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시의 부요,혹은 그러한 기후의 발견
글 정상혁 ㅣ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86년생
침소봉대하고 싶지 않다. 시는 여전히 읽는 사람만 읽는다. 한 인터넷서점 집계에 따르면, 올해 전체 판매 서적 중 시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0.8%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럼에도 시는 떠오르고 있다. 2014년 16만7000 권, 지난해 17만5000권, 올해 8월 현재 17만권. 물론 이 소박한 벌목의 증가 추이가 전부는 아니다. 다만 언 론이라는 곳이 별 것 아닌 두각에도 호들갑을 떨기 마 련이니, 이 조촐하기 이를 데 없는 지표에 따라붙는 ‘시 의 부흥’이니 ‘두 번째 르네상스’같은 요란한 수식어는 경계토록 하자. 다만 올라서고 있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것만 짚고자 한다.
최근 교보문고에 따르면, 8월까지의 시집 판매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36.4% 증가했다. 전년 대비 109% 상 승 폭을 기록한 인터넷 서점도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에 따르면, 지난해 시집 발행 권수(1662권)는 3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6월 출간된 최승자의 『빈 배 처럼 텅 비어』는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가 팔렸고, 같은 달 나온 김민정 시인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은 8000 부를 찍었다. 대선배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 백석의 『사슴』 초판본이 올해 대한민국 여름 베 스트셀러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시의 향수를 불러일 으키는 복각판 시리즈라지만, 어차피 장삿속이고, 당시 표지와 활자체 재현 등을 통해 소유욕 자극에 성공한 마케팅일 뿐이다. 이 같은 지표적 현상의 이면에서 기 어코 “위로가 필요한 시대”와 같은 구태의연한 이유를 발견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세부적 이 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개흙에 박혀 빛이 희미하던 시가 수면으로 올라오게 된 데에는 문학적 성취와 같은 내부적
개흙에 박혀 빛이 희미하던 시가 수면으로 올라오게 된 데에는 문학적 성취와 같은 내부적 부력보다는 외곽에서의 노력에 빚진 바 커 보인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 유희경 시인이 지난 6월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연 시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을 포함해, 문래동에서 김태형시인이 운영하는 ‘청색종이’, 대구 시전문서점 ‘시인보호구역’ 같은 참신한 시도가 속속 발견됐다. 이런 이색적인 공간이 입소문을 타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시집 구매를 어떤 트렌디한 행위로 보이게 했을 수 있다. 여기에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된 소규모 시 낭독회,북콘서트 등의 이벤트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부력보다는 외곽에서의 노력에 빚진 바 커 보인다. 조선 일보 신춘문예 출신 유희경 시인이 지난 6월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연 시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 을 포함해, 문래동에서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청색종이’, 대구 시전문서점 ‘시인보호구역’ 같 은 참신한 시도가 속속 발견됐다. 이런 이색적인 공간이 입소문을 타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 으면서, 시집 구매를 어떤 트렌디한 행위로 보이게 했을 수 있다. 여기에 젊은 시인들이 주축이 된 소규모 시 낭독회, 북콘서트 등의 이벤트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많아야 50명 정도 참 석한다지만, SNS 생중계 같은 재치를 통해 재정상의 한계를 극복하며 독자와의 괴리를 줄여가 고 있다.
역시 전파매체의 힘은 아직도 대단한 것이어서, 케이블채널 OtvN ‘비밀독서단’ 같은 책 소 개 프로그램에 힘입은 바도 크다. 대표적인 수혜자가 박준 시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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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시인이 2012년 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그 자체로도 이미 수준 높은 작품이지만, TV 소개 후 5만부를 더 찍어내며 시집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장기 집권하고 있다. 일단 유명해지자, 시는 단문의 시대에 걸맞은 외관 덕에 SNS족(族)의 발췌·공유 욕망을 만족 시켜주는 도구로 기능하며 퍼져나갔다. 그러다가 아예 ‘SNS 시’라는 것마저 등장해버렸는데, 그 문학적 수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사실상 시의 인기 상승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국립 중앙도서관이 ‘디지털시대에는 누구나 시인’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SNS 시인시대전(展)’을 개최 했을 정도다. 기술의 진보도 있다. 지난 달 시선 400호를 펴낸 출판사 창비는 다음 달 아예 시 전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을 선보일 계획이다. 날씨와 독자의 기분·취향에 따라 시를 큐레이션 해주는 장치다. 원래 대중은 신기해보이면 일단 접근한다. “성찰보다는 감각적 즐거움 을 동반한 문화 상품으로 소비하는 경향”(문학평론가 정과리)도 분명히 있다. 이들을 꾸준한 독 자로 끌어들이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문예지의 잇딴 변신은 고무적이다. 목각 베개 수준의 존재감에서 탈피하려는 몸짓이 이 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지난 1일 새로 펴낸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는 출간 2주 만에 초판 5000부 매진, 1000부 재쇄 돌입이라는 호조를 경험했다. 아이돌그룹 멤버 인터뷰까지 소 개하는 파격을 선보이며, 현재 정기구독자 600명을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계간지 《세계의문 학》 종간 당시 정기구독자가 50명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숫자다. 창비도 새로운 문예지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고, 문학과지성사 역시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새로운 형태로 꾸민다는 방침이다. 이런 변화의 기미가 문학과 시에 대한 선입견을 고물상에서 건져 올리고 있 는 것이다. 격월간 시 전문잡지 《더 멀리》, 독립출판물 《눈 치우기》를 포함해 《일상시화》, 《파란》 등 시인이 주축이 돼 꾸려나가는 독립출판 실험도 새로운 시 정신을 추동하는 힘이 되고 있다. 어쨌든 시는 시인들이 쓰는 것이고, 쓸 데 많고 활기 넘쳐야 더 쓰게 되는 법이니까.
이상으로 최근 시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소동을 개괄해봤다. 모아놓고 보니, 그간 시가 얼마나 정체돼 있었는지 알겠다. 힘차게 일어나는 부요(扶搖)의 기운을, 이 현재진행형을 꾸준 히 밀고 나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은 또 호들갑을 떨며 ‘시의 몰락’ 운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