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8월까지 세 달 간의 문학계 동향은 역시 시장과 연결 지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할 정도로 문학 서적, 그 중에서도 소설 책의 판매가 올 여름 두드러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문단은 물론 각종 공론장을 뒤흔들던 문단 내 성폭행 이슈와 촛불 정 국이 5월 대선으로 급속히 동력을 상실한 빈 자리, 출판가 최대의 흥행 대목인 여름 시장은 당초부터 문학 강세장이 점쳐지기는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등 폭발력 있는 빅타이틀들의 동시다발적인 출간이 진작부터 예고됐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문학 강세장은 예상보다 파고가 높았다. 6월 첫째 주(5월 31일~6월 6일)부터 8월 둘 째 주(8월 2~8일)까지 10주간,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 1권과 김영하 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조남주의 페미니즘 아이 템 『82년생 김지영』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계 10 위권 바깥으로 단 한 차례도 밀려나지 않았다. 유 례 없는 예약 판매 열기를 기록한 하루키의 『기사단 장 죽이기』 1권은 7월 셋째 주 출간되자마자 종합 1 위에 올라 3주 연속 그 자리를 지켰다. 산문집인 이 기주의 SNS 셀러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까지 문 학 안에 포함시킨다면 올 여름 베스트셀러 가운데 문학의 비중은 한층 두터워진다. 몇 년 만에 이례적으로 전통의 ‘출판 우량주’인 소 설이 부활한 모습인데, 이런 소설 특수 현상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은 내놓기 어렵다. 베스트셀러 각각의 성공 비결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잠』 1권과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조남주의 페미니즘 아이템 『82년생 김지영』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집계 10위권 바깥으로 단 한 차례도 밀려나지 않았다. 유례 없는 예약 판매 열기를 기록한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1권은 7월 셋째 주 출간되자마자 종합 1위에 올라 3주 연속 그 자리를 지켰다.
가령 김영하 소설 『오직 두 사람』의 인기는 역시 작가의 방송 출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작 품의 자체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지금 누리는 성과는 출판 시장에 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TV의 도움 없이는 힘들었으리라는 얘기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역시 작품 자체의 장점 이외에 ‘외부 효과’를 톡톡히 본 경우다. 이 경 우 외부 효과는 정치적인 요인이다. 영화의 원작소설이 영화 개봉에 힘 입어 인기를 얻는 스크린셀 러 현상에 빗대 『82년생 김지영』을 ‘폴리틱스 셀러’라 부를 수 있을까. 시작은 지난 3월 더불어민주 당 금태섭 의원이 동료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면서부터다. 5월 19일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읽어보라고 선물하면서 판매가 폭발했다. 출판사 민음사에 따르면 소설은 지난해 10월 출간 이래 대통령 선물 이전까지 6만 부가 팔린 상태였다. 출 판·소설 장기 불황 시대에 그것만 해도 충분히 인정해줄 만한 수치지만 선물 이후 세 달 간 무려 16만 부가 팔렸다. 8월 중순 현재 총 22만 부가 팔린 상태다. 과거에 TV 덕분에 판매에 날개를 단 미디어셀러가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2000년대 초 반 MBC의 책 소개 프로그램 ‘느낌표’였다. 한 출판인은 “요즘 김영하 소설의 인기는 과거 느낌표 선정 도서가 누리던 특수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효과가 대단했던 거다. 김중 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같은 책들이 느낌표 도서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양질의 도서는 얼마든지 권장할 만한 일종의 양화(良貨)일 텐데 그런 점에서 다분히 전략적인 도서 띄우기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느낌표’의 문제는 일종의 로또 복권 같은 느낌이었다는 데 있다.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운수 대통해 한 방을 가져다 주는 동료 작가, 이웃 출판사의 결정적인 방송 노출은 몇 년을 공들여 노작(勞作)을 생산해 내는 작가나 출판인의 정직한 노동 의욕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선정을 둘러싼 잡음도 있을 수 있다. 가물가물하지만 느낌표도 선정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던 것 같다. 폴리틱스 셀러 역시 기껍지만은 않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당대의 시대정신과 구성원들의 집단 열망 같은 것이 투영되기 마련인데, 그런 점에서 정치적 열망의 궁극적 구심점이라고 해야 할 최고 권력자의 마음이 얹힌 책을 선택해 읽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 하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일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된다. 독서는 정치적 신념이 강화 되거나 반대의 경우 허약해지는 과정이 될 텐데 그게 나쁠 건 없지만 좋을 건 또 뭔가. 좋은 책이 나름의 미덕만으로 보다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다. 그에 비하면 하 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나 역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0위 문턱을 넘나들었던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위험한 비너스』 같은 책들은 작가와 작품 자체의 인 력으로 순위를 유지하는 경우일 것이다. 어쨌거나 올 여름 뜨거운 문학시장은 서로 다른 성공 요인을 갖춘 경쟁적인 소설들의 출판 시기 가 공교롭게도 겹치다 보니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일이지만 우려도 따른다. 일종의 과점 시 장이어서 그 결과가 문학출판 전체로는 득이 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득이 된다는 판단이다. 일종의 낙수 효과를 불러 일으켜 가령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구입 하기 위해 서점을 찾은 독자가 중소 규모 출판사에서 나온 상대적으로 지명도 떨어지는 작가의 소 설책을 함께 구입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상상이다. 과점에 부정적인 입장은 전체 문학 독자의 숫 자와 도서 구입 총액이 최근 몇 년 간 큰 변동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예산이 한정돼 있는데 굵직한 용처가 미리 정해져 버리면 자잘한 씀씀이는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규모 출판사, 중 지명도 작가의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고전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볼멘 소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