 복합적인 장르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표제에서 드러낸 것처럼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바이센테니얼 맨」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웹툰에서 영화로 제작된 <신과 함께>에서처럼 차사(저승사자)가 일인칭 주인공이다. 그는 ‘반려동물 영혼 회수반’에서 일하는데, ‘묘령이백(猫齡二百)’이라는 고양이가 골칫거리다. 이 고양이는 사실 사이 보그(cyborg, 생명체와 기계의 결합) 고양이다. 로봇 공학자였던 첫 주인이 로봇 고양이의 몸에 고양 이의 뇌를 이식했던 것. 그러니 제때 죽지 않고 이백 살이나 살게 되었다. 애묘인의 고양이 사랑을 장 르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소설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 반려 로봇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포스트휴먼(posthuman, 인간 이후의 인간, 즉 미래의 인간)이 된 우리 는 정말로 전기양의 꿈을 꾸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