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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래 ...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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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부문- 전쟁의 소용 ... | 송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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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중 ... | 손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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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OOKS ... | 운영자
재단 소식
대학생동북아대장정 동북 ... | 운영자
단편소설_ 델마와 루이스

글 | 김인숙_ 소설가. 제14회 대산문학상 수상. 1963년생
소설 『함께 걷는 길』 『칼날과 사랑』 『유리 구두』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그 여자의 자서전』 『그래서 너를 안는다』 『시드니 그 푸른 바다에 서다』 『먼길』 『그늘, 깊은 곳』 『꽃의 기억』 『우연』 등

 
 
 
 
 
 
 
 
 
 
 
 
 
 
 

 
1.
델마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 여든 일곱이었다.
유품으로 알루미늄 지팡이와, 가볍고 신기가 편해 효도신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화 한 켤레와, 가늘어진 손가락에 맞추느라 실을 친친 감아서 구멍을 좁혀놓은 금반지 한 개가 있었다. 나중에 그녀의 방에서는 세 개의 이빨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쌓인 온갖 종류의 건강식품과 약, 돋보기안경 등이 나왔다. 치석이 제거되지 않은 노랗고 까만 이빨은 두루마리 휴지에 곱게 쌓여있었다. 델마의 입속에 빠지지 않고 남아있던 치아는 몇 개였을까. 그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었다.
죽기 전에 델마가 집을 떠났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2.
델마가 집을 떠나기 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늦게 잠에서 깨 부은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침실 밖으로 나갔다. 날이 흐려서인지 집안이 흐릿했다. 거실 등을 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스위치를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거실 소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다. 곧 낮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내보다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있던 델마의 아들은 물소리 때문에 아내의 비명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덜 마른 몸에 샤워코롱까지 뿌린 후 욕실에서 나왔다. 샤워코롱은 큰아들의 여자친구가 그의 생일날에 선물한 것이었다. 향수 따위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일은 항상 긴장 속에서 치러졌다. 미세한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은 향기였으나, 향기는 때때로 얼룩으로 남았다. 그는 그 미세한 향기와 얼룩을 소중하게 여겼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화장품 냄새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도 이제 나이가 들고, 늙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향수를 선물했을 때 그는 기쁜 얼굴로 그것을 받긴 했지만, 나중에 아내와 단 둘이 방에 있게 되었을 때는 우울한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서 냄새가 나나? 아내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그는 자신의 질문에 아내가 당황하고 있다고 여겼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샤워코롱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할 때, 델마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 그것에는 어머니의 냄새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진한 냄새가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머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뿌린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 팔을 이마 위에 올린 채 눈을 감고서였다. 샤워를 하다가 들은 듯 했던 이상한 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어? 그가 묻자 아내가 손가락만 움직여 방 밖을 가리켰다. 거실로 나가던 그도 그의 아내처럼 걸음을 멈칫 했다.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 가슴이 내려앉았던 것 같기는 했다. 

“당신도 놀랐지?”
그가 침실로 돌아왔을 때 아내의 말이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
열흘 쯤 전부터 이모가 그의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가 몇십 년 만에 귀국을 해서는 그의 집에 눌러 앉아버린 것이다. 며칠만 있다가 돌아가겠다고는 했지만, 그 며칠이 도대체 며칠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는 그 후로 아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늙은 자매는 그날 아침 같은 시간에 깨어 같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둘이 그토록 닮은 얼굴이라는 것을, 그 역시 그날 아침에 처음 알았다. 이모는 델마의 자리옷을 입고 델마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여든 일곱과 여든 아홉의 노인네 둘이 자식들을 골려 먹자고 모의를 한 것은 아니겠지만, 소파 아래로 다리를 내리지 않고 오도카니 올라앉아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가 침실 밖으로 나갔을 때, 둘은 똑같이 고개를 돌렸고,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앞니가 빠져있는 것도 똑같았다. 어머니에게 그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죄스러운 일이 분명했음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 그도 어쩔 수 없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둘은, 귀신같았던 것이다.
제발 좀, 새벽마다 불도 안 켜고 그렇게 앉아 계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겠냐고, 울컥 터져 나오려는 말을 그는 눌러 참았다. 이모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곧 결혼을 앞둔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인들의 저물어가는 시간은 언젠가는 자신의 것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를지도 몰랐다. 두 노인이 귀신처럼 함께 앉아있는 것을 보니 그 느낌이 더욱 울적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는 흘리듯이 말을 하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3.
델마의 아들은 정년퇴직 후 횟집을 했다. 그의 아내도 가게 일을 같이 했다. 델마의 며느리는 남편보다 먼저 가게에 나갔다가 남편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이었다. 며느리가 밤늦은 시간에 들어와 지갑과 열쇠를 내려놓고 겉옷을 벗을 즈음이면, 델마가 자기 방에서 나왔다. 왔니? 델마가 묻고 며느리가 네, 하고 대답했다. 손님 많니? 델마가 또 묻고, 며느리가 또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대화는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이어질 것도 없었다.

대개는 늘 곯아떨어졌지만, 어쩌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며느리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 중에는 시어머니에 관한 생각도 있었다. 이 날들이 언제까지 갈까. 그녀는 간혹 한숨을 내쉬기도 했는데, 그것은 싫다거나 지긋지긋하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젊었을 때는 심각하게 불화한 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의 큰 분란은 없었고,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시어머니는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그녀에게 그런 것처럼. 늙어갈수록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고맙게 여겨졌다. 이제 와서는 시어머니가 빠져나간 가족의 형태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무척 외로울 것 같기도 했고, 평생 처음으로 아주 편안할 것 같기도 했고, 또 그런 마음이 기억나 죄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델마의 언니가 난데없이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그녀의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하루 이틀 묵고 가는 것과 ‘얼마동안’ 머무는 것은 결코 같은 문제일 수가 없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80이 넘고 90이 가까운 노인네 둘을 한꺼번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노여움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델마의 언니와 함께 귀국했었던 큰아들은 곧 다시 귀국할 일이 있으니 그때 모셔가겠다고 했다. 노인네가 너무 고집을 피워서 당장 모셔갈 수가 없으니, 그저 며칠만 모셔달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거짓말 마세요!’ 악쓰듯이 터져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터뜨리지 못한 욕설과 분노는 고스란히 남편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도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이제 와서 나쁜 며느리에 나쁜 질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제 와서 착한 며느리 착한 질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식당에 나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고 델마의 방문을 열어보았을 때였다. 델마가 혼자 있을 때는 방문도 안 열어보고 나갔다 올게요, 밖에서만 말할 때가 많았지만 델마의 언니가 집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래도 방문은 열어보았다. 방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서있어야 했다. 델마와 델마의 언니가 마주 앉은 채 서로 머리채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던 것일까. 둘은 기운이 빠져서 머리채를 잡은 손을 풀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두 노인이 머리채를 움켜쥐고 싸움을 하고 있는 풍경이라기보다는, 같이 두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는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프로메테우스보다도 더 무거운 것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누군가 내려주지 않으면, 영원히 그러고 있어야할 것처럼.

못 본체 하고 싶은 마음이 역겨움과 함께 올라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다가가 둘의 엉켜 있던 손가락을 풀어주었고, 둘은 동시에 뒤로 자빠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 않았다. 들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매가 추억하는 것 중에 노여운 일이 왜 없으랴. 사소한 일일수록 용서할 구실이 없어 더 마음에 깊이 남았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남편을 결코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델마가 집을 떠났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걱정보다 앞선 것이 다시 격렬한 분노였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했든 간에, 델마의 시간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87세 노인이 집을 나갈 수는 없는 거였다. 40년 가까이를 함께 살았으니, 거의 반백년이다. 그런 시어머니가, 이제 와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결코 안 되는 거였다.
4.
“저기에서 내려 주시우.”

노인의 말을 최창식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뒤에 앉은 노인이 어깨를 건드리며 다시 한 번 말했을 때야 최창식은 뭐라 그러셨어요? 되물었다.

“저기 말이요, 저기.”
최창식의 입이 벌어졌다. 국도변에 웬 성채가 하나 보였던 것이다. 그는 곧 그것이 그 지역에 새로 개장한 모텔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양의 성 모양을 흉내 내 지은 건물인데, 있는 대로 조명을 밝혀놓아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기가 그지없었다. 방송에 인근 저수지의 풍광이 소개된 뒤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었다.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속도보다 모텔이 들어서는 속도가 더 빨랐다. 모텔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성채처럼 세워졌고, 하나같이 있는 대로 조명을 밝혀 놓고 있었다.

노인이 저기라고 가리킨 모텔을 그가 그날 처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지역에서만 10년이 넘게 택시기사 노릇을 했다. 그러나 새로 세워지는 모텔들은 언제나 낯설었다. 게다가 그런 모텔 앞에 내려달라고 하는 할머니들이라니.

국도변에서 할머니 둘이 차를 세울 때부터 최창식은 기분이 찜찜했었다. 노모의 상을 치룬 것이 고작 한 달 전이었다. 그리고 그 한 달 내내 그는 괴로움과 고독함과 술에 빠져 사느라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온통 기억나는 것이 어머니에게 잘못했던 일들뿐이었다. 잘못한 일들이 많아서 기억할 게 그것밖에는 없는 것도 있겠지만, 죄스러운 마음을 눙치려고 부러 더 그런 기억들만 떠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발버둥을 쳐가며 울었고,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벌을 다 받은 것 같기도 해서, 술을 마시러 나갔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그날 간신히 다시 운전대를 잡았더니, 첫날부터 차를 세운 사람이 할머니들이었다. 자식들도 없이 단둘이 택시를 잡아타기에는 둘 다 너무 늙어보였다. 세상을 뜬 늙은 노모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노인 둘을 차에 태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글러먹게 변해, 노인들이 자식도 없이 늦은 길거리에 서있었다. 그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의 늙은 어머니도 홀로 나갔던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마침 가까운 곳에 있던 그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디에든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에게 그런 일로 전화를 거는 적이 결코 없었고, 어머니가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가 일부러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일은 사실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고를 당하고도 1년 가까이나 병원 침대에서 생을 지탱했는데, 그 시간이 그에게는 지옥 같았다. 어머니가 언제쯤에나 마침내 숨을 놓게 되실지만 손꼽아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에 지옥 같은 마음이 더 얹어졌다.
두 노인이 차를 세웠을 때, 그는 일부러 차 밖으로 내려서 노인들이 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새털같이 가벼운 노인네들이었다. 운전석에 돌아와 룸미러로 뒤를 보니 나란히 앉은 두 노인네가 마치 인형 같았다.

“할마씨들, 어디로 갈까요?”
그가 부러 더 밝은 음성으로 물었을 때, 노인 하나가 쭉, 가자고 했다.

“쭉, 어디로 갑니까?”
“쭉, 가자니까. 쭉.”
최창식은 차를 천천히 몰았다. 마침 곧은 길이어서 길목마다 이리 가느냐, 저리 가느냐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차가 5분쯤 달렸을 때, 노인 하나가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다 왔습니까, 물었더니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노인이 어두운 국도변에서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는데, 오줌소리가 물새는 소리처럼 똑똑 들렸다.

“할머니, 어디 가는데요? 자식들 집에 갑니까?”
노인 하나가 오줌을 누는 동안, 최창식이 차에 남은 노인에게 물었다. 쭉, 가자고 말을 했던 노인이었다.
“갈 데가 자식 집밖에 없나.”
“그럼 놀러 가십니까?”
“놀러 가지.”
“할마씨 둘이 놀러 갑니까?”
“할마씨 둘은 놀러 가면 안 되나.”
“자식들이 걱정 안합니까? 연세가 보통 아니실 것 같은데요.”
“걱정 좀 하면 안 되나.”
“집 나오셨습니까? 자식들이 속 썩여요?”

그때 오줌을 다 눈 노인이 차 문을 두드렸다. 최창식이 다시 내려 노인을 차에 태웠다. 바지자락이 젖어있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오줌을 지렸거나 덜 눈 지도 모르고 옷을 추켜올렸거나 했을 것이다. 그의 차 시트에도 노인의 오줌이 묻을 것이다. 죽은 노모를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의 입에서 틀림없이 욕설 같은 것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노인네 둘을 모텔에 내려놓은 뒤, 최창식은 지서에 전화를 했다. 가출 노인네 둘을 신고한다고 했더니, 술에 취해있던 소장이 네 엄마냐고 농담을 했다. 소장은 그의 친구였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영안실에서 자기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던 자식이었다. 최창식은 그 길로 지서로 차를 몰고 달려가, 친구인 소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나중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던 소장은 미안하다고 말할 틈도 없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고 코피를 쏟았다. 늙은 남자 둘이 지서 안에서 육탄전을 벌였다.

 
5.
모텔의 카운터는 젊은 청년이 지키고 있었다. 두 노인네가 무거운 문을 열지 못해서 바깥에서 있는 힘을 다 하는 것을 청년은 멀거니 내다보기만 했다. 카운터를 지키면서 온갖 것을 보았지만, 할머니 둘이 모텔에 들어서려고 기를 쓰는 것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거나, 할머니 둘이 헛것에 매달려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노인들이 곧 문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달려가 문을 열어주고 어서 오시라고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뒤따라온 노인들의 가족일까. 번쩍번쩍 조명을 밝혀놓은 모텔에 가족들이 숙박을 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펜션이 있었고, 민박도 있었다. 저수지의 풍광을 소개하는 방송이 뜨기는 했지만, 일가족이 할머니까지 모시고 관광을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대개는 남녀가 와서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저수지변에서 민물매운탕을 안주로 시켜 술을 마신 후, 펜션이든 민박이든 모텔이든, 잠을 자러 들었다. 술 취한 여자를 업고 들어오는 남자도 있었고, 얼굴에 시뻘겋게 멍이 든 여자를 끌고 오는 남자도 있었다. 남자 혼자 들어와 열쇠를 받고, 여자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서 등만 보이고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드물게 여자가 벌거벗은 채로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을 뛰어내려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청년은 재빨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친구들 모두에게 그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아무튼 그가 일하는 모텔이란 그런 곳이었다. 할머니 둘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라는 소리다.

뒤에 들어왔던 차가 문 앞에 잠시 섰다가 그냥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텔의 정체성을 의심했던 게 분명했다. 청년도 더 이상은 카운터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청년이 카운터에서 나와 문으로 다가갔고, 그가 문을 열자 할머니들이 오종오종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라니? 자러 왔지.”
“할머니들이요?”
“할머니들도 잠은 잔다우.”

카운터의 청년은 키가 컸다. 그는 자신의 가슴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할머니들을 난감하게 내려다보았다. 사진을 찍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재밌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둘이 와서 방을 달라는데요? 사장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노래방에 있는 모양이었다. 뭐라고? 외치는 동안 반주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잠시 뒤 반주소리가 툭 끊기고, 사장의 악 쓰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할머니들은 잠 안 자냐? 너는 할머니도 없냐, 이 새꺄! 청년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숙박료를 얘기했다. 할머니 하나가 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서 카드를 끄집어냈다. 청년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할머니, 돈을 내셔야하는데요. 이런 건 안 되거든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안 돼? 왜 안 돼?”
“뭐요? 무슨 카드요? 아무튼 이건 안 돼요.”
“그건 미국 카드야. 내가 미국에서 왔거든. 긁어봐. 안 되면 비자로 줄게.”

청년이 카드를 긁었고, 카드는 승인이 떨어졌다. 청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멕스라니, 젠장…… 그도 그 정도는 알았다. 다만 해외에서 발행된 카드를 처음 보았을 뿐이었다. 사진을 찍어둘까? 모텔에서 아멕스 카드를 긁는 미국 할머니라니…… 그러나 친구들은 재밌어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를 비웃으려고 들 것이 틀림없었다. 청년은 3층 방의 키를 내밀었다. 딴에는 신경 쓰느라고 볕이 잘 드는 남향 방의 키를 골랐다. 그때 무언가가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내려다보니, 어느 틈에 할머니 하나가 카운터 안으로 들어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절한 눈빛이었다.

“화장실이 어딨수?”
“방에 있지요!”
“내가 지금 급하다우. 쌀 거 같아.”

쌀 거 같다는 그 말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는 말처럼 놀랍게 들렸다. 청년이 다급하게 노인의 손을 붙들고 로비의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나중에는 번쩍 안다시피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새털같이 가벼운 할머니였다. 너무나 가벼워서, 그것을 존재의 무게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카운터로 돌아와 로비에 걸려있는 저수지 사진을 바라보았다. 새떼가 날아오르는 노을 녘의 풍경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수지에는 그토록 많은 새떼가 살지는 않았다. 그가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수지가 새떼 천지였다. 해마다 새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이사를 왔다니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가 5년 동안을 밑바닥에서 뒹굴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졌지만 나중에는 길바닥에서도 잤고, 조금 형편이 나을 때는 일자리를 잡아 들어갔던 술집의 홀에서도 잤다. 그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들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았다. 일자리를 구해보려고도 했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들이 한 달 일을 채워야만 급료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한 달을 채울 수 없었고, 그래서 언제나 돈을 벌 수 없었다. 살자니 돈이 필요했다. 그는 몇 달에 한 번씩 집으로 내려와 집의 돈을 훔쳤다. 집에서 들고 나올 물건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지 들고 나왔다. 그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 것은 집에서 더 이상은 훔쳐갈 돈도 물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도둑질을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집을 나갈 때 그는 조폭이 되거나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

모텔의 일자리는 아버지의 소개로 얻게 되었다. 모텔의 주인은 아버지의 군대 시절 부하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월남참전용사였고, 사장도 그러했다.

“그래도 이 애가 남의 것에 손을 대는 아이는 아니라네. 그거 하나만은 보증하네.”
아버지의 믿음은 틀렸다. 그는 그날 남의 것을 훔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낼 때, 함께 딸려 나왔던 종이에 적힌 숫자를 보았었다. 할머니가 적어놓은 비밀번호일 것이 틀림없었다. 아멕스 카드를 갖고 있어도 할머니는 할머니인 것이다.

어머니만 멀쩡했어도, 그는 어떻게든 버텼을 것이다. 자식이 언제든지 나타나 손쉽게 돈을 훔쳐갈 수 있도록 늘 집안에 돈을 마련해두었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농담도 잘 하고 재기도 발랄한 여자였다. 그가 돈을 훔치러 왔다가 그 쉬운 도둑질에 혹시라도 자괴감을 느낄까봐, 마치 보물찾기처럼 돈을 숨겨두던 사람이었다. 그가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신의 개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장독대를 뒤져 돈을 찾아냈는데, 돈을 싸놓은 손수건 속에 박하사탕이 함께 들어있기도 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면 생각해낼 수 없는 농담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훔쳐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품팔이를 했던 어머니는, 남의 밭을 매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퇴원을 해도 당분간은 바깥일은 못 할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집에 돈을 훔치러 갔을 때, 집안에는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싸놓은 돈 대신에 병원의 이름과 병실 호수가 적힌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글씨였다.

종이에 적혀 있던 할머니의 아멕스 카드 비밀번호가 아버지의 그 무뚝뚝한 글씨체와 비슷했다. 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문득 어머니에게 빨간 내복을 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드를 긁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겨울이 아닌 것이 다만 아쉬울 뿐이었다. (중략)
 
* 본 작품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지면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