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창훈_소설가. 1963년생. 소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홍합』 등
Ⅰ
내 이름은 원래 영훈이었다. 아버지께서 청년 시절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주인공이 영훈이었고 그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들을 낳으면 꼭 그 이름으로 지어야지 하셨다.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섬에 용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천재로 태어난 바람에 바보가 되어버렸다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누구를 놀릴 때 아이구 저 용운이(이곳 발음으로 용우이,이다) 같은 놈, 이라 했다. 그 사람 이름의 발음이 내 이름의 발음인 영우이와 너무나 비슷해 사람들이 나를 용우이, 용우이, 하고 놀리곤 했다.
내가 태어나자 할아버지께선 창길이라고 이름을 지어보내셨다 한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영훈이란 이름에 대한 미련이 컸고 뒤에 길자(字)가 들어가 버리면 웬만해서는 촌스러움을 면하기 어려우므로(예를 들어, 중학교 때 친구였던 삼길이처럼) 두 이름을 합쳐 창훈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하여 나는 영훈보다는 창훈이 더 나았는데 지금도 섬에서는 영훈이가 내 이름이다.
Ⅱ
외삼촌과 함께 바다로 그물을 걷으러 나갔다. 놀래미, 쏨뱅어, 참돔, 망상어, 돔발상어, 쥐치, 소라 따위가 드문드문 잡혔다. 그러다가 그물이 거의 끝날 때쯤 누리끼리한데다가 모양 또한 뚜렷하지가 않은, 마치 노란 밀가루 반죽 같은 생선이 올라왔다. 생전 처음 본 거였다.
“팔저리다.”
이름 또한 처음 들어본 거였다 팔저리? 거참 희한한 이름이다, 싶어(하긴 문저리라는 생선이 있기는 하다) 나는 자꾸 그 생선에 눈이 갔다. 그런데 손으로 만지지 말라는 것을 무시하고 한번 만져 보았다가 깜짝 놀라 손을 떼고야 말았다. 손끝부터 어깨죽지까지 감전된 듯 전기가 부르르 치솟아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아, 그 녀석은 전기가오리였던 것이다. 만지면 팔이 저리니까 팔저리라 한다. 이름이란 그렇게 생길 수도 있었다.
Ⅲ
외삼촌은 여수에서 거문도를 다니는 여객선 선장이셨다. 덕일호라는 여객선의 선장으로 계실 때 한번은 만삭의 임산부가 거문도에서 탔다. 아무래도 몸의 상태가 안 좋아 여수의 큰 병원으로 나가는 중이었는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만 극심한 진통이 오고야 말았다. 의사나 간호사가 탔으면 다행이겠으나 그 날 배에는 모두 구경하려는 사람들 뿐이었다. 결국 선장이 나서서 객실 하나를 치우고 이불을 깐 다음(사무장은 좋은 구경났다고 모여든 사람을 돌려보내느라 바쁘고 화장(배의 주방장)은 물 끓이느라 정신 없었다) 직접 아이들 받았다.
훗날 새댁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끝에
“이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까 선장님이 이름까지 지어주시오.”
했다.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삼촌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웃으면서 말했다.
“덕일호에서 낳았으니까 덕일이라고 하시오.”
그리고는 설마, 했다. 듣자니 김덕일이는 지금 고등학교 이 학년으로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고 했다.
Ⅳ
얼마 전 한 사내를 만났다. 초등학교 사무원으로 여수에서 거문도까지 여러 면 단위 학교들을 옮겨다니며 한 평생 보낸 이였다. 섬과 학교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오래도록 떨어져 지냈으니 참으로 힘들었겠다며 가족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아내와 삼녀 일남을 가족으로 두고 있었다. 딸을 내리 셋 낳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았는데 더 낳아보고 싶었으나 박봉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단산했다고 한다.
사내의 셋째 딸 이름이 서이였다. 직업 때문일까? 귀가 솔깃해져서 속으로 서이, 서이, 되 내어 보았다. 당장 토지의 서희가 생각났지만 서희도 아니고 서이? 상상력이 풍부하게 깔려있는 듯한, 아주 매력적인 이름이어서 어떻게 그렇게 독특한 이름을 다 지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듣고는 가슴 한켠이 저려오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뭔 특별한 이유가 있었간디요. 솔직히 셋째까지 딸을 낳아서 영 섭섭합디다. 그래서 뭐 한문 맞춰서 이름짓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서이라고 했소. 하나, 둘, 서이, 너이, 하는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