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이모의 조카
김태용 ㅣ 소설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74년생
소설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 『숨김없이 남김없이』 『벌거숭이들』 등
“이두하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도 이 씨입니다.애 엄마가 지었지요. 처음엔 같은 이름인 줄 몰랐어요.”
나의 수명이 한 달 정도 단축되는 것만 같았다.
어쩌자고 이모는 나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주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나의 필명이다. 머리 두(頭)에 아래 하(下)인데 머리 아래로 글을 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나의 포부가 섞여 있지만, 그것보다 인간적인 사연을 품고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제일 친했던 친구의 이름이기도 했다.
아이는 식탁보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크기를 넓히고 있었다. 아주 탁월한 버릇이다, 아주 탁월해, 이모의 자식이 틀림없어. 이모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초여름의 오후, 우리는 야외 식탁에 마주 앉아 있다. 이런 풍경 속에 들어가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가볍게 만들지만 내 머릿속은 어떤 기억과 의심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글쓰기의 결핍과 욕망과 이끌려 이곳에 온 것인지 모른다. 내 앞에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앉아 있다.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머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들의 생각이 궁금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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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니?”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믿을 수 없는 친족의 책임감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어야 했다. 어색한 자리에서 인간이 하는 어쩔 수 없는 짓 중의 하나가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다. 이름을 물어보기 위해 우리는 닫혀 있던 입을 애써 열어야만 한다. 입을 여는 순간 침묵 속에서 지켜왔던 서로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내 이름을 물어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날 수 없지. 내가 바라는 것은 일어날 수없는 일이 사소한 일상의 막을 뚫고 일어나는 것인데, 벽돌과 통나무로 만든 집이 있고, 집 앞의 정원이 있는 낯선 이 공간, 초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초대 받은 것처럼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내가 일을 벌이기를, 공간과 시간의 어긋난 시선이 응집된 나무 식탁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어보지 않아도 나무 식탁은 이집 주인이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식탁보는 누가 짰을까? 식탁 의자에 앉아 식탁보를 짜고있는 작고 마른 손을 상상했다. 작고 마른 손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계집애 같이 생겼네, 라는 말을 아이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밀가루 반죽 같은 허연 얼굴에 이마와 귀의 반을 덮은 단발머리와 길게 찢어진 눈, 그리고 얇지만 석류처럼 붉은 입술이 이모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석류처럼이라니. 석류처럼 붉은 이라니. 석류처럼 붉은 입술이라니.
아이를 묘사할 수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아이는 묘사의 영역 바깥에 있다. 계집애 같이 생겼구나. 나는 그런 막말을 하는 생각 없는 어른이 아니다. 이런 말을 다시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름이 뭐니?”
나의 물음에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궁금했던 것은 식탁보 구멍 속에 들어간 아이의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표명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게 좋으니?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떻게 말해도 아이는 내가 원하는 답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라니, 애초에 그런 것은 없다, 아이의 손놀림이 멈추지 않게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나를 잠시 쳐다본 뒤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나의 바람대로 손가락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식탁보의 구멍과 아이의 손가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구멍의 크기는 쉽게 넓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해라, 계속 해. 아무 것도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세계의 정신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무모한 도전일수록 무의미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어째서 무의미인가.
무의미를 탐구하는 것은 내가 할 짓이지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놀랍다. 아이는 무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무의미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적인 질료로 자연의 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자신이 지금 무슨 놀이에 빠져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모르길 바란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만 했을 때, 하지만 내가 아이만 했을 때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분명 가져본 몸의 체구를, 몸의 나이를 잊어버린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잠이 너무 많은 기억을 가져가버렸다. 잃어버린 기억을 돌려받기 위해서 나는 이제 잠을 줄여야 한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충분한 잠을 자지 못했다. 어떤 기대 때문이었나.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어도 식탁보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크기를 넓히고 있는 아이보다 놀라운 것은 없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의 아버지, 그러니까 믿을 수 없지만 나에게 이모부가 되는 짧은 머리에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아이의 납작한 뒤통수를, 납작한지 만져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납작할 것이다, 어릴 적 잠들어 있는 이모의 뒤통수를 보며 납작하다, 납작해, 어쩜 저렇게 납작할 수가 있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죽은 뒤로 말을 하지 않아요. 의사말로는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했는데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변함이 없네요. 앞으로도 영영 말을 하지 않을 것만 같아요.”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지 못할 뿐 아이의 귀는 멀쩡할 것이다. 아이는 아버지의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식탁보 구멍에 들어간 손가락을 빼서 귓구멍을 막을 수는 없을 거야. 아이는 집을 떠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이 같아요.”
그가 말했다. 이름이 같다니 무슨 말일까?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두하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도 이 씨입니다. 애 엄마가 지었지요. 처음엔 같은 이름인 줄 몰랐어요.”
나의 수명이 한 달 정도 단축되는 것만 같았다. 어쩌자고 이모는 나의 이름을 아이에게 붙여주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나의 필명이다. 머리 두(頭)에 아래 하(下)인데 머리 아래로 글을 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나의 포부가 섞여 있지만, 그것보다 인간적인 사연을 품고 있는데 고등학교 시절 제일 친했던 친구의 이름이기도 했다. 문학이란 쓸모없지만 시작하면 빠져나가기 힘든 진흙탕 중의 하나라는 말을 나에게 알려준 친구는, 녀석은 어떻게 그런 말을 알고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시절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친구의 말이 유언처럼 예언처럼 악담처럼 나를 괴롭히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위악을 떨고 싶지는 않지만 내 삶의 첫 번째 충격이었고, 소설로 치면 진부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른 소설의 진부한 시작점에 놓여 있다.
두하야, 라고 그는 아이를 부르지 않는다. 두하야, 라고 이모는 수도 없이 아이를 불렀을 것이다. 두하야, 라고 나는 아이를 부르지 못할 것이다. 소설가가 된 나의 행적을 좇고 있었을 이모를 생각하니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식탁 옆에 있는 빈 의자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빈 의자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만국의 유령이여, 우리를 굽어 살펴주시기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하야. 이모는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이제 부를 수도 없다. 나의 원래 이름이, 이름을 갖고 있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 지금은 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 두하 이전과 두하 이후로 내 삶은 쪼개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두하 이후의 삶의 축소판 같은 또 다른 두하의 삶을 마주하고 있다.
“그렇군요. 이두하라니.”
나의 목소리에 아이가 엷게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들켰다, 이놈아! 아이의 순진함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각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순진한 미소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미소는 금방 사라졌고, 사라진 미소의 힘으로 아이는 계속 식탁보 구멍과 손놀이를 하고 있다. 그는 이미 아이의 버릇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아들의 이상한 버릇을 방관하는 무심한 아버지일까?
아들의 슬픔을 이해하는 속 깊은 아버지일까? 그만두라고 하면 더 하게 되는 아이의 심리를 파악해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어증과 손놀이는 달라붙어 있는 정신적 외상의 발현인가? 실어증으로 구멍 난 언어의 속살을 아이는 식탁보의 구멍을 통해 만지고 있는 것일까? 됐다. 됐어. 꺼져라, 심리학!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마셔도 됩니다.”
그가 식탁 위의 차주전자를 들어 내 앞에 놓인 찻잔에 따랐다. 나에게 묻지도 않고 차를 우려 놓은 것이다.
“애엄마가 직접 따 말린 국화차입니다. 이제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두통에 좋을 겁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책으로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을 받고 나서 한 인터뷰일 것이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나는 편두통이 생겼다고 말했다. 놓치지 않고 기자는 머리 아래로 글을 쓰는 거 아니었나요? 라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신문에는 관자놀이를 짚고 미간을 모으고 있는 나의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나는 기자의 강압에 못 이겨 일 년치 신문을 구독해야만 했다. 어느 미친 평론가는 내 글이 전두엽문학의 계보를 잇는다고 했다. 차라리 해파리 문학이라고 해라. 입에 재갈을 물려주고 싶었다. 편두통이라니. 거짓말은 아니지만 다소 과장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일종의 작가적 허영이었다. 작가라면 으레 그런 병증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나는 신체와 정신이 변증법을 이루는 엄살로 내 작업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말을 공표하고 나니 편두통이 점점 심해진것도 같다. 나의 말이 씨가 되어 편두통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편두통은 불안과 초조로 전이 되었고 나는 모든 상황과 말과 글을 의심하느라 주어진 현실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 역시 작가가 겪는 허영의 내분비 물질일지도 모르겠지만.
말과 글은 함부로 해서도 써서도 안 된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그것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찻잔에 고인 맑고 노란 물을 내려다보았다.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찻잔에 비친 얼굴을 보며 다시 살아볼까,라고 썼던 시인의 말은 거짓말이다. 그는 분명 다시 살아볼까, 라는 문장을 미리 쓰고 찻잔에 비친 얼굴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다시 살아볼까, 라는 문장에 감동한 독자들은 모두 발가벗겨서다시 살 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찻잔에 비친 얼굴을 본다. 그래죽어야지. 그래 죽어야지, 라는 문장에 놀란 독자들 역시 발가벗겨서 죽음의 유형지로 보내야만한다. 그 시를 나는 작품에 인용했고 시인으로부터 잘 읽었다는 연락을 받아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우리는 발가벗은 채 언어의 세계 바깥으로 떠나야만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것도 쓸수 없고, 내가 쓰지 않는 글에 누구도 반응할 수 없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속으로 좀더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찻잔과 찻잔 속의 노란 차와 그리고 내 삶의 빛과 어둠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는 두 사람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도 넓힐 수도 없기에 좀 더 생각을 해야한다. 생각을 위한 시간을 다오. 차는 그렇게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생각의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가야 한다. 또 다른 세계가 그 안에 있다. 그 세계는 텅 비어 있다. 자, 한번 들여다보자.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가을호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