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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도 낯선 한국 여 ...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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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동북아대장정 동북 ... | 운영자
창작 후기_ 다시, 몰아 읽는 일기

글 | 박성준_시인. 1986년생
시집 『몰아 쓴 일기』 등
 

# 내부
내부는 꽉 막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터널에 고장 차량 때문이었다. 막히는 내내 나는 통화 중이었다.

“어제 시인들을 많이 보니까 시를 너무 쓰고 싶더라.”

맥락도 없이 나온 말 때문에, 맥락도 없이 눈물이 났다. 말이 끝나자마자 주륵. 스스로 감정에 미동도 감지하지 못했는데, 그치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이런 경험은. 감정이 고장나버린 사람 같았고 두려웠고, 무서웠다. 내부가 다 끝날 때까지 울음은 오열이 되고 나는 그 순간 너무 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정면은 운전대가 있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도망치지 못했다. 시집을 내고, 사람을 만나고, 술에 취해가면서 나는 무언가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 오열은 멈추지 않고 내부는 막혔다. 냉정을 찾은 지금, 나한테 누가 왔다간 걸까. 고장 난 나를 돌아본다.
 
 
# 나의 은인 하나꼬
할애비는 누이의 이름을 화자로 지었다. 꽃 화(花)에 아들 자(子)자를 쓰는 화자. 일본식으로 읽으면 ‘하나꼬’라는데. 이런 식의 이름은 보통 해방 전에 기생들이 썼던 이름이라고 한다. 할애비는 무슨 생각으로 누이의 이름을 이렇게 지으셨을까. 이미 살아생전에 누이의 삶을 먼저 보시기라도 했던 걸까. 귀신이 된 당신께 물어보고 싶다.
지금껏 내가 쓴 시 중에서 가장 아팠던 시가 「화자를 하나꼬라 부르면」이라는 시다. 매년 가족들 부적을 챙겨주면서도, 모질게 연을 끊고 세상 어딘가에서 연락을 청해오는 하나꼬는 꽃이 되지 못하고 피자마자 기울어버리는 초록이다. 한 번도 싱그러운 적이 없었던 붉은 입술. 내게 끔찍하게 괴로운 장면만을 남기고 간 “어머니보다 긴 이름의 여자”(「아껴 쓴 일기」). 그런 그이를 나는 왜 은인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나대신 병을 앓았다는 하나꼬의 향기가 지난 번 보내온 부적 속에 아득히 가라앉아 있다. 하나꼬는 단 한 번도 꽃이 되려고 애쓴 적이 없다. 하나꼬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하나꼬를 누설한다. 화자(話者)가 된다. 견디려고.    
 
 # 시인의 말
시인의 말에 “나빠질 때까지 피가 났다”는 누이에게서 온 말이다. 누이는 정말 나빠질 때까지 피가 나고 있었다. 피를 품고 있지 않으면 안 될 사람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장면의 주인공이 될 것처럼 피를 뿜었다. 피가 나면서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나빠질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피가 나는 것이었다. 누이를 생각하면 나는 늘 그 영상 속에 멈춰 있다. 그러므로 시인의 말은 누이의 상태다. 가끔 나는 시인의 상태에서 누이의 말을 듣는다. 알 수 없는 문양의 붉은 글씨가 내 생애 스르르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든다. 오싹한 냄새가 온다.

 # 누이에게
“화자에게 / 화자에게 / 다시 화자에게”
어느 날 밤 나는 화자에게 편지를 쓸 작정이었다. 화자에게로 시작에서 장문의 글을 쓰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괜히 울고 있는 내가 천박해졌다. 죽음을 생각하거나 자살을 상상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다 한 생애를 살아내고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예감이 왔다. 그러나 천박했다. 내가 쓰는 문장이 화자에게로 다 가지 못하고 거짓말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아 징그러웠다.
또 화자에게로 시작하는 고백을 늘어놓았다. 이번에는 손글씨로 썼다. 그런데 이때 나는 술에 많이 취해 있었다. 그때 적어놓은 말들은 화자에게로 당도했는지 어디로 갔는지 내가 쓴 글씨를 반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숭고가 찾아와서 다시 영혼이 열리는 것 같은 예감이었다. 손글씨로 화자에게 말을 걸었던 취기 속 그 순간에만. 그리고 흩어졌다.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면서 화자에게 하고 나지막이 발음해본다. 그리고 쓴다. ‘다시 화자에게’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때론 호명만으로도 다 알 것 같은 말이 있다. 다 알 것 같은 사람이 있다. 

# 외부     
꼭 소리 내서 시를 읽어본다. 노래가 되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 필자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몰아 쓴 일기』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