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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도 낯선 한국 여 ...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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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중 ... | 손지봉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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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대학생동북아대장정 동북 ... | 운영자
단편소설_ 침묵의 미래

글 | 김애란_소설가,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1980년생
소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등

 
 
 
 
 
 
 
 
 
 
 
 
 
 
 
 

 
 
 


1.
나에게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길다. 그 이름을 다 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이 필요하다. 혹자는 그것도 너무 짧은 기간이라 말한다. 몇 백 년 또는 수 천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러야 겨우 명명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도 누가 정말 그걸 다 불렀다면, 그때 그가 발견하는 건 내 이름의 길이가 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일 거라고 말이다. 내 이름을 듣고 나도 내 이름을 잊었다. 내 이름이 궁금할 적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르는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면 어렴풋이 몇몇 단서가 떠오른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살일까.
 
태어나, 내가 처음으로 터트린 울음, 어쩌면 그게 내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죽기 전, 허공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어떤 이의 절망, 그것이 내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그것이 내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범람 직전의 댐처럼 말(言)로 가득 차 출렁이는 슬픔, 그것이 내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이름을 못 왼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는 있다. 당신이 누구든, 내 말은 당신네 말로 들릴 것이다.
 
 
2.
나는 오늘 태어났다. 그리고 곧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하루씩 산다. 노인으로 태어나 하루 더 늙은 뒤 노인으로 죽는다. 그 하루는 어느 종(種)의 역사만큼 길며, 그 종의 하품만큼 짧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우리의 이력을 단숨에 학습한다. 전생(前生)으로 태어나 전생으로 죽는다. 우리가 우리의 고유한 단어를 말하면, 저 멀리 심연으로부터 여러 개의 시간이 물수제비뜬 듯 퐁, 퐁, 퐁하고 단번에 뜀박질해 덤벼온다. 시공(時空)이 밀려온다. 아마 당신네 말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오래된 말이기만 하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명일까.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言)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뤄진 영(靈)이다. 나는 거대한 눈(目)이자 입(口).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言)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낱낱의 입자로도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不在)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熱)이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디 살까.
 
나는 구름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분방해 시시각각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것들을 만나 쉽게 결합한다. 몸을 불려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늘로 단어에 수의(壽衣)를 입힌다. 나는 시원이자 결말, 미지(未知)이자 지(知),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노래다.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부족의 모든 문법을 빌려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뚜렷한 얼굴이나 몸통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정체다.
 
오늘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언어로 이야기 하다, 단 하나뿐인 죽음을 맞이한 누군가를 떠났다. 그는 후두암 말기의 노인이었다. 그는 검은 피부에 놀라우리만치 희고 무성한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목울대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그 구멍으로 말했다. 어릴 적 그는, 뜀박질을 잘하는 소년이었다. 소년의 꿈은 달리기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데까지 가보는 거였다. 한참 뒤 정말 그는 그 일을 해냈다. 하지만 그때 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곳은, 그가 며칠 간 뛰고 걷고 다시 뛰길 반복해 마침내 도착한 곳은, 그의 고향이었다. 그는 아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눈 감기 전, 마지막으로 꼭 할 말이 있다는 듯 허공을 보며 가쁜 소리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알아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말의 유일한 화자이자 청자가 바로 그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목에 낀 보조 장치에선 연신 불안정하고 괴상한 기계음이 났다. 같은 언어권 사람이라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는 주파수가 잘못 잡힌 라디오처럼 연신 지지직댔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 곁에, 자기 말을 알아듣는 누군가가 한 명쯤 있었으면 했다. 그 사람의 성별, 나이, 직업. 성격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심지어는 그가 파렴치한 범죄자라 해도 반가울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끄덕이고, 눈 맞추고, ‘혼자가 아닌 남과 같이 하는 경우는 몹시 오랜만’인데다, ‘너무 평범하고 친근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모국어로 뭐라 대꾸해주길 바랐다. ‘응’이나 ‘그래’ 같은 아주 간단한 말이라도, 그뿐이라도.
 
이 마을에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많다.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나이를 먹은 탓이다. 그 중에는 비록 앞을 보진 못하나 누구보다도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노파도 있고, 어릴 적 배운 여섯 부족의 언어로 만날 헛소리를 하는 치매 노인도 있다. 한때 샤먼이었으나 지금은 누구의 존경도 받지 못하는 중이염 환자도 있고, 도시에 나가 ‘소비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어떤 꿈도 꾸지 않고 후식으로 탄산음료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전사(戰士)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마지막 화자’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혼자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이 쩌렁쩌렁한 모어(母語) 한복판에, 우주 한가운데 홀로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뒤늦게 울어봐야 소용없었다. 다 죽고, 살아남은 건 오직 자신과 엄청나게 아름답고 어마어마하게 정교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 ‘말’뿐이란 걸 결국엔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이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어둠과 침묵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 애썼다. 평생 스스로를 다독이고 설득하려 힘썼다. 세상에 누구든 홀로 남겨질 수 있고, 마지막 화자가 될 수 있지만 하필 그게 ‘나’라는 걸.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며 그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으리란 사실을 인정하려 말이다. 그들은 그 문장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곁에서 희망과 우울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감정이 하도 고유해 이제는 뭐라 설명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입을 잘못 떼었다가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정과 말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 당할지도 모르니까.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마을 소개를 하는 게 좋겠다.
 
 
3.
이곳은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된 특별 구역이다. 이곳은 거대한 규모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기념관인 동시에 학습장, 연구소, 민속촌으로도 쓰인다. 정식 이름은 <소수언어박물관>. 지구상에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그 가치를 알린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박물관 부지로 선정된 곳은 중앙 사람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던, 낯선 고장의 벌판이었다. 붉고 갈라지고 메마른 땅이 사방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 불모지였다. 중앙의 계획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온갖 중장비를 실은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왔다. 그러고는 뚝딱뚝딱 설은 못질을 하더니 순식간에 모든 공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지금 이곳에는 약 천여 명의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산다. 낮에는 박물관에서 일하고 밤에는 기숙사에 머무는 식이다. 박물관은 오전 8시부터 6시까지 개방됐다. 각각의 기념관은 여러 부족의 특성에 맞게,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양식에 따라 복원됐다. 하나의 기념관은 하나의 언어를 대표한다. 기념관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한 명 이상의 화자가 상주한다. 대부분 한 명이지만 가끔은 둘도 있다. 혼자인 이는 짝이 된 이들을 몹시 부러워한다. 그들이 동성이나 남남 사이라 해도 그렇다. 둘씩 짝이 된 이들은 상대가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어쩌나, 근심 하느라 얼굴이 항상 핼쑥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고독 때문에 미쳐 가는 이들을 봤다.
 
각 부족의 전통 가옥은 그 지역의 고유한 기후와 온도, 재료와 풍습에 따라 다양하게 지어졌다. 하지만 어딘가 대부분 어색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서였다. 먹색 페인트칠을 해놓은 스티로폼 바위며,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 플라스틱 나무, 기둥 여기저기에 시멘트로 마감한 자국이 거칠게 남아 있는 오두막, 어딘가 늘 한 치수 큰 옷을 입고 있는 마네킹 등이 그랬다. 각각의 기념관은 인공 연못과 언덕, 대숲, 오솔길 등을 따라 드문드문 이어졌다. 그밖에 매점과 관리실, 기숙사, 공중화장실 등도 사이좋게 들어섰다. 매표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지도에는 각각의 위치가 번호와 함께 표기돼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그 중 일부만 살펴보고 간다. 천천히 다 둘러보려면 꼬박 며칠이 걸리는 크기라서 그렇다. 이곳을 디자인한 이들은 한 부족과 다른 부족 사이에 충분한 공간과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존 인구가 총 세 명이 안 되는 나라라 해도 그들이 수천 년간 쌓아온 역사와 문화가 숨 쉴 만한 최소한의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이곳이 정말 무언가를 ‘보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비록 모두가 실물이 아닌 모형을 보고 있단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너무 가짜의 느낌이 나서는 안 됐다. 
이곳에서 가장 볼만한 건 중앙 분수대였다. 말만 ‘분수대’지 구멍에서 물줄기 대신 ‘말’이 흘러나오는 독특한 조형물이었다. 분수대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금속 기둥 위엔 투명하고 커다란 구(球)가 얹어졌다. 겉면에 여섯 대륙의 실루엣이 반투명하게 새겨진 유리 지구본이었다. 구 안에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여러 형태의 문자가 보였다. 여러 민족의 언어를 홀로그램을 이용해 3D 빛으로 형상화한 거였다. 사람들은 이 구에 담긴 말들이 활달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그것들은 환한 조명을 받으며 개장 시간 내내 춤을 추듯 쾌활하게 떠다녔다. 그러고는 정오가 되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꽃잎처럼 갑자기 여러 갈래로 쪼개져 구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소수언어박물관이 세워지는 데는 많은 돈이 들었다. 중앙은 그 지출과 부채를 관광수입이 메워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먼 데까지, 자동차도, 공룡 화석도 아닌, 겨우 ‘사라져가는 언어’나 보자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여기가 동물원이거나 로봇전시관, 하다못해 기생충박물관이었으면 또 몰랐다. 소수언어박물관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기본적인 공과금은 물론이고 천여 명의 거주자를 거둬 먹이는 데 필요한 경비마저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중앙에서는 박물관의 표 값을 두 배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방문객의 숫자는 더 줄어들었다. 지금 이곳을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다. 있어 봤자 하루에 몇 십 명이 전부다. 하지만 그 몇 안 되는 관람객을 위해 날마다 천여 명의 사람들이 일한다. 그 일이 고작 허름한 방에 앉아 하염없이 방문자를 기다리는 거라고 해도. 이들은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켰다. 모두가 기념우표 같은 얼굴을 하고,  하루 종일. 그리고 어쩌다 두 세 명의 손님이 오면 벌떡 일어나 모국어를 몇 마디 한 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근처 가판에는 이들의 활자 모형과 책, 민속품 등이 전시됐다.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칼이며 색색의 술이 달린 머리장식,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만든 바구니 등도 있었다. 주술과 역사와 노래가 담긴 테이프는 현장에서 특별 할인가로 판매됐다. 
 
중앙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 곳곳에 언어를 보호하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이 단지를 세웠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리고 그건 중앙이 내심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애도했다. 멸시하기 위해 추켜세웠고, 죽여 버리기 위해 기념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두 기획된 거였는지 몰랐다. 오늘도 이곳에선 오래된 언어 하나가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보름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일이라 이제는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오늘 그 죽은 언어의 껍질을 벗고 하늘로 올라간 존재가 나다. 나는 내 지나간 과거를 드문드문 떠올리며 저 아래, 누군가 버리고 간 입장권을 바라본다. 그것은 바람에 몸을 뒤집으며 길바닥을 뒹굴고 있다. 질 나쁜 종이 위로,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그게 우리의 직업이었으니까. 웃는 것, 더 웃는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지면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