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먹거리의 쌍벽,엿과 뻥튀기

박목월 시인과 함께 찰칵!

누구든 무장해제시키는 하회탈 미소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9세기 사상사의 이단아 백운 심대윤의 『심대윤전집』

당나귀 달력으로 삼십 년 외 모델하우스 외

플리즈 콜 미 이모의 조카

비눗방울열매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시의 부요,혹은 그러한 기후의 발견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스필버그보다는 로알드 달

당신이 말할 차례를 기다릴 때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흙빛의 시

모범 시인 두보의 모범적이지 않은 한시

번역으로 맺은 우정

해석적 역할과 정동성(情動性)을 끌어안는 모험 사이에서

한 잔의 붉은 거울 등

2016 한국·스페인어권 문학교류의 밤 개최 외

우리시대의 화제작

당신이 말할 차례를 기다릴 때

- 2006년의 화제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글 최윤정 ㅣ 평론가. 1992년생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

소설을 읽고 감상을 정리할 때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다. 문득 나의 이해가 의심되고, 고집 센 나의 오독(誤讀)이 끝끝내 소설의 핵심을 왜곡하고 말리라는 죄책감에 휩싸일 때가. 한 줄을 지우고 또 한 줄을 지우다 첫 줄로, 다시 흰 바탕으로 되돌아가기를 몇 번씩 반복하곤 했다. 이는 어떤 소설을 만나게 되든 마찬가지였으나, 비교적 덜 알려진 소설 혹은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었다. 소설이 바깥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로울수록, 바깥에 위치한 내가 소설 안을 들여다보는 시선 또한 자유로웠다. ‘틀린 것 같다’는 불안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일까. 공지영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어 나가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해했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영화로서도 흥행에 성공한 이 작품 앞에서 나는 감히 어떤 시선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책을 펴 보기도 전인데,시선의 방향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을 아주 짧게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사형수와 자살기도자의 사랑이야기.’ 나는 이 한 줄의 문장에 지배당했고, 이 한 줄의 문장 속에서 빈틈을 찾기란 쉽지 않으리라 함부로 예상했다. 두 인물은 특수한 인물들이었다. 반면, 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인물에 불과했으므로 그들을 파국으로 몰아붙인 고통 속에 동참할 수 없을 터였다. 경험을 공유할 수 없으니 이해를 시도할 자격마저 잃어버린 것 같아 침울했다. 오독(誤讀)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사형수와 자살기도자의 사랑이야기.’
나는 이 한 줄의 문장에 지배당했고,이 한 줄의 문장 속에서 빈틈을 찾기란 쉽지 않으리라 함부로 예상했다. 두 인물은 특수한 인물들이었다. 반면, 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인물에 불과했으므로 그들을 파국으로 몰아붙인 고통 속에 동참할 수 없을 터였다. 경험을 공유할 수 없으니 이해를 시도할 자격마저 잃어버린 것 같아 침울했다.
오독(誤讀)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당신을 몰라요. 기사가 당신을 다 말해준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신문 기사에는 사실은 있는데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은 없어요. 사실을 만들어낸 게 진짜 사실인데 사람들은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은 행위 전에 이미 행위의 의미가 생겨난 것인데.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4~205쪽

요약된 문장 속에서 두 인물은 각각 세 명을 ‘살인한’ 사람과 세 번이나 ‘자살기도를 한’ 사람 즉, 행위자로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두 인물은 각각 ‘윤수’라는 사람과 ‘유정’이라는 사람 즉, 인물 자체로서 그려지고 있다. 행위자를 알고 싶다면 행위를 보면 된다. 그러나 인물을 알고 싶다면 행위 너머를 봐야 한다. 행위로부터의 끊임없는 역추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사실”에서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로, “행위”에서 “행위의 의미”로 후진하고 또 후진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내 상처를 꺼내는 것이 그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202쪽)”이 되는 지점에 서 있었다. 그곳에 ‘진실’이, 나의 진실이 있었다. 오독(誤讀)을 위한 단서가 있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과연 베스트셀러다운 소설이다. 이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행위자와 인물을 동일시하기 쉬운 소설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물의 행위에 대한 이해를 인물 자체에 대한 이해로 오해하기 쉬운 소설이라는 것이다. ‘행위’에서 행위를 만들어낸 ‘상황’으로 한 발 물러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황’에서 상황을 만들어낸 ‘동기’로 한 발 더 물러서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독자들이 각자의 ‘진실’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만이 무한히 반복될 뿐이다.
2006년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소위 말하는 힐링도서 및 자기계발서의 득세가 두드러진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치유법과 성공법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독자들은 객관적 방법론에 대한 기대를 쉬이 저버리지 못한다. 이는 개인적 체험과 또 다른 개인적 체험이 교차하는 순간, 보색(補色)의 혼합처럼 드러나게 될 보편적 체험에 대한 기대이며, 따라서 ‘틀린 것 같다’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이다. 힐링도서와 자기계발서를 각각 앞뒤에 거느린 채 2위에 오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역시 이러한 기대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소설만이 가능한 방식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갔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행위에 기원을 두는 힐링도서 및 자기계발서와 달리, 소설은 인물에 기원을 둔다. 독자가

인물들 각자에게서 자신과의 유사색(類似色)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소설에 있어서, 오독(誤讀)은 곧 정독(正讀)인 셈이다.
최근의 소설들은 특수한 인물보다는 일상적인 인물을 내세우는 경향이 짙다. 이는 역추적의 과정을 단축하는 동시에, 진실을 층위화(層位化)한다는 점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독자들 또한 더욱 영리해져, 오독(誤讀)의 위험에 맞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책을 펴 보기에 앞서, 자신이라는 인물의 구성요소부터 미리 추출해둔다.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을 엄격히 구분해내기 위하여. 그래서일까. 타자와의 소통을 고민하는 소설은 많은데, 정작 타자 자체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적어진 것 같다. 타자와의 소통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나, 특정한 타자와 같은 입장에 놓인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통이 서로의 진실을 교환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나의 진실과 당신의 진실이 완벽히 일치해서는 의미가 없다. 내가 말을 맺은 후 “당신이 말할 차례(207쪽)”를 기다릴 때, 나는 “당신에게 무언가 얻어(207쪽)”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내게는 없는 무언가를, 그래서 내가 오독(誤讀)할 수 있
게 하는 무언가를. 어쩌면,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타인을 나답게 오해하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이를 위한 괜찮은 학습서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