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글과 사진 이형권 ㅣ 평론가,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2년생
저서 『타자들, 에움길에 서다』 『한국시의 현대성과 탈식민성』 『발명되는 감각들』 『그러나 시가 있다』 등
1. 대전에는 일찍이 눈물의 시인 박용래(1925-1980)가 살고 있었다. 그는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광복 이후 대전 지역의 시적 낭만을 이끌었다. 그는 대전의 오류동에 살면서 지역의 시인들과 자주 어울렸고, 대전역을 오가면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의 시인들과도 어울리며 살았다. 고은은 대전에서 경험했던 박용래와의 추억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술 먹은 박용래가 / 대전 유성온천 냇둑 / 술 먹은 고은에게 물었다 / 은이 자네는 / 저 냇물이
다 술이기 바라지? …(중략)… 고은이 킬킬 웃어대며 / 냇물에 돌 한 개를 던졌다 / 물은 말 없
고 / 그 대신 냇둑의 새가 / 화를 내며 날아갔다 / 박용래가 울었다. 안주 없이 먹은 술을 토했
다 / 괜히 새를 쫓았다고 화를 냈다 / 은이는 나뻐 / 은이는 나뻐 // 박용래가 울었다 고은은
앞서가며 울지 않았다
- 「어느 날 박용래」 부분
고은 시인과 박용래 시인이 술을 한 잔 하고 “대전 유성온천 냇둑”에서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술”을 좋아하는 고은이 “돌을 던져” “냇둑의 새”를 쫓아버린 일에 대해 박용래가 울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투정을 하듯 “은이는 나뻐 / 은이는 나뻐” 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 아이 같은 투정과 울음은 향토적 리리시즘을 주조로 하는 그의 순수한 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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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대전은 박용래 시인처럼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넉넉한 인심과 느림의 여유가 살아있는 장소이다.
대전은 일찍이 우리나라의 근대 초창기부터 교통도시로서 발달해 왔다. 대전은 지금도 서울과 부산, 서울과 광주의 중간 지점에서 영호남을 잇는 동맥 구실을 하고 있는 도시로서 서울, 부산,인천, 대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면서 각종 국책연구소와 민간연구소가 입주하여 과학도시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인근에 행정중심도시인 세종특별시가 자리를 잡고, 대전과학벨트가 조성되면서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꾸는 도시이다.
2. 대전(大田)의 또 다른 지명은 ‘넓고 큰 밭’이라는 의미의 한밭이다.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대전은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북쪽으로는 계족산, 동쪽으로는 식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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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으로는 계룡산, 남쪽으로는 보문산, 북쪽으로는 금병산이 에워싸고 있는 분지형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대전 시내에는 이 산들을 발원지로 하는 대전천, 유등천, 갑천 등 의 세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대전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조화와 상생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역 주변은 원래 근대 이전에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대전역 인근은 근대화이후 크게 발전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대전을 전체적으로 보면 유구한 전통 문화를 이어온 역사적인 도시였다. 마한 시대에는 현재의 서구와 유성구 지역에 신흔국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계족산성, 노고산성, 월평산성 등 대전 지역을 둘러싼 수십 개의 산성을 갖추고 백제국을 수호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도 호서 지역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이 활동한 유학의 고장이었다.
대전이 오늘과 같이 교통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이어서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철도 건설에 종사했던 일본인들과 그 가족들이 대전역 인근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이다. 호남선이 건설되던 해에 대전면이라는 작은 지역단위로 출발했으나, 이후 대전읍, 대전부, 대전시, 대전직할시 등을 거쳐 1989년에는 현재의 대전광역시로 확대 개편되었다.
그 과정에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면서 대전은 명실공히 교통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최근에는 인근에 세종특별시가 건설되면서 상호 발전의 토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1990년대 둔산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전역에서 (구)충남도청에 이르는 은행동과 선화동, 대흥동 지역은 대전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메인스트리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둔산 지역과 유성 지역이 개발되면서 다소 위축되었지만, 시민들의 원도심 살리기 운동 등 에 힘입어 대전역 주변은 아직도 대전의 문화와 전통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대전역에 얽힌 애틋한 사랑의 사연은 아직도 오가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완행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 아 아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
열차 // 기적 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폼 /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 아 아 아 아 부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 「대전부르스」 전문
이 노랫말에 얽힌 이야기는 대전역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 노랫말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당시 신세기 레코드사 직원이었던 최지수가 대전역에서 애틋한 이별의 광경을 발견한 일이었다. 6·25전쟁의 흔적이 채 사라지기 전인 1959년 어느 날, ‘0시 50분’ 가차가 떠나려 할 즈음 대전역 플랫폼에서는 이름 모를 남녀 두 명이 포옹을 하며 함께 울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도 서럽고 애절하여 최지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지수는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여 한 편의 애절한 노랫말을 완성하게 되는데, 그 노랫말을 작곡가 김부해에게 부탁하여 만든 노래가 「대전부르스」이다. 이 노래는 안정애라는 가수가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고, 1953년에는 최무룡, 엄앵란, 신성일을 주인공으로 하는 같은 제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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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조용필이 리바이벌해서 다시 크게 인기를 누린 노래이고, 최근에 장사익이 불러서 그 애절한 사연의 카타르시스를 또다시 느끼게 해 준다.
대전역 주변에는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이 있고, 전면의 중앙로를 따라 으능정이 거리, 목척교, (구)충남도청 등 대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명소들이 자리를 잡고있다. 대전역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양쪽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늘어선 중앙로가 보인다. 중앙로는 대전역과 (구)충청남도청을 잇는 대로로서 한때 대전의 중심지 구실을 했다. 지금은 충청남도청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그곳 에 대전근현대전시관, 대전시민대학, 대전발전연구원, 도시재생본부 등이 입주해 있다. 대전 사람들은 이곳을 (구)도청이라고 부르면서 과거의 번화로웠던 장소의 기억과 함께 오늘의 문화를 이끄는 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요즈음 대전역에 내리면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을 만나게 된다. 대전역사 한 구석에 자리잡은 가락국수집과 성심당이라는 빵집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풍경이 그것이다. 대전역 가락국수는 옛날부터 아주 유명한 먹거리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광주로(혹은 그 반대로) 가는 사람들은 열차가 대전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사이에 플랫폼 가까운 가락국수집에 들러 빠르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여정을 이어갔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라서 서울과 대전이 한나절 거리였기 때문에 기나긴 여정의 허기를 메우기에 적당한 곳이 대전역이었던 것이다.
가락국수와 함께 성심당 빵도 대전에서 유명한 먹거리에 속한다. 성심당은 오래 전부터 대전역 앞쪽에 자리를 잡고 운영을 해왔다. 먹을 것이 다양하지 못했던 옛날에 성심당 빵은 대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도 여러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성업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전의 토종 브랜드로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전역을 거쳐 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성심당에 들러 빵한 봉지씩 들고 열차에 타는 풍경이 낯설지가 않다.
대전역을 나서서 왼쪽으로 가면 대전 최대의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곳에는 각종 음식점과 음식 재료상가, 옷가게, 포목점, 귀금속점, 공구상 등이 자리를 잡고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중앙시장은 거대한 백화점 구실을 하면서도 백화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따듯한 인간미와 에누리와 마음의 여유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을 하면서 대전 지역 서민 생활의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대전역에서 (구)도청을 향한 중앙로를 지나다보면 으능정이 거리와 목척교가 나온다. 으능정이는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했는데, 지금은 대전의 명동이라고 할 만큼 많은 상가와 맛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말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와 붐빈다. 또한 목척교주변은 한때 대전의 쇼핑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옛날만큼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3. 오늘날 대전역 주변은 원도심 혹은 구도심이라고 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침체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서구의 둔산동 지역과 유성구의 서남부 일대가 대전의 신도심으로 개발되면서 인구 유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둔산 지역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지역으로서 대전광역시청과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의 관공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대규모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각종 교육 시설과 상가 지역도 밀도 높게 형성되었다.
또한 유성 지역은 둔산 지역 이후에 대전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곳이다. 충남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의 교육기관을 비롯하여 한국통신연구원, 한국표준연구소, 한국기계연구소, 럭키중앙연구소, 쌍용중앙연구소 등의 연구기관들이 유성지역 발전 역량의 핵심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특별시와 인접한 노은 지역에는 대규모 아파트 시설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충남대학교 앞쪽으로 펼쳐진 서남부 지역은 새로운 문화 및 주거 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요컨대 대전은 유학의 전통이 살아있는 유서 깊은 정신의 고장이자, 대전역으로 표상되는 교통의 도시이자, 대덕연구단지로 대표되는 과학의 메카이다. 대전이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의 대표적 근대도시로 발돋움한 데에는 ‘대전발 0시 50분’을 타고 서울을 오르내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사연이 밑거름 역할을 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 늙고 지친 생을 부여잡고 ‘대전발 0시 50분’을 목 놓아 부르면서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