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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의 시 : 사람, 자 ... | 서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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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호와 지성들이 ... | 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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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체류와 표류 ... | 권오룡
평론 부문 - 언어 너머를 ... | 서경석
번역 부문- 전쟁의 소용 ... | 송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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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없다면 공통성도 ... | 모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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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앙의 순애보(純 ... | 이윤재
번역후기
다정하고도 낯선 한국 여 ... | 김현자
번역서 리뷰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중 ... | 손지봉
새로 나온 책
N.E.W BOOKS ... | 운영자
재단 소식
대학생동북아대장정 동북 ... | 운영자
명작순례 _ 이슬람 신앙의 순애보(純愛譜)
- 레일라 아부렐라의 『번역사』

글 | 이윤재_번역문학가, 1950년생
 
『번역사』는 아프리카 수단 출신의 여성작가 레일라 아부렐라(1964-)가 1999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매년 영국에서 출간된 여성작가(국적 불문)의 영어 장편소설 중 최우수작품에 수여되는 저명한 오렌지 상의 예심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애버딘. 12월이면 오후 세 시부터 어두워지고 폭설이 밀려오는 북해 연안 스코틀랜드의 춥고 축축한 회색 도시. 이곳 대학에서 아랍어 번역사로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하르툼 출신의 한 젊은 무슬림(이슬람교도) 여자가 있다. 이 도시에서 그녀는 한 때 고종사촌인 의학도 남편과 신혼의 행복을 누렸다. 그러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행복은 짧게 마감되고, 그녀는 어린 아들 하나가 딸린 과부의 지위로 전락한다.

하르툼. 일 년 내내 뜨겁고 건조한 아프리카 수단의 원색(原色) 도시. 남편의 시신을 옮겨와 장례를 치른 이곳에서 그녀는 새 인생을 시작하려고 시도해보지만 여의치 못하다. 아니 전통과 인습이 강요하는 모성의 의무를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그녀는 고향인 이 도시를 거부하고 아들을 떼어놓은 채 떠난다.

그러나 무작정 도망치듯 돌아온 애버딘 역시 그녀의 해방구는 될지언정 혼자 사는 무슬림 과부의 인생을 포용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4년간 숙소와 학교만을 오가며 스스로를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유폐시킨다. 연명하듯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유일하게 버텨주는 것은 기도하는 신앙생활이지만, 이마저 무슬림에 대한 주위의 비정하고 적대적인 시선에 눈치가 보이고 힘겹다.
학교에서 그 여자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한 중년의 교수가 있다. 그는 유럽인이지만 아랍세계와 중동문제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일삼는 학자들과는 다르다. 개방적 종교관의 그는 남다른 관심으로 그녀에게 이슬람 신앙의 많은 것을 묻고 이해해 간다.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호감을 보이는 따뜻한 그에게 그녀의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고, 외로웠던 그녀였기에 빠르게 사랑의 감정에 빠져든다. 과거 두 번의 결혼에서 실패하고 역시 외로웠던 그도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는 이제 그와 결혼하여 새 인생을 출발하겠다는 희망에 설렌다.

그러나 신앙은 그녀의 희망에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신앙은 사랑에 균열을 낸다. 두 사람이 결합하려면 그가 무슬림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그에게 신앙고백을 재촉하지만, 아직 무신론자인 그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주저한다. 조급한 그녀가 더욱 압박하자 극한의 심리적 고통에 빠진 그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에게 사라지라고 대꾸한다. 그의 반응에 절망한 그녀는 그의 사랑이 허구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를 지워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지워진 애버딘은 그녀에겐 다시 춥고 낯선 도시일 뿐이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다시 하르툼에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따가운 눈총과 노동의 일상이다. 한 동안 그녀는 그를 다시 그리워하며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오랜 침묵만 계속되고 애버딘의 기억은 점점 체념 속에 잊혀 간다. 그렇지만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하르툼의 일상에 빠르게 적응하며 고향과 화해(和解)해 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녀는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아들을 돌보면서 새롭게 인생의 의미를 찾겠다고 굳게 마음먹는다.

인간은 미련이나 욕심을 진정으로 포기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보인다. 비로소 그녀는 자기가 그에게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그의 신앙고백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결혼하고 싶은 자기의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가 이처럼 신앙적으로 각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마침내 그가 신앙고백으로 무슬림이 되었으며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는 편지가 배달된다.

작가 아부렐라는 하르툼에서 보낸 성장기와 20대 후반 고향을 떠나 애버딘에서 보낸 결혼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전적 성격의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심리상태를 다루지만 작가는,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이슬람 신앙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며, 동시에 중동문제에 압축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대립과 충돌에 대해 우리에게 진지한 성찰과 성실한 ‘번역’을 요청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슬람권 문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아울러 이슬람 신앙을 오해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무지(無知)와 불성실을 고쳐 나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 필자가 번역한 『번역가』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