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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도 낯선 한국 여 ...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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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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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문학_ 무등산 안고 돌기

글 | 문순태_소설가. 1941년생
소설 『고향으로 가는 바람』 『징소리』 『철쭉제』 『된장』 『생오지 뜸부기』 『타오르는 강』 등
 

소설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소설을 쓴다는 것이 소승적 차원에서 단순한 구도의 길 찾기에 머무는 것일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늘 이 시대의 소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새로운 변화와 다양한 버전이 시도되고 있는 스마트시대에 과연 소설은 무엇인가. 내가 쓴 소설이 삶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굴절된 역사를 복원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숨 가쁜 변화 속에서 환경과 삶이 황폐해가고 있는 이 시대의 소설에는 인간이 역사적 사회적 존재임을 다시 깨닫고 비틀거리는 삶을 바르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오랫동안 역사적 사건에 매달리는 이유도, 진실 되고 아름다운 역사적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소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발 1,187미터의 무등산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유년시절에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산 너머 넓은 세상을 동경했었고, 광주로 나가 살면서부터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다. 유년시절에는 남쪽에서 북쪽의 무등산을, 어른이 되어서는 북쪽에서 남쪽의 무등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무등산의 이쪽과 저쪽에서, 늘 보이지 않은 다른 한쪽을 동경해온 것이다. 지금까지 내 생의 행로는 결국 ‘무등산 바라보기’이고 ‘무등산 안고 돌기’인 것 같다. 광주에서는 무등산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지금은 무등산으로 지는 해를 본다. 산은 인간과 달리 앞뒤가 없으며, 해는 나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진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무등산의 이쪽과 저쪽의 세상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저쪽이 욕망과 경쟁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상이라면 이쪽은 정체와 무욕, 소외와 궁핍의 땅이다. 유채색의 세상인 저쪽 사람들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치열하고 비인간적인 경쟁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간다면, 무채색의 세상인 이쪽 사람들은 변화보다는 옛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느리게 살고 있다. 나는 느리고 낡은 것들 속에서 아름답고 새로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1959년 광주고 문예부 시절. 중앙이 수필가 송규호, 그 옆이 이성복, 오른쪽이 필자

나는 2006년 대학을 정년퇴직하고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 청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잔잔하다. 나는 55년 만에 귀향했다. 열세 살 때 6·25를 만나, 빗발치는 총알 사이를 뚫고 고향을 떠났던 나는 창안백발(蒼顔白髮)이 되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오지’ 마을은 무등산 뒷자락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로, 버스도 들어오지 않고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다. 마당에는 꺼병이들이 노닐고 집 앞 논둑길로 고라니가 느럭느럭 걸어가는 곳. 야트막한 산에 소나무 숲이 연꽃처럼 둥그스름하게 에두른, 한갓지고 옴폭한 이곳에서 세상은 너무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2010년 봄 고향에 돌아온 필자와 아내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깊은 골짜기에 운둔하듯 살다보니, 오랫동안 놓쳤던 소중한 것들이 새로운 빛깔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나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졌다. 예전에는 두 눈 부릅뜨고 우주를 끌어안으려는 욕심으로 만용을 부렸다면, 지금은 거꾸로, 아주 작은 들꽃을 통해 우주를 보듯 낮은 자세로 살아가려고 한다. 큰 것을 통해 작은 것을 보는 것보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명징하다. 비로소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역사나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도 알았다. 이념보다 사랑이, 경쟁보다 느림이, 거대담론보다 일상이, 낯설음보다는 익숙함이 때로는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는 것도. 이념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나왔지만 들꽃이나 나비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은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1964년 조선대 국문과 3학년때 왼쪽 두번째가 필자, 그 옆이 소설가 이삼교

나는 77년 첫 창작집 『고향으로 가는 바람』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작가 후기에 ‘내 망막에 신비니 환상이니 관념의 안개 따윈 말끔히 걷고, 짓밟고 짓밟히는 사람들의 처절한 목소리와 깊은 상처를 속속들이 쓰다듬고 싶다’고 썼다. 철저하게 리얼리즘 입장에서 휴머니즘을 강조했다. 이 같은 작가적 입장 때문에 「청소부」, 「여름공원」 등 초기 작품들은 사회성이 강했다. 소설 미학이나 문학성 획득보다는 진실 드러내기와 사회 비판에 비중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후, 연작장편 『징소리』에서는 한(恨)을 소설미학으로 수용하려고 했다. 나는 이 작품에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지 농민들의 ‘고향 상실의 한’을 드러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 미학적 특질의 하나인 한(恨)을 체념이나 패배주의적 감정이 아닌, 끈질긴 생명력과 의지력, 희망으로 해석했다. 한국적인 한이야말로 생명의 미학이며 의지의 미학인 것이다. 한은 결코 패배주의자의 한숨이나 체념, 비관주의적 민족정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력이며 싸워나갈 수 있는 힘과 희망의 원천이기도 하다.
 
▲광주대 교수시절. 좌로부터 아동문학가 배봉기, 시인 김은수 이은봉, 필자, 평론가 신덕룡, 소설가 유순영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9권) 에서는 개인의 한을 민중의 한으로 확대시켜 보았다. 1886년 노비세습제가 풀리자 영산강 주변에는 많은 노비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고향을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지배계급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된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개별적인 한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여럿의 한이 한 덩어리로 뭉쳐 민중의 한이 될 때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듯 나는 1974년 등단 이래로 우리 지역의 역사와 고향, 그리고 한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80년대 이후부터는 6·25 공간에서 비극적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무 이념적 인간들을 소설에 등장시켜서 분단극복의 과제를 풀어보려고 하였다.    

▲1991년 여름 전남 담양 소쇄원에서 손정연, 조효석, 최하림 등과 함께

 
무엇보다 소설가로서의 내 정서의 뿌리는 고향이다. 고향은 내 문학의 기본 미학인 것이다. 나는 아픔이 많은 내 고향을 내 육신과 영혼만큼이나 사랑한다. 나는 고향을 인간의 존재양식으로 파악한다. 고향은 단순히 낳고 자란 성장의 공간이기에 앞서, 인간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고향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의미와 같고 고향 찾기는 바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고향의 역사가 바로 우리 시대 역사의 한가운데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바로 내 소설의 주제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향은 언제나 절망과 좌절로부터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내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이 끝없는 생명에 대한 확인을 통해서 비로소 내 자신의 엄숙한 실존을 느낀다.   
 
나는 2009년 5월에 열 번째 창작집 『생오지 뜸부기』를 내놓았다. 이 소설집에 실린 8편의 소설들은 모두 2006년 이후, 생오지에 들어와 살면서 쓴 작품들이다. 생오지 사람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깨달은 것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이들은 오늘의 참담한 농촌현실 속에서도 농촌공동체 복원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해마다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 새로운 꿈을 경작하며 살아간다. 현실은 핍진상태이지만 아직 이 공간에는 원초적 생명력이 넘치고 있다. 넓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은 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나는 삶의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의 무대는 무한하나, 존재의 뿌리를 내린 공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는 요즘 자연의 소리 공간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 즉 ‘랜드 스케이프’에만 신경을 썼지, ‘소리풍경’(사운드 스케이프)에는 무관심해왔다. 생명 가진 것들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은 자연의 소리가 70% 이상 보존되는 곳이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도시는 기계음이 점령해버려 자연의 소리인 ‘사운드 스케이프’ 공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생오지’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소리풍경’의 세상이다. 『생오지 뜸부기』는 자연의 소리가 옴씰하게 살아있는, 건강한 생명의 공간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문명의 고속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고향의 원형을 복원하고 생명이 갖고 있는 본디 모습을 되찾기 위한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필자는 고향인 생오지모을에 문학의집 생오지를 열고 매년 문학제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