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및 공지사항

제1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발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8.11.04|조회 : 10362

 1. 개 요
  -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국내 최대의 종합문학상인 대산문학상의 제16회 수상작을 선정, 발표하였다.

  - 제16회 대산문학상의 부문별 수상작과 작가로는 시부문 김혜순 作 『당신의 첫』, 소설부문 구효서 作 『나가사키 파파』, 희곡부문 정복근 作 「짐」, 평론부문 김인환 作 『의미의 위기』가 선정되었다. 스페인어권의 번역작품을 심사한 번역부문에서는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수상작에는 상패와 함께 소설부문 5천만원, 시 희곡 평론부문 각 3천만원씩 4개 부문에 총 1억4천만원의 상금이 시상되며, 시, 소설, 희곡 부문 수상작은 2009년도 번역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당 어권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 소개된다.



  - 대산문화재단은 수상작 선정 사유로 ▲시부문의 『당신의 첫』은 수일한 이미지들과 흉내 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하는 점 ▲소설부문 『나가사키 파파』는 역사에 얽힌 가족사나 정체성, 시대적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일상적 삶 속으로 불러내고자 시도한 점이나,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동체가 가족을 대신해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어내는 점 ▲희곡부문 「짐」은 어두운 과거사를 간결하게 녹여 그 답답한 미해결의 상태를 적절히 문제화시켰으며, 특히 뛰어난 비유와 상징, 울림이 있는 묵직한 대사, 창의적 구성 등이 돋보인다는 점 ▲평론부문 『의미의 위기』는 인문학적 식견에 바탕한 섬세한 작품읽기와 문학사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이 돋보인다는 점 등이 높이 평가되었다. ▲번역부문(스페인어권)에서는 원 텍스트가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 번역의 충실성, 스페인어권 독자에게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 가독성, 현지에서의 반응 등 네 가지 심사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을 찾지 못하여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 대산문학상은 “개성적 시선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회를 통찰하며 그 시대의 문학정신을 섬세히 드러내고 얽어낸 작품으로서 세계인과 함께 공유할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을 선정, 시상”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2007년 8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된 모든 문학작품이었다.

  대산문학상은 매년 한국문학의 성과를 집대성하여 그 많은 작품 중에서 부문별 수상작을 단 1편 선정(공동수상이나 가작 없음)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과정은 항상 치열한 토론이 이어지고 분위기가 더러 곤혹스럽게 되기도 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르거나(시, 소설 부문), 몇 차례의 모임을 거쳐 좁혀진(희곡, 평론, 번역 부문) 수상후보작들은 심사위원들에게 심한 선택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특히 올해는 각 부문에서 심사위원 간 치열한 논쟁이 있었는데 수상작 선정이라는 최종 합의점에 이르기까지 4차례의 투표를 진행하는 이색적인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평론과 희곡부문에서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작을 정하는 전원이 흡족한 결과를 보았고 번역부문에서는 어권별 심사제로 인해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스페인어권 심사의 해에 수상작을 내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중진과 중견의 생명력과 신진문인들의 활력, 그리고 한국문학의 풍요로운 결실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 대산문학상은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대산문화재단의 설립취지에 따라 시․소설․희곡․평론․번역 등 5개 부문을 선정, 매년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으로 최근 1년 여 동안 단행본으로 발표된 문학작품 가운데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고 한국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 시상하는 작품상이다.

 - 대산문학상은 올해부터 소설부문의 심사대상을 장편소설로 한정하고 상금을 5천만원으로 인상하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0편의 작품들은 다양성 속에 한국소설의 장편 중심 체질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앞으로 작가의 역량 집중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예심은 김기택 이희중 황인숙(이상 시), 김영찬 김인숙 성석제 신수정(이상 소설) 등 소장 및 중견문인, 평론가 7명이 6월 중순부터 약 세 달 동안 진행하였다.

  본심은 강은교 김우창 신대철 정과리 최승호(이상 시), 김원우 도정일 윤흥길 최윤 황광수(이상 소설), 김성희 오세곤 오태석 이만희 채윤일(이상 희곡), 권택영 김병익 염무웅 윤지관 황현산(이상 평론), 김춘진 손관수 송상기 신정환 클라우디아 마시아스(이상 번역) 등 중진 및 원로문인 평론가 번역가 25명이 8월 말부터 두 달 남짓 동안 장르별로 심사를 진행하여 수상작을 결정했다.

  심사위원장은 평론가 김우창 선생이 맡았다.

  - 시상식은 오는 11월 28일(금)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대연회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2. 수상작 선정 경위

  ▲ 詩 부문 : 수상작 『당신의 첫』(김혜순 作, 문학과지성사 刊)

  심사위원들은 두 번째 만남에서 김영승의 『화장』, 김정환의 『거룩한 줄넘기』, 김혜순의 『당신의 첫』,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이진명의 『세워진 사람』(시인 이름 순)을 세밀히 따져 볼 시집들로 선정했다. 『화장』은 지나치게 사적인 언희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통찰적인 언변들이 번쩍인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거룩한 줄넘기』는 정체를 도시 알 수 없는 어떤 열망의 불꽃들이 이념의 몰락 너머에서 새 세계의 전망을 향해 열심히 일렁이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의 첫』은 현실에 대한 환멸을 비유로써 억지로 채우려 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수일한 이미지들과 흉내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하였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한국어를 다루는 솜씨가 농익어 시인의 진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의견과 세계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자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세워진 사람』에 대해선, 지극히 일상어법적인 진술들을 통해 생활과 사회에 대한 진솔한 느낌을 충실히 표현했다는 점이 즐거운 화제가 되었다.

  여하튼 시적 개성과 세계를 개진하는 능력 그리고 소통 가능성, 더 나아가 번역가능성이라는 심사 기준들이 되풀이해서 토로되었고, 그것의 확인 작업을 위해 심사위원들은 수많은 투표용지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최종적으로 김혜순 씨의 『당신의 첫』이 보편적 심사 기준의 정 중앙에 가장 근접했다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 小說부문 : 수상작 『나가사키 파파』(구효서 作, 웅진문학에디션 뿔 刊)

  이문환의 『플라스틱 아일랜드』, 김영하의 『퀴즈 쇼』, 박범신의 『촐라체』, 한강의 『채식주의자』,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 등 다섯 작품이 2차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섹스와 변태성, 엽기적 살인 등이 흥건하게 등장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을 하위 장르소설적 기법을 빌려 드러내려고 시도한 이문환의 『플라스틱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현대성의 일단을 드러내고자한 주제의 의미나 방식에 있어서 평가가 엇갈렸다. 김영하의 『퀴즈 쇼』는, 온라인으로 표상되는 신세대의 현실적 곤경을 날렵하고도 안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주제나 구성 면에서 초반부에 비해 불필요하고 장황하게 길어진 후반부의 전개가 이 작품의 주제를 흐린 점과 뒤로 갈수록 열정이 사라진 듯 모노톤한 언어가 난점으로 지적되었다. 박범신의 『촐라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요즈음의 문학 경향에 대해 산악소설의 틀을 빌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실존적 문제를 남성적인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있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한 채식주의자가 현실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침착한 문장으로 진지하게 그려낸 수준작이라는 평이 있었다.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는 역사에 얽힌 가족사나 정체성, 시대적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일상적 삶 속으로 불러내고자 시도한 점이나,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동체가 어떻게 가족을 대신해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가에 중점을 맞추어 논의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본심은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두 작품이 공히 대상을 수상할만한 장점들을 구비한 수준작이라는데 의견을 모아 두 작품을 표결에 붙였고, 다수가 모아진 구효서의 『나카사키 파파』를 2008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 戱曲부문 : 「짐」(정복근 作)

  심사위원회는 1차로 7편의 작품을 검토 대상으로 정하였고 7편의 작품 중 2차 검토 대상으로는 정복근 작 「짐」과 장성희 작 「꿈속의 꿈」을 정하였다.

  먼저 정복근 작 「짐」에 대하여는 어두운 과거사를 간결하게 녹여 그 답답한 미해결의 상태를 적절히 문제화시켰으며, 특히 뛰어난 비유와 상징, 울림이 있는 묵직한 대사, 창의적 구성 등이 돋보인다는 평가였고, 얼핏 결함으로 보이는 ‘단순 반복’조차도 ‘단순’은 ‘절제’ 내지 ‘여백’으로, ‘반복’은 오히려 작가적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잘 계산된 ‘극작술’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음으로 장성희 작 「꿈속의 꿈」은 특히 언어에 대한 치열성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대단한 공력이 엿보인다는 평가였다. 다만 남다른 작가적 열정의 결과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채워 넣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정복근의 「짐」은 예의 작가적 고집으로 오랜 세월 갈고 닦아 응축시킨 완성도 높은 열매로 볼 수 있지만, 장성희는 앞으로 계속 도전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 키우고 완성시켜 나갈 작가라고 판단였다. 만장일치로 정복근 작 「짐」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 評論부문 : 수상작 『의미의 위기』(김인화 作, 문학동네 刊)

  심사위원회는 첫 모임에서는 한 해 동안 출간된 평론집 성격의 책들 가운데서 평론가의 그간의 활동과 평론서의 비중을 일일이 점검하여 검토 대상이 될만한 12권의 책을 선정하였다. 두 번째 모임에서 각 작품들의 특성과 장단점에 대한 논의 끝에 큰 어려움 없이 김인환의 󰡔의미의 위기󰡕, 윤영천의 󰡔형상과 비전󰡕, 장경렬의 󰡔응시와 성찰󰡕,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 네 편의 저작을 2차 검토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김인환의 작품집은 인문학적 식견에 바탕한 섬세한 작품읽기와 문학사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이 돋보이고, 윤영천의 저작은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민중시의 의미를 되살려낸 면밀함이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두 중견평론가의 이번 책 모두 새 연대의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이나 접근이 미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후자는 학문적 성과를 보여주는 글들이 압도적인 비중이어서 논문집에 가까운 점이 선택을 어렵게 하였다. 문학현장에 대한 비평이라는 점에서는 나머지 두 평론집이 더 의미 있었다. 장경렬의 평론집은 여러 장르를 골고루 포괄한 성실한 읽기가, 정홍수의 평론집은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공감과 통찰을 이끌어내는 수법이 두드러졌다. 이 네 저작을 대상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인 세 번째 모임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른 투표로 김인환과 정홍수의 평론집으로 최종후보가 압축되었고, 이 둘을 대상으로 추가 논의 끝에 역시 투표를 통해 전원일치로 김인환의 평론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 飜譯부문 : 수상작 없음

  금년도 대산문학상 번역 부분 본심에는 모두 21편의 스페인어권 번역작품이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런데 후보작인 21편 중 15편, 최종 후보작에 오른 6편의 작품 중 5편이 스페인의 특정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들은 대체로 편집자의 개입이 과도한 경향이 있었고, 편집자의 경력 차이가 작품에 따라 다양했으며, 수준 높은 편집자가 개입된 경우에도 작품 전체에 대한 일관적인 편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작품 전체에 대한 편집이 일관성이 결여되어 문체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거나, 편집자의 자의적 개입으로 오역된 경우가 곳곳에서 노출되었다. 또한 번역 작품의 홍보활동과 보급을 위한 유통망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여섯 편의 작품에서도 번역의 오류가 적지 않게 노출되었다. 또한 일부 작품에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기술한 함축적 문장을 너무 친절하게 ‘해설식’ 번역을 하다보니 문학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었고, 다른 작품에서는 반대로 일부 내용이 생략되거나 축약된 채 번역되는 경우도 있어서 결격 사유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을 낼 것인지 여부에 대해 장시간 토론하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 심사평 (본심)

   시부문

의심의 폭풍을 뚫고 한 권 시집을 톺아 본 일정

  오직 단 한 권의 시집에게로 가는 길이라지만, 이렇게 힘든 항해가 또 없을 것이다. 마치 몰락을 당하고 있는 시의 사이렌이 분노의 광풍을 불어대는 듯이 보였다. 그것도 잔뜩 심통이 나서, 시 죽고 독자 죽자는 식으로 시에 관한 우리의 모든 감정과 인식과 동경과 표상들을 마구 내팽개치고 있는 듯하였다. 첫 순간부터 본심에 올라 온 11권의 시집들에게서 “일괄사표를 받고자” 하는 극도의 회의적인 시선이 심사 테이블의 의자들을 휘청거리게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시의 복잡한 생애가 저도 알 수 없는 어떤 고비에 들어선 것인지도 몰랐다. 고난의 근대사 속에서 모국어를 보듬어왔고, 70, 80년대의 가혹한 현실 앞에서 진실의 이름으로 항거하였으며, 새 세기 문화산업의 거대한 아가리 앞에서 죽음의 무도를 추었던 한국 시의 그 기나긴 부정과 저항의 역사가 어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예정된 추락이든 아니면 돌발적인 증발이든 혹은 불가해한 환상이든, 심사위원들이 직면한 한국 시의 무력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그 무력한 시들을 끌고 나가는 것 외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심사라는 항해는 그래서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불만이 여전히 대화의 어망에 넘쳐나긴 했으나 어쨌든 심사위원들은 두 번째 만남에서 김영승의 『화장』, 김정환의 『거룩한 줄넘기』, 김혜순의 『당신의 첫』, 안도현의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이진명의 『세워진 사람』(시인 이름 순)을 세밀히 따져 볼 시집들로 선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상에서의 가장 질긴 독회 중의 하나로 기록될 지도 모르는 마지막 회의가 다가왔다.

  어쨌든 당선자를 내기로 하였고 그래서 한 권의 시집으로 의견이 모여야 했다. 『화장』은 지나치게 사적인 언희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통찰적인 언변들이 번쩍인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거룩한 줄넘기』는 정체를 도시 알 수 없는 어떤 열망의 불꽃들이 이념의 몰락 너머에서 새 세계의 전망을 향해 열심히 일렁이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의 첫』은 현실에 대한 환멸을 비유로써 억지로 채우려 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에도 불구하고, 수일한 이미지들과 흉내낼 수 없는 참신한 비유들로 여러 사람을 충격하였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한국어를 다루는 솜씨가 농익어 시인의 진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의견과 세계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자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었다. 『세워진 사람』에 대해선, 지극히 일상어법적인 진술들을 통해 생활과 사회에 대한 진솔한 느낌을 충실히 표현했다는 점이 즐거운 화제가 되었다.

여하튼 시적 개성과 세계를 개진하는 능력 그리고 소통 가능성, 더 나아가 번역가능성이라는 심사 기준들이 되풀이해서 토로되었고, 그것의 확인 작업을 위해 심사위원들은 수많은 투표용지에 무언가를 기록하였다. 최종적으로 김혜순 씨의 『당신의 첫』이 보편적 심사 기준의 정 중앙에 가장 근접했다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아마도 여성 시인으로서는 첫 수상자일 당선자에게 뜨거운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강은교 김우창 신대철 정과리 최승호

   소설부문

  올해부터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의 심사대상이 장편으로 한정됨에 따라 예심을 거친 장편 10편이 본심 대상으로 올라왔다. 본심은 작품들과의 두 번의 긴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1차 본심에서는, 각 작품 별로 옥석을 가리기 위한 논의를 거쳤으며, 커다란 이견 없이, 2차 본심에서 집중해 토론해야할 작품들이 골라졌다. 토론 과정에서는 작금의 한국 장편에 대한 기대가 담긴, 거침없는 비판도 때로 울렁거렸으며 우리의 장편 장르가 질적으로 향상되어야하며 가벼움에서 벗어나 더 심화된 주제들이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겠다는 견해가 다양한 관점에서 개진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래의 다섯 작품이 2차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섹스와 변태성, 엽기적 살인 등이 흥건하게 등장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말기적 증상을 하위 장르소설적 기법을 빌려 드러내려고 시도한 이문환의 『플라스틱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현대성의 일단을 드러내고자한 주제의 의미나 방식에 있어서 평가가 엇갈렸다. 김영하의 『퀴즈 쇼』는, 온라인으로 표상되는 신세대의 현실적 곤경을 날렵하고도 안정적인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주제나 구성 면에서 초반부에 비해 불필요하고 장황하게 길어진 후반부의 전개가 이 작품의 주제를 흐린 점과 뒤로 갈수록 열정이 사라진 듯 모노톤한 언어가 난점으로 지적되었다. 박범신의 『촐라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요즈음의 문학 경향에 대해 산악소설의 틀을 빌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실존적 문제를 남성적인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장적인 문장, 서사적인 치밀함의 결여, 독자에게 간섭하는 듯한 설명체 서술이 지니는 난점에 대한 아쉬움이 표현되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적 폭력과 억압에 대항한 채식주의자가 현실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침착한 문장으로 진지하게 그려낸 수준작이라는 평이 있었다. 그러나 독특한 장편이 될 수도 있었을 이 작품이 연작의 형태를 띠면서 주제의 치열성이 이완된 점이나, 실체와 설득력이 없는 꿈의 삽입에 대해서 대립된 논의가 전개되었다.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는 역사에 얽힌 가족사나 정체성, 시대적 문제 같은 무거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일상적 삶 속으로 불러내고자 시도한 점이나,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로 구성된 다국적 공동체가 어떻게 가족을 대신해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는가에 중점을 맞추어 논의가 진행되었다. 갈등 없는 가벼움과 이메일의 단조로운 사용과 연관해 좀 더 긴밀한 서사구조에 대한 아쉬움도 표현되었다.

  마지막으로 본심은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두 작품이 공히 대상을 수상할만한 장점들을 구비한 수준작이라는데 의견을 모아 두 작품을 표결에 붙였고, 다수가 모아진 구효서의 『나카사키 파파』를 2008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심사위원 : 김원우 도정일 윤흥길 최윤 황광수

   희곡부문

  2008년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 심사위원회는 1차로 7편의 작품을 검토 대상으로 정하였다. 불과 수편의 작품만을 발표한 젊은 작가로부터 오랜 세월 수십 편의 작품을 발표한 중견 작가까지 실로 넓은 스펙트럼의 선택이었다.

  이 7편의 작품 중 2차 검토 대상으로 정한 작품은 정복근 작 「짐」과 장성희 작 「꿈속의 꿈」이었다. 특히 두 작품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 연극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 2편 외에 장유정 작 「멜로드라마」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소위 대중성과 예술성이 통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직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먼저 정복근 작 「짐」에 대하여 우선 어두운 과거사를 간결하게 녹여 그 답답한 미해결의 상태를 적절히 문제화시켰으며, 특히 뛰어난 비유와 상징, 울림이 있는 묵직한 대사, 창의적 구성 등이 돋보인다는 평가였고, 얼핏 결함으로 보이는 ‘단순 반복’조차도 ‘단순’은 ‘절제’ 내지 ‘여백’으로, ‘반복’은 오히려 작가적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잘 계산된 ‘극작술’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음으로 장성희 작 「꿈속의 꿈」은 특히 언어에 대한 치열성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대단한 공력이 엿보인다는 평가였다. 다만 남다른 작가적 열정의 결과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채워 넣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또 정복근은 소재에 있어서나 형식에 있어서나 거의 변함이 없으며 작품 발표에 있어서도 다작은 아니지만 꾸준히 안정감이 있는 데 비해 장성희는 올해만도 4편의 신작을 발표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의 작가로 그 동안 택한 소재와 형식도 다양하여 그 진동 폭이 꽤 큰 편이다.

  결국 정복근의 「짐」은 예의 작가적 고집으로 오랜 세월 갈고 닦아 응축시킨 완성도 높은 열매로 볼 수 있지만, 장성희는 앞으로 계속 도전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 키우고 완성시켜 나갈 작가라고 판단하였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정복근 작 「짐」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정복근의 작품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더욱 치열한 형식 탐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으며, 계속 주목하기로 한 장성희는 물론, 거론되었던 모든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 더욱 강렬한 도전 정신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김성희 오세곤 오태석 이만희 채윤일

   평론부문

  평론가들이 모여서 평론집을 대상으로 문학상 심사를 하는 일이 쉽지도 않거니와 곤혹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바다. 다루는 대상도 다양하고 분량도 만만치 않은 동료들의 노작과 씨름해야 하고, 여기에 심사자 개개인의 비평관이 개입한다. 이번에도 쉽지 않은 결정 과정을 예상하였으나, 결과를 내는 데는 별 논란이 없었다. 다만 대산문학상이 작품상이냐 공로상이냐의 물음은 여전히 남았다. 작품적인 성취도가 중요하겠으되 권위 있는 평론상이니만큼 평론가의 업적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사는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모임에서는 한 해 동안 출간된 평론집 성격의 책들 가운데서 평론가의 그간의 활동과 평론서의 비중을 일일이 점검하여 검토 대상이 될만한 12권의 책을 선정하였다. 이 대상에는 평단에서 주목을 받은 중견 및 신진 평론가들의 저작들은 모두 포함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 모임에서 이 일차대상작들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각 작품들의 특성과 장단점에 대한 논의 끝에 큰 어려움 없이 김인환의 󰡔의미의 위기󰡕, 윤영천의 󰡔형상과 비전󰡕, 장경렬의 󰡔응시와 성찰󰡕,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 네 편의 저작을 2차 검토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김인환의 작품집은 인문학적 식견에 바탕한 섬세한 작품읽기와 문학사에 대한 폭넓고 균형 있는 시각이 돋보이고, 윤영천의 저작은 충실한 자료를 바탕으로 민중시의 의미를 되살려낸 면밀함이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두 중견평론가의 이번 책 모두 새 연대의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이나 접근이 미약하여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후자는 학문적 성과를 보여주는 글들이 압도적인 비중이어서 논문집에 가까운 점이 선택을 어렵게 하였다. 문학현장에 대한 비평이라는 점에서는 나머지 두 평론집이 더 의미 있었다. 장경렬의 평론집은 여러 장르를 골고루 포괄한 성실한 읽기가, 정홍수의 평론집은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공감과 통찰을 이끌어내는 수법이 두드러졌다. 이 네 저작을 대상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벌인 세 번째 모임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른 투표로 김인환과 정홍수의 평론집으로 최종후보가 압축되었고, 이 둘을 대상으로 추가 논의 끝에 역시 투표를 통해 전원일치로 김인환의 평론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정홍수의 평론집이 현장성에서나 매력에서나 신진으로서 높이 살만하지만, 대산문학상의 비중을 감당할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 권택영 김병익 염무웅 윤지관 황현산

   번역부문

  금년도 대산문학상 번역 부분 본심에는 모두 21편의 스페인어권 번역작품이 후보로 추천되었다. 한국문학작품의 스페인어 번역 작품이 양적으로 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심사단은 수상작 선정을 위해 번역된 원 텍스트가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여부, 번역의 충실성, 스페인어권 독자에게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읽힐 수 있는 가독성, 현지에서의 반응이라는 네 가지 심사기준을 정하고 심사에 임했다.

  그런데 후보작인 21편 중 15편, 최종 후보작에 오른 6편의 작품 중 5편이 스페인의 특정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품들은 대체로 편집자의 개입이 과도한 경향이 있었고, 편집자의 경력 차이가 작품에 따라 다양했으며, 수준 높은 편집자가 개입된 경우에도 작품 전체에 대한 일관적인 편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즉 작품 전체에 대한 편집이 일관성이 결여되어 문체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거나, 편집자의 자의적 개입으로 오역된 경우가 곳곳에서 노출되었다. 또한 번역 작품의 홍보활동과 보급을 위한 유통망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여섯 편의 작품에서도 번역의 오류가 적지 않게 노출되었다. 제일 큰 아쉬움은 번역의 정확성에 신경을 쓰다가 전체적으로 축자적 번역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일부 작품에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기술한 함축적 문장을 너무 친절하게 ‘해설식’ 번역을 하다보니 문학성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었고, 다른 작품에서는 반대로 일부 내용이 생략되거나 축약된 채 번역되는 경우도 있어서 결격 사유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사단은 수상작을 낼 것인지 여부에 대해 장시간 토론하고 투표를 실시한 결과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앞서 언급된 네 가지 심사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을 불행히도 찾지 못하여 수상작을 내지 못함에 대해 심사단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또한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작품의 양적 성장에 비해 그 유통과 편집을 맡은 출판사가 비교적 작은 특정 출판사에 편중되어 있어, 역자의 노력이 묻히게 된 데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의 의미는 한국 문학을 외국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운 존재가 되게 하고 번역자들의 의욕을 앙양시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결과가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내용적-기술적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계기가 된다면 수상작을 배출하지 못한 아쉬움을 다소 달랠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