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글 이소연 ㅣ 평론가, 1971년생
공역서 『서사학강의』(H. 포터 애벗)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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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문학이 선호했던 이미지는 19세기 유럽의 고딕 소설에서 유행했던 고풍스런 악마 캐릭터와 20세기 이후 영미권의 대중문화에서 만들어진 연쇄살인마 또는 사이코패스들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괴물’은 모든 시대, 여러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중세 말기에 사람들은 마녀를 비롯한 마귀 들림의 공포에 신경질적으로 사로 잡혀 있었다. 이런 유의 집단 광기는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잠복해 있다가 한 시대가 몰락하고 있다는 전조와 함께 점화되곤 한다. 사회는 자신의 내부에 발생한 균열을 감추기 위해 이러한 결함을 외부에 투사하기 마련이다. 마녀와 악마, 뱀파이어와 좀비, 유태인과 연쇄살인마가 ‘만들어지고’ 대중매체에 의해 재현되는 과정을 탐색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형성하는 지식, 심성구조, 무의식의 층위를 하나로 꿰어 훑어보는 일을 거드는 거멀못 역할을 한다. 영어에서 괴물을 뜻하는 단어 ‘monster’의 어원은 라틴어 ‘monstrare’로서 이는 ‘보이다’와 ‘경고하다’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괴물은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 아래 전시되는 어떤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비틀려지고 과장된 형상은 바로 그 ‘보이도 록 만드는’ 일의 불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괴물은 한편으론 군중들의 적의가 외부로 쏠리도록 만드는 희생양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지배하고 구성원들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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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권력자의 형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7세기 중반, 토머스 홉스가 상상한 괴물인 리바이어던은 시민들의 계약에 의해 성립된 군주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기 말과 파국을 연상시키는 괴물의 정체는 파시즘,관료제, 국가 자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자본 또는 신자유주의 체제 등 경제적 분야를 주름잡고 있는 맹주들의 이름 역시 빼놓으면 섭섭할 것이다. 어차피 오늘날의 권력은 정치·경제적으로 구별할 수 없이 얽혀서 작동하는 거대한 카르텔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가? 몸통은 하나이지만 여러 개 머리를 지닌 괴물 히드라(Hydra)처럼. 히드라는 하나의 목을 치면 그 자리에서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나는 특성을 갖고 있기에 헤라클레스조차 퇴치하는 데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히드라는 오늘날 다양성이라는 허울아래 수없이 상품을 만들고 퍼뜨림으로써 세상을 지배하는 물신(Mammon)의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풍부한 신화적 자산과 초자연적 에너지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반문화적 성격 때문에 괴물은 장르문학이나 영화, 만화 등 주로서브컬처 분야에서 등장하곤 했다. 이는 전후 한국 문학의 현실을 고려할 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먹고사니즘’의 문제에 치이고 정치·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고통에 짓눌리다보면 환상성이나 초월적 실재에 대한 탐색
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일상이 생존 게임이며, 타인이 곧 지옥이던 시기에 따로 괴물을 상상할 필요가 없기도 했을 것이다. 국가가 괴물이며, 사회 전체가 복마전이었던 한국의 현실에서 문학은 더더욱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다양한 신화와 환상적인 기담들을 무궁무진하게 찾을 수 있는 고전문학의 전통을 환기할 때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 현대문학이 고전의 전통에서 단절되었듯이,20세기에 이르러 우리가 다시 쓰게 된 판타지는 우리의 전통문화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양 괴물인 뱀파이어와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하는 소설을 썼고 할리우드에서 만든 괴수의 이미지와 호러물의 전통을 비틀어 슈퍼 괴물,히어로, 외계인 등의 캐릭터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문학이 선호했던 이미지는 19세기 유럽의 고딕소설에서 유행했던 고풍스런 악마 캐릭터와 20세기 이후 영미권의 대중문화에서 만들어진 연쇄 살인마 또는 사이코패스들이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 90년대, B급 문화 신에서 활약하던 괴물들이 한국문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시기에 김영하와 백민석, 두작가에게 진 빚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외국의 대중서사에서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았으며 이를 본격문학의 장에 끌어올린 거의 첫 세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들은 역시 외국의 대중 장르를 적극적으로 소비해온 독자층으로부터 컬트 현상에 견줄만한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이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괴물의 원형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이나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1)처럼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캐릭터 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처럼 서구 고딕 픽션(Gothic fiction)의 계보를 이어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에 발표된 김영하의 「흡혈귀」에는 이러한 신종괴물의 혈통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에서 흡혈귀로 지목되는 ‘그’는 고딕 픽션의 전통적인 캐릭터에 서구 대중서사에서 재현된 이미지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 이제 선생님도 짐작하시겠죠? 컬트영화라는 거 있잖아요. 기계톱으로 사람을 썰고, 사람 고기로 정육점을 차리고, 뭐 그런 영화들 있잖아요. 그게 아니면 끝도 한도 없이 지루하고 허무한 영화를 보고 있어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따위 말이죠.”2)이와 유사한 계보에 있는 작품이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에 실린 단편들이다. 유럽 고딕장르의 고풍스런 취미가 물씬 배어나는 작품들 가운데 단연 컬트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던 것은 「괴물을 위한 변명」이란 제목의 짧은 이야기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이 19세기에 쓰여진 메리 셸리의 장편 『프랑켄슈타인』을 재삼재사 리리딩(re-reading), 리라이팅(re-writing)하는(리라이팅은 필연적으로 리리딩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모더니즘의 정전 목록에 있는 작품을 끌어와서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법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보았을 실험에 속한다.
누군가 한국문학 사상 가장 인상적인 괴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묻는다면 나는 0.1초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을 읽으라고. 이 소설에는 스스로를 ‘괴물’로 명료하게 정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괴물? 괴물의 정의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3) 이 소설은 복잡한 메타픽션의 기법이나 미묘한 구성을 자랑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저 비범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 자체만으로도 읽는 사
1) 백민석, 『목화밭 엽기전』, 문학동네, 2000, 261쪽
2) 김영하, 「흡혈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문학과지성사, 2007, 66쪽
3) 백민석, 앞의 책, 261쪽
람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다. 피와 골수가 튀는 폭력 장면들, 부끄러움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야수적인 충동을 발산하는 인물들을 보며 독자들은 한국 문학의 현장에 이종(異種)이 출현했음을 직감했다. 강렬한 이미지,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해서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이 단숨에 읽히는 소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보통 이상의 인내심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 오감을 연타당하면 오히려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백민석의 소설은 일반인의 감각이 수용할 수 있는 용인 수준을 초과하는 장면들로 독자들을 밀어붙임으로써 자기 자신을(자신이 재현하고 있는 인물들보다 더한) 괴물로서 현시(present) 한다. 미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재현을 넘어서 스스로를 제시, 또는 현시하는 수준에 이르면 작품은 숭고 (the sublime)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괴물성은 예술이 스스로를 극단에 밀어붙여 자신에게 부과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선택한 방도로 해석될 수 있다.
엽기적인 범죄 행각을 저지르는 살인마의 유전자는 최근 정유정이란 작가의 상상력을 수혈하면서 극성기에 이른 느낌이다. 『7년의 밤』에서 시작된 악인의 계보는 최근작 『종의 기원』에서 자신의 모친을 살해하면서 깨어난 괴물 한유진으로 이어진다. 후기를 읽어보면 작가가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한유진이라는 인물을 초현실적인 존재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초현실적인 에너지와 매혹을 겸비한 괴물이 수면 위로 차츰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따라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류의 2~3퍼센트 가량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그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라 부른다는 ‘순수 악인’이다. (……) 그러므로 종의 기원은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 한유진의 무서움은 그가 언어를 구사하는 괴물이 라는 데서 온다. 『종의 기원』은 시종일관 자신에 대해 일인칭으로 이야기하는 유진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유진 자신이 벌이는 괴물적인 행각과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의 괴물성을 지각하는경험이, 주인공 자신의 의식 지평 아래 갇혀져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능성이자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괴물의 주요한 특징은 이들이 지닌 위력이 기존 사회 체제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존재 자체가 세계의 존립을 안에서부터 뒤흔드는 부정 그 자체라는 점이다. 백민석의 주인공이 제아무리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어도 결국 공권력에 의해 포획되고 말 운명이듯이, 이 괴물들은 자신보다 더 센 괴물인 국가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이 국가란 괴물은 홉스가 예감했듯이 수백 명의 무고한
4) 정유정, 『종의 기원』, 은행나무, 2016, 382-383쪽
목숨을 죽음으로 내몰고 생존권을 빼앗긴 백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버려두며 극단적인 경우 대량 학살의 위험에 내몰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만 같다. 백민석이 패러디했듯 우리는 주도(主都)에서 떨어진 위성도시의 테마파크에서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한바탕 살풀이 놀음을 하는 데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괴물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반대쪽에 위치한 대립항으로서 괴물을 만들고 자신들을 한쪽 편에 배치한 이분법적 질서일것이다. 스스로에게 ‘인간’의 이름을 부여한 이들에게, 괴물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배제해버린 특성들을 다 갖고 있는 존재다. 새로운 시대의 서사가 해야 할 일은 타자이자 이방인으로서 괴물을 전유하고자 하는 시도에 맞서서, 기존의 대립항들을 하나하나 내파시키는 새로운 환상구조를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을 괴물로 규정하고 그들을 축출하고 마침내는 없애버리려고 하는 상대가 악의 본체임을 폭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젝의 말을 빌리면 그러한 소설들은 “우리가 일상현실 속에 몰입하는 것에 저항하는 초과를 구조화하”는 작품이어야 한다.5) 여기서 ‘초과’란 정신분석에 의해 잉여 향유라고 불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초과하는 잉여향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자기자신이 연쇄살인마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치매에 걸린 옛 살인마의 수기 정도로 생각하고 소설을 따라 읽었던 독자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괴물에 맞닥뜨리게 되는데,그것은 바로 인간의 실존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도전장을 내미는 악마의 목소리다. 자신의 힘으로 온 세계를 폭파할 수 있다고 으르렁거리는 이 매혹적인 유혹자의 음성은 깊은 허무의 심연에서 흘러나온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6) 『살인자의 기억법』은 도덕, 권력구조, 자본과 같은 의미론적 층위의 적에 맞서 싸우지 않고 괴물 ‘이상의’ 괴물로서 존재론적 층위에서 작동하게 된다. 이때 문학은 현실에 덧붙여져서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not-All) 즉 현실 한가운데 나있는 치명적인 결여를 보여주는 열린 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세상이 두려워할 대상은 ‘무(無)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소설 즉 픽션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문학이자신을 낳은 시대와 대결하고 마침내 그를 거꾸러뜨리는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일이 대체 가능한가? 물론이다…… 의심스러운 이는, 어린애들이 원환을 그리면서 부르는 동요를 한번 따라 읽어보시라. 오싹하지 않은가.
시간은 짧으니, 진정으로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 인생은 빠르게 지나가고 죽으면 그만이구나.7)
5) 슬라보예 지젝, 『라캉 카페: Less than nothing 2』, 새물결, 2013, 1219쪽
6)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145쪽
7) 스티븐 킹, 『죽음의 무도』, 황금가지, 2010, 35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