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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사랑의 경계는 어 ... | 이대현
우리시대의 화제작
억압적 사회의 알레고리 ... | 전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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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도 낯선 한국 여 ...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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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중 ... | 손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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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장_ 개성이 없다면 공통성도 없다

글 | 모옌(莫言)_중국 소설가. 2012 노밸문학상 수상. 1955년생
소설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天堂蒜S之歌)』 『열세 걸음(十三步)』 『술의 나라(酒國)』 『풀 먹는 가족(食草家族)』 『풍유비둔(豊乳肥臀)』 『탄샹싱(檀香刑)』 『사십일포』 『생사피로(生死疲勞)』 등

 
저는 중국어 외의 다른 외국어는 구사할 수 없는 중국작가로서, 중국어로 번역된 몇 편의 한국 문학과 일본 문학을 접해 보았고, 한국과 일본의 작가 몇 명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동아시아 문학의 공통성에 대한 견해나, 지난날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회고, 혹은 동아시아 문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제게 참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과제입니다. 이런 경우를 중국의 헐후어(歇后语, 한 문맥의 후미를 발화하지 않고 앞부분만 발설해서 전체 문맥의 뜻을 암시하는, 일종의 은어이며 풍류적인 표현)를 빌려 표현하자면, ‘구교태산(狗咬泰山, 개가 태산을 문다. 즉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없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 동아시아 문학의 공통성을 토론하기 위해서는 해박한 전문 지식과 동아시아 지역의 지리, 역사, 언어, 문화, 민간 풍속 등등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지식을 갖추지 못했고 그 방면에 재능도 부족하니, 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습작 경험에서 느낀 중국 문학의 문제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국 문학은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문학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며, 중국 작가들도 글로벌 경제 체제나 세계 문학과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문학의 문제 역시 동아시아 지역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점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문학의 역사나 작품의 내용 혹은 문학적 계보에 대한 담론을 펼치면, 각국의 문학 작품들은 그들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각국의 작품들이 가진 풍부한 개성 속에는 공통성 역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동아시아 문학의 공통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각국 문학의 특징을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하는 목적은 바로 각국 문학의 특징을 보존,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중국 문학의 개성은 중국 근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련의 거대한 사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랜 시일 동안 지속된 전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폭행, 치가 떨리도록 지독했던 기아, 실성하기 직전까지 갔던 전국민의 종교적 열광 등등이 당대 작가들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곤 했습니다.

모든 나라의 문학 작품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원형이 있듯이 중국 또한 찬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학 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그리고 명(明) 청(淸)대의 소설 및 희극과 같은 고전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 작가와 시인들의 몸 속에서 마치 유전자처럼 보존되었고, 당대 문학에까지 영향력이 이어져 선명한 중국적 특색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진정한 문학이란 그것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보편적인 문학의 특성을 지닙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문학작품은 어떤 언어로 쓰여졌더라도 문학적인 공통성을 지니며, 세계 문학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됩니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문학을 ‘중국 현대 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현대 문학은 지루하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삼십 년간 중국문학은 정치의 부속물로 취급되었고, 정치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계급적 입장과 정당의 이해 관계로 인해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가 억압되었고 따라서 문학에 대한 시야와 작가의 재능이 편협해졌습니다. 그 시기의 문학들은 세계 문학과 동아시아 문학과의 공통성을 잃어버린 정치 선전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중국 현대 문학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에는 문학적 해방과 사상적 해방이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그간 중국 작가들을 구속하고 있던 “문학은 정치를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슬을 끊어내고, 금기시되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며 민중들의 가슴 속에 묻혀있던 이야기들을 대변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변화였고, 종전에 없었던 명성과 명예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문학은 그때까지도 미숙했고, 비교적 뚜렷한 정치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이후 사회가 점진적으로 개방되고 금기시되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들춰짐에 따라 작가들은 문학의 예술성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서방 세계의 많은 문학작품들이 중국어로 번역되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뜬 작가들은 대담하게 서방 작품들을 모방하거나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1985년 「투명한 홍당무」라는 소설로 문단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소설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었고, 저 또한 개인적으로 창작 활동이 무척 어렵다고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도깨비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는데, 이른바 혁명적 현실주의와 혁명적 낭만주의를 결합 시키는 창작 방법이 그것입니다. 그 당시 제게 가장 힘든 것은 작품을 쓸 만한 소재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80년대 초 접했던 서방문학 작품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카프카의 『변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등등을 통해 막 꿈속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전까지 소설을 그런 식으로 써도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죠. 만약 그것을 더 일찍 깨달았다면 애타게 가슴을 졸이며 소재를 찾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 작품들과 비슷한 소재는 내 고향에도 있고, 나의 유년기에도 있었으며, 어디에나 널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저는 그 책들을 덮고 제 자신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국 문단에서 성공을 했으며 또한 독자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으로부터 받은 깨우침을 바탕으로 ‘문학 공화국’인 ‘까오미 뚱베이샹’을 세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이전에 제게 가장 큰 고통은 쓸 만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종 소재를 찾기 위해 잡지나 신문을 정신없이 뒤적이고, 지방의 작은 마을을 찾아다니거나 공장을 방문해 취재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후에는 머리속이 텅텅 비어 있는 것 같았고 원고지 앞에 앉아서는 단 한 글자도 쓰기 어려웠습니다.

그 후 저는 『백구 그네 대』라는 소설 속에서 ‘까오미 뚱베이샹이 원산지인 하얗고 온순한 몸집이 큰 개는 몇 대를 거치면서 순종을 단 한 마리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그러자 저는 마치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알게 된 것처럼 눈앞이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고향의 산천과 시냇가, 풍토와 인정, 가족들의 별난 경력, 제 고향에서의 이십 년간의 그 혹독하고 어려웠던 생활, 고향 친지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전설과 지나간 이야기 등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제 앞에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앞다투어 나타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소설로 써달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가난한 소시민이 갑작스레 엄청난 재화를 얻은 것처럼, 소설을 휘갈겨 쓰기 시작했습니다. 쓸 만한 이야기 감이 없던 시절이 지나가고, 미처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절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현실에서는 유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지만, 소설을 창작할 때만큼은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까오미 뚱베이샹을 저의 소설 공간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곳의 왕이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것들이 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제가 누구를 죽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고, 살리려고 하면 그 자는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했지요. 천지를 개벽시키고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고향 까오미 뚱베이샹을 통해 천하만물을 제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룰 수 있었습니다.

지난 이십 여 년 간 저의 문학적 관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시종일관 반드시 고수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개성이 담긴 창작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모든 작가는 반드시 자신의 독립성을 고집하며 시대의 조류나 스타일과는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소재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누구나 주의 깊게 살피겠지만, 작가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른 사람의 언어와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창작자는 사물을 관철하는 남다른 시각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타인의 시각과 차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창작자도 작중 캐릭터나 사건을 자신의 편의대로 평가를 하거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비평을 하는 입장이라면, 상투적 흐름과 다른 비평적 기준이 반드시 있어야 되겠지요. 어쨌든 창작은 개성화가 필요한데, 이는 보편성을 상실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보편성을 완전히 상실한다면 그 또한 문학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용, 공평성, 타당성을 작가가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어떤 추세라든가 군중심리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약점 중 하나지만, 만약에 우리들이 어떤 강제적인 집단 속에서 창작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개성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합창소리 속에 묻혀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군중의 합창 소리는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독특한 가성(歌聲)을 지닌 가수라면 결코 군중의 소리에 묻히지 않는 자기만의 독특한 소리를 내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야심 있는 작가라면 타인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자기만의 작품을 창작하길 원합니다. 한 작가의 개성이란 그 작품이 표면적으로 일상을 일탈했다든가 일반적 소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 작가의 개성이란 그의 독립적인 사상과 인격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그 어떤 체제나 상황 속에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작가의 독립성 속에서 유지됩니다. 작가는 그 어떤 세력이나 집단에 속하지 않고, 이익 집단이나 세력 앞에서 자신의 창작품을 아첨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품의 개성화란 작가의 독립적 사고와 인격 위에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것입니다. 창작주체에게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작품의 개성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작품의 개성화란 우선 작가의 기질이 개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심리학 및 유전학 그리고 그 이외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사실 개성적인 인물은 무척 많지만 개성이 있다고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작품의 개성화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생활 방식의 개성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작가의 성장 환경, 인생의 경험과 같은 요소들이 모여서 그 작품이 개성을 갖습니다. 대체로 불멸의 작품들을 남긴 작가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인생을 살았는데, 어쩌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운명이란, 훗날 생활 속 체험이 아닌 기본적인 운명적 요인만으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혹시 당신이 거지로 변장해 거리를 배회하며 구걸할 수도 있지만, 당신은 오직 표면적인 육체적 체험만을 경험할 수 있을 뿐이고 깊은 감흥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남루한 차림을 하거나 심지어 흉악한 개에게 다리를 물린다고 해도, 거지처럼 꾸민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후천적으로 얻은 작가의 개성도 문학 창작에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는 지방의 지리적 환경, 당신이 접한 문화 교육, 성장을 겪으며 만났던 사람들은 작가로 성장하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고, 작가가 된 후에는 한 사람의 성향을 결정하게 되는 요소들입니다.  훗날의 우연이나 노력들도 물론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이며 그 근본을 바꿀 순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겠지만 개성적인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은 모두 부질없는 것입니다. 잔인하지만 분명한 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불가변의 요인들을 마주한 채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주는 자극과 사유들을 통해 최대한 스스로의 개성을 보존하고 또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동아시아의 빼어난 문학은 나름대로의 개성이 풍부하고 탁월한 작가들이 독창적으로 써 낸 작품들입니다. 개성을 추구하자면 우리들은 자기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민족의 현실 그리고 각자의 고향에서 출발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드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고, 적극적으로 외국 작가들로부터도 배워야 하며, 다시 자기 자신의 민간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수없이 많은 원형의 창작 작품을 써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 작가에게는 동아시아 각국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동아시아 문학의 공통성을 연구해서 각국의 작가들이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을 쓰는 것을 피하며 각각의 개성적인 작품을 창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문학이란 필연적으로 오묘하고 신비한 인류의 영혼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렇다고 인류 영혼의 오묘한 신비성을 드러내는 것이 동아시아 문학의 공통성이라거나 세계문학의 공통성은 아닙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작가들의 개성을 더욱 더 강조하고 발휘해야만 동아시아적인 공통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또한 동아시아 작가들의 창작품이 구체적인 개성화를 이룰 때 필연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으로 규명될 것이며, 이렇게 해야 방만한 세계의 문학 속에서 드높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 : 박명애
※ 이 글은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