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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 한국문학사 스토리텔링을 구상하며

글 ㅣ 박덕규_소설가, 시인,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58년생
소설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밥과 사랑』 『사명대사 일본탐정기』, 시집 『아름다운 사냥』, 평론집 『문학공간과 글로컬리즘』 등



 

1. 역사 허구물의 역사 왜곡을 넘어

역사를 소재로 한 영상물이 인기다. 공중파에 종편까지 여러 방송국들이 대작 사극들을 다투듯 방영하는 중이다. 역대 영화 흥행 순위에도 최근 사극 영화 여러 편이 최상위급에 올라 있다.
 
드라마가 각광받는 시대니까 사극도 한 몫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고, 그만큼 ‘사극이 대세’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떻든 우리는 이즈음, 역사 드라마,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천만 관객의 사극 영화들 그리고 역사 스토리를 소재로 한 ‘대박’ 게임 등이 제공하는 ‘역사 허구’를 한껏 즐기며 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학교나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때로는 깊이도 있는 역사를 그들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아직 역사 지식도 얕고 그 인식도 철저하지 않은 어린 세대들이 그들 ‘역사 허구물’이 전하는 재미에 빠져 자칫 ‘왜곡된 역사’를 사실로 수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씻기 어렵다. 사실, 우려를 넘어 ‘방영 금지’를 탄원하고 싶게 하는 것들도 꽤 있다.

한데, 역사 허구물의 역사 왜곡 문제는 그리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게 또한 문제다. 다수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 허구물이 설사 역사 왜곡을 한다 해서 국민의 역사적 지식이나 인식이 쉽게 오염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편으로는, 역사 왜곡을 입이 닳도록 지적해도 그들 역사 허구물은 그마저도 당장의 흥행과 결부시키려는 꿍꿍이만 드러내는 듯하다. 그들에 대한 ‘역사를 아는 이’의 책무는 글이나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근거 있게 제시해 합당한 역사인식을 고취시키려 애쓰는 선에 머무는 건지도 모르겠다.
 
 
2. 윤동주 시집 스토리텔링
 
문학 공부를 하다보면 이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드는 ‘문학사적 스토리’를 만날 때가 있다. 나처럼 ‘픽션’의 유혹을 자주 느끼는 문인은 아마도 ‘문학사 드라마’ 같은 걸 머릿속으로 꽤나 구상해 봤을 법하다. 예를 들어 만해, 춘원, 나혜석, 이상, 백석, 임화 등은 ‘역사 허구물’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캐릭터로, 이 중 몇은 이미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재탄생된 바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사연 많은 인물들이라면 영상 담당자들도 언제든 비교적 편하게 극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우려하는 ‘문학사 왜곡’도 금세 일어날 가능성이 큰 소재라 할 수 있다. 문학인 스토리의 극화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일은 좀 더 입체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가능하면 문학사 왜곡이 덜 일어나게 했으면 한다는 거다. 그 점에서 나는 ‘문학인 스토리’가 아닌 ‘문학사 스토리’가 중요하고, 나아가 다양한 ‘문학사 허구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문학사 스토리텔링’을 구상해 보곤 한다.

문학사 스토리텔링에 아주 합당한 소재로 나는 ‘윤동주 시집’을 말해 왔다. 이때 주인공은 시인 윤동주이기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대표되는 윤동주 시집이라야 좋다. 아시다시피 윤동주(1917~1945)는 간도의 명동 출생으로 연희전문에 와서 대학을 마치고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체포되어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시인이다. 1년 뒤 경향신문에 처음 시가 소개되어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로부터 2년 뒤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자화상」 등이 실린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남아 오늘에 전해졌다. 험악한 시대를 살다 요절한 시인 치고 이런 정도의 ‘작가 정보’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이런 ‘민족적 시인’이 ‘일제의 생체 실험의 희생물이었다’는 사실은 언제 들어도 충격적이다. 이어 내가 문학사 스토리텔링을 위해 주목한 것들은 그의 죽음 이후 유고시집 발간 과정과 그 이후 이 시집의 운명에 관련돼 있다.

윤동주가 처음 발간하려 한 시집의 필사본 3권 중 한 권을 지니고 지켜낸 후배 정병욱, 윤동주가 일본에서 쓴 시를 국내에서 받아 보관한 강처중, 강처중을 통해 윤동주 시를 처음 보아 경향신문에 싣고 유고시집 발간 때 서문까지 써준 정지용, 간도에서 귀국할 때 윤동주의 다른 시들을 가져온 여동생 윤혜원, 분단 이후 ‘월북’으로 낙인찍힌 정지용의 서문과 좌익 사형수로 행방불명된 강처중의 발문을 빼고 시집을 다시 출판해야 했던 출판사 정음사, 정병욱의 누이와 결혼하고 평생을 윤동주를 기리는 일에 전념한 동행 윤일주, 감옥에 함께 투옥된 몸으로 윤동주가 주사를 맞고 죽었다고 증언한, 얼마 뒤 같은 길을 간 고종사촌 송몽규, 그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한 당숙 윤영춘(가수 윤형주의 부친), 그 주사가 생체실험용이었으리라 주장한 일본인 고노 에이치(鴻農映二), 윤동주의 최후를 알게 되어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을 조직한 일본인들…… 윤동주 시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런 ‘문학사 스토리’가 얹어지면서 더욱 폭넓고 강렬하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바로 이런 입체적인 관계에 대한 앎이 충만한 허구를 요청해 보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극 양식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몰라서 ‘시인 윤동주’ 말고 ‘윤동주 시집’을 주인공으로 하자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만일 윤동주를 극화한다면 이런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역사에 대한 ‘단견’과 ‘왜곡’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은 이런 스토리의 직접적인 극화를 반드시 기대하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내가 문학인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 등에 제한하지 않고 굳이 ‘문학사 스토리텔링’을 말하는 것은 영상물 극화를 포함해서 앞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무수한 ‘스토리적 구성’들 역시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 진행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에서다.
 
 
3. 스토리는 ‘응향 사건’으로 이어지고

윤동주가 옥중에서 남긴 시 한 편을 가상해서 「우물 사나이」(1995)라는 중편소설로 발표한 적이 있는 나는 윤동주 시집 스토리를 다시 꾸며 음악극 극본(2006)으로 발표했다(물론 어디서도 공연물로 제작하겠다는 말은 없다). 이 극에는 윤동주 외에 강처중, 송몽규, 정병욱, 정지용 등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또, 윤동주 시집을 사이에 두고 윤동주가 실제 혼인할 생각까지 품었으리라 짐작되는 여인과 윤동주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본 형사에게 보고하고는 아마도 죄의식에 시달렸을 하숙집 하녀가 삼각관계를 이루어 극적 사연을 연출한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체실험을 한 의사의 딸이 주도하는 윤동주 시 읽는 모임도 스토리의 한 켠을 담당한다.

최근 이 윤동주 스토리텔링에 꼬리를 물어준 인물을 뜻밖에 북한문학을 통해 만났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제에 체포될 때 함께 취조를 받은 연희전문 중퇴생 백인준(1920~1999)이 바로 그다. 백인준은 평북 출신으로 1946년 월북해서 북한의 문예창작과 이론 분야에 초석을 다진 이후 북한 문학의 핵심에서 최고의 권위까지 누리고 타계했다. 그의 이름이 남한에 처음 알려진 때는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의 광복 일주년 기념 시집 『응향(凝香)』을 비판하면서다. 비판의 대표적인 표적은 『응향』에 「여명도」 등 5편의 시를 실은 구상(1919~2004)이다. 구상은 이듬해 2월 평양에서 검열관이 내려온 가운데 원산의 ‘원산관’이라는 영화관에서 『응향』에 대한 성토대회가 열리는 날 월남을 감행한다.

이때 구상이 연천에서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가 탈출한 사연을 비롯해서 이후 우리 문단에서 활동한 일 전체로 ‘문학사 스토리’가 되고도 남는다. 여기에 『응향』의 표지화를 그린 일로 수난을 겪은 화가 이중섭(1916~1956), 당시 검열관이었다가 뒤에 월남해 구상과 조우한 소설가 김이석(1914~1964) 등 여러 인물이 가로세로로 스토리를 파생시킬 수 있다. 1989년 놀랍게도, 『응향』의 게재 시인 중 한 사람인 정율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숙청을 피해 카자흐스탄 고려인으로 산 정상진(1917~)이 바로 그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다수가 만든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한국문학사는 드라마를 비롯해 전 지역의 문화콘텐츠를 향해 열린 스토리텔링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