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다시 읽는 우리 문집
을 소개한 기사는 교수신문이 단신으로 보도한 게 유일했다.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이 시대의 주목을 받기는 이토록 어렵다. 그러나 개성적인 저술, 실천적인 사상은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 심대윤은 쉽사리 묻히거나 잊혀질 학자가 아니다. 심대윤이 세상을 뜬 지 15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에 대한 조명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시작하면된다. 지금은 조선의 최고 학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다산 정약용도 학계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사후 100년이 다 되어서부터다.
◆ 노동하는 양반 ◆
주경야독이라는 익숙한 단어는 생업과 독서를 함께 병행한다는 말이지만, 실제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이 생업에 종사했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황이나 정약용 같은 저명한 학자가 쟁기나 괭이를 잡았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항복은 『백사집』에서 율곡 이이가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며 호미를 만들어 파는 일로 생계를 도모했고, 모재 김안국이 벼이삭 하나도 흘리지 말라며 꼼꼼하게 농사를 감독했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다. 양반도 폐족이 됐거나 몰락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생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록으로 남긴 일은 극히 드물다. 양반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조선의 실정에서 생원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 유생으로 대과 공부를 하던 잠곡 김육이 10년동안 가평 잠곡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숯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일은 특기할 만하다. 김육은 잠곡에서 들었던 인물, 정치 일화를 『잠곡필담』에 담았다. 그러나 실제 농사짓는 얘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심대윤은 양반의 신분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하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채로운 일이다.
심대윤의 고조부는 영의정을 역임한 심수현이고, 증조부는 부제학을 지낸 심확이다. 이런 명문사대부 가문의 후손이 노동에 종사하게 된 것은 그의 대에 이르러 폐족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심대윤 집안은 심확이 1755년 을해옥사로 반역자의 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심대윤 일가가 안성에 자리를 잡은 데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안성에서 동생들과 함께 목반(밥상)을 만드는 공방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심대윤은 40세에 쓴 「치목반기(治木盤記)」에서 “재물이 없어 장사를 할 수 없고, 토지가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목반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그런데 심대윤은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직종이라며 동생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격려하였다. “목반을 만드는 일은 천한 일이긴 하지만 실내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남에게 관여되는 바 없으며, 농사일이나 장사치처럼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거나 장터에서 분주히 이익을 노리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낫지 않느냐?”(「치목반기」, 『백운집』)
심대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당시 천대받던 공업이나 상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무릇 일이란 크고 작고 간에 스스로 힘을 다하여 그 공으로 먹게 되는 것이 귀함은 마찬가지이다”라며 육체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심대윤은 “육체는 수고롭지만 마음이 한가롭고 수고로움이 적으니 문득 경사(經史)를 토론하여 정미한 뜻을 강구할 수있다”고 하여 목반을 만드는 와중에 틈틈이 독서와 경전 연구에 힘을 쏟았음을 밝히고 있다.
◆ 이욕(利欲)에 대한 긍정 ◆
심대윤은 ‘유하원에게 보낸 편지(與柳君夏元書)’에서 자신이 이미 20대부터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였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는 편지에 “남의 집에 우거하며, 밥을 얻어먹고 단맛 쓴맛을 골고루 맛보며 장사꾼의 무리에 끼어서 이익을 다투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의 생활은 서당이나 성균관에서 책을 끼고 과거 준비를 하는 동시대의 양반 자제들과는 달랐다. 그는 낮에는 공방을 운영하거나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경전과 역사서를 읽었다. 전형적인 주경야독, 아니 고통스러운 주경야독이었다.
심대윤의 공부는 넓고 깊었다. 『심대윤전집』에 실린 그의 글은 『백운문초』와 『남정록』과 같은 문집류, 『논어』, 『시경집전변정』 등 경학류, 『동사』 등 역사류 등 문사철 전반에 걸쳐 있다. 현재까지 파악
된 심대윤의 저술은 모두 120여권을 헤아린다. 호한한 저작은 동시대의 정약용이나 최한기에 비견된다. 게다가 심대윤의 모든 저작은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와, 앞으로도 더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풍부한 저작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독특한 사상이다. 심대윤의 사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복리(福利)사상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을 좇는 동물이다. 그는 말한다. “이익이 선(善)이고, 선이 이익이다.” “욕심, 이익, 명예욕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심대윤에게 욕망은 인간을 규정하는 기본 조건이다. 욕망은 억제되어서도 터부시되어서도 안 된다. 욕망에 대한 긍정은 ‘천리를 보존하며 인욕을 막는다(存天理遏人慾)’는 기존 성리학의 세계관과 상충된다. 그렇다고 심대윤이 개인의 무한 욕망을 긍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욕망을 좇되 ‘남과 더불어 이로움을 추구할 때(與人同利)’ 선이 된다고 했다. 이것이 복리사상의 요체다.
이러한 복리사상은 그의 교육관과 결혼관에도 반영되었다. 심대윤은 교육에서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말 것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태자를 태학에 입학시켜 일반 학생들과 함께 교육시키자고 주장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 신랑 신부에게 3개월간 관찰기간을 둔 뒤 합방하게 하는 ‘숙의’ 결혼제도를 제안하는가 하면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혼을 인정하자며, 이혼을 법제화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심대윤의 복리사상은 성리학에서 타기시해 왔던 이욕(利欲)을 긍정하였다는 점에서 영국 철학의
공리주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공리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경제적 자유주의로 나아간 데 반해 복리사상은 조선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웃사이더 학자의 이단아적인 사상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체험 현장에서 노동을 통해 형성된 심대윤의 사상은 오늘날에 비추어 봐도 유효한 점이 적지 않다.
◆ 다르게 생각하기 ◆
심대윤의 다른 삶은 다른 생각을 낳았다. 학계에서는 이미 그를 ‘조선 사상사의 이단아’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글은 관습을 거부하고 통념을 배격한다. 그의 사유와 연구는 이론이나 추상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현장, 노동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운집』에 실린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대윤의 독창적인 글쓰기는 기본을 충실히 따르는 데서 나온다. 그는 ‘양한문 비평 뒤에 쓰다(兩漢文批評後題)’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고 단어는 적게 쓰고 담긴 말은 많으며 진술한 바는 요긴하면서도 비유한 바는 분명하고 통달한 것이 잘 짓는 솜씨의 글이다.”
심대윤은 이와 함께 쓰지 않아야 할 말 12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그것은 진부한 말(陳言), 거친 말(荒言), 중첩되는 말(複言), 두서가 없는 말(亂言), 이해 되지 않는 말(隱言), 법도에 얽매여 자유롭지못한 말(劣言), 비루하고 속된 말(俗言), 유약한 말(穉言), 자질구레한 말(瑣言), 시의에 맞지 않은 말(浪言), 이치에 맞지 않은 말(妄言), 줏대가 없는 말(湯言)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진부한 말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의 독창적 글쓰기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는 누구나 하는 상식이나 개념을 의심하고 전복시킨다. 『백운집』에 실려 있는 ‘변학(辯學)’, ‘붕당론’, ‘선악일본론(善惡一本論)’, ‘안빈론(安貧論)’ 등의 논변문은 대부분 기본 통설에 대한 반박으로 채워지고 있다. 예컨대 ‘안빈’은 흔히 가난을 편하게 여긴다로 해석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귀를 잘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석한다. 왜 그러한가. 군자란 가난 속에서 자신의 역량이 갖춰지기를 힘 쓰는 사람이어서 가난을 견딘다는 것 자체가 부귀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던 심대윤은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요, 뚜렷한 스승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글은 평범하지 않다. 사상은 통념을 거부한다. 그의 독창적인 사상과 논리는 어디에 서 유래한 것일까. 심대윤의 저작을 발굴해 『심대윤전집』을 편찬하고, 문집 『백운집』 번역을 이끌었 던 임형택 교수는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남다른 인생 체험이다. 심대윤은 “우환 속에서 태어나 곤궁한 가운데서 자랐기 때문에 자못 세상사에 생각이 깊었으므로, 일찍부터 고심적려(苦心積慮)하여 사물의 실정에 대한 견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천시 받던 상업과 공업에 종사하였던 체험적 식견이 학적인 논리로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심대윤이 처한 19세기 조선의 사상적 위기가 그를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심대윤의 경학사상은 밀려드는 천주학에 대한 학문적 대응이었고, 그의 복리사상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폐해진 민중을 위무하는 행복 철학이었다.
셋째는 심대윤의 사상이 양명학에 연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대원의 증조 심확과 백증조 심육은 모두 양명학자 정체두의 문인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가학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라는 게 임형택 교수의 진단이다. 임 교수는 심대윤의 학문이 조선 양명학의 계보에 뿌리가 있다며, 심대윤을 양명학 좌파로 분류했다.
심대윤은 1995년 『한국경학자료집성』에 그의 경학 저술이 실리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심대윤전집』(3책, 2005)이 편찬되고, 문집 번역본 『백운 심대윤의 백운집』(2015)이 나오면서 본격 조명받고 있다. 그간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가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생애와 학문적 사승 관계 등 아직 규명되지 않은 점도 적지 않다. 학계는 일단 실학자로 분류하고 있으나 그의 학문적 좌표를 어디에 설정해야 할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심대윤을 학문적,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있어 번역은 특히 중요하다. 『백운집』 출간에 이어 『심대윤전집』에 포함된 경학 자료, 역사 저술 등의후속 번역작업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19세기 사상사의 이단아 백운 심대윤의 『심대윤전집』
글과 사진 조운찬 ㅣ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1963년생
| 지난 5월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으로 일하는 함영대 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백운 심대윤(1806~1872)을 조명한 연구서 『19세기 한 실학 자의 발견-사상사의 이단아 백운 심대운』이 출간돼 언 론사에 홍보를 하려 한다며, 조언을 부탁한다고 했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함 박사의 목소리는 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나는 좋은 책을 알리고 싶은 함 박사의 의욕에 십분 공감했다. 심대윤은 ‘19세기 사상의 이단아’로 끝나지 않고, 21세기 우리의 현실에 많은 시사를 주는 사상가 이자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많은 언론이 심대윤 을 대대적으로 다뤘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서도 마 음 한켠에는 심대윤이라는 조선의 낯선 문인을 주목하 는 언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 이었다. 심대윤을 주목한 일간 언론사는 없었다. 뉴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19세기 한 실학자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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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소개한 기사는 교수신문이 단신으로 보도한 게 유일했다.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이 시대의 주목을 받기는 이토록 어렵다. 그러나 개성적인 저술, 실천적인 사상은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 심대윤은 쉽사리 묻히거나 잊혀질 학자가 아니다. 심대윤이 세상을 뜬 지 15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에 대한 조명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늦었지만,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시작하면된다. 지금은 조선의 최고 학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다산 정약용도 학계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사후 100년이 다 되어서부터다.
◆ 노동하는 양반 ◆
주경야독이라는 익숙한 단어는 생업과 독서를 함께 병행한다는 말이지만, 실제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이 생업에 종사했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황이나 정약용 같은 저명한 학자가 쟁기나 괭이를 잡았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항복은 『백사집』에서 율곡 이이가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며 호미를 만들어 파는 일로 생계를 도모했고, 모재 김안국이 벼이삭 하나도 흘리지 말라며 꼼꼼하게 농사를 감독했다는 일화를 전하고 있다. 양반도 폐족이 됐거나 몰락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생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기록으로 남긴 일은 극히 드물다. 양반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조선의 실정에서 생원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 유생으로 대과 공부를 하던 잠곡 김육이 10년동안 가평 잠곡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숯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일은 특기할 만하다. 김육은 잠곡에서 들었던 인물, 정치 일화를 『잠곡필담』에 담았다. 그러나 실제 농사짓는 얘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심대윤은 양반의 신분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하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채로운 일이다.
심대윤의 고조부는 영의정을 역임한 심수현이고, 증조부는 부제학을 지낸 심확이다. 이런 명문사대부 가문의 후손이 노동에 종사하게 된 것은 그의 대에 이르러 폐족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심대윤 집안은 심확이 1755년 을해옥사로 반역자의 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심대윤 일가가 안성에 자리를 잡은 데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안성에서 동생들과 함께 목반(밥상)을 만드는 공방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심대윤은 40세에 쓴 「치목반기(治木盤記)」에서 “재물이 없어 장사를 할 수 없고, 토지가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목반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그런데 심대윤은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직종이라며 동생들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격려하였다. “목반을 만드는 일은 천한 일이긴 하지만 실내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남에게 관여되는 바 없으며, 농사일이나 장사치처럼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거나 장터에서 분주히 이익을 노리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낫지 않느냐?”(「치목반기」, 『백운집』)
심대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당시 천대받던 공업이나 상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무릇 일이란 크고 작고 간에 스스로 힘을 다하여 그 공으로 먹게 되는 것이 귀함은 마찬가지이다”라며 육체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심대윤은 “육체는 수고롭지만 마음이 한가롭고 수고로움이 적으니 문득 경사(經史)를 토론하여 정미한 뜻을 강구할 수있다”고 하여 목반을 만드는 와중에 틈틈이 독서와 경전 연구에 힘을 쏟았음을 밝히고 있다.
◆ 이욕(利欲)에 대한 긍정 ◆
심대윤은 ‘유하원에게 보낸 편지(與柳君夏元書)’에서 자신이 이미 20대부터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였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는 편지에 “남의 집에 우거하며, 밥을 얻어먹고 단맛 쓴맛을 골고루 맛보며 장사꾼의 무리에 끼어서 이익을 다투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의 생활은 서당이나 성균관에서 책을 끼고 과거 준비를 하는 동시대의 양반 자제들과는 달랐다. 그는 낮에는 공방을 운영하거나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경전과 역사서를 읽었다. 전형적인 주경야독, 아니 고통스러운 주경야독이었다.
심대윤의 공부는 넓고 깊었다. 『심대윤전집』에 실린 그의 글은 『백운문초』와 『남정록』과 같은 문집류, 『논어』, 『시경집전변정』 등 경학류, 『동사』 등 역사류 등 문사철 전반에 걸쳐 있다. 현재까지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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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심대윤의 저술은 모두 120여권을 헤아린다. 호한한 저작은 동시대의 정약용이나 최한기에 비견된다. 게다가 심대윤의 모든 저작은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와, 앞으로도 더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풍부한 저작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독특한 사상이다. 심대윤의 사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복리(福利)사상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익을 좇는 동물이다. 그는 말한다. “이익이 선(善)이고, 선이 이익이다.” “욕심, 이익, 명예욕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심대윤에게 욕망은 인간을 규정하는 기본 조건이다. 욕망은 억제되어서도 터부시되어서도 안 된다. 욕망에 대한 긍정은 ‘천리를 보존하며 인욕을 막는다(存天理遏人慾)’는 기존 성리학의 세계관과 상충된다. 그렇다고 심대윤이 개인의 무한 욕망을 긍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욕망을 좇되 ‘남과 더불어 이로움을 추구할 때(與人同利)’ 선이 된다고 했다. 이것이 복리사상의 요체다.
이러한 복리사상은 그의 교육관과 결혼관에도 반영되었다. 심대윤은 교육에서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말 것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태자를 태학에 입학시켜 일반 학생들과 함께 교육시키자고 주장했다. 행복한 결혼을 위해 신랑 신부에게 3개월간 관찰기간을 둔 뒤 합방하게 하는 ‘숙의’ 결혼제도를 제안하는가 하면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혼을 인정하자며, 이혼을 법제화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심대윤의 복리사상은 성리학에서 타기시해 왔던 이욕(利欲)을 긍정하였다는 점에서 영국 철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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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공리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경제적 자유주의로 나아간 데 반해 복리사상은 조선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웃사이더 학자의 이단아적인 사상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체험 현장에서 노동을 통해 형성된 심대윤의 사상은 오늘날에 비추어 봐도 유효한 점이 적지 않다.
◆ 다르게 생각하기 ◆
심대윤의 다른 삶은 다른 생각을 낳았다. 학계에서는 이미 그를 ‘조선 사상사의 이단아’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글은 관습을 거부하고 통념을 배격한다. 그의 사유와 연구는 이론이나 추상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현장, 노동의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운집』에 실린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심대윤의 독창적인 글쓰기는 기본을 충실히 따르는 데서 나온다. 그는 ‘양한문 비평 뒤에 쓰다(兩漢文批評後題)’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고 단어는 적게 쓰고 담긴 말은 많으며 진술한 바는 요긴하면서도 비유한 바는 분명하고 통달한 것이 잘 짓는 솜씨의 글이다.”
심대윤은 이와 함께 쓰지 않아야 할 말 12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그것은 진부한 말(陳言), 거친 말(荒言), 중첩되는 말(複言), 두서가 없는 말(亂言), 이해 되지 않는 말(隱言), 법도에 얽매여 자유롭지못한 말(劣言), 비루하고 속된 말(俗言), 유약한 말(穉言), 자질구레한 말(瑣言), 시의에 맞지 않은 말(浪言), 이치에 맞지 않은 말(妄言), 줏대가 없는 말(湯言)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진부한 말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의 독창적 글쓰기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그는 누구나 하는 상식이나 개념을 의심하고 전복시킨다. 『백운집』에 실려 있는 ‘변학(辯學)’, ‘붕당론’, ‘선악일본론(善惡一本論)’, ‘안빈론(安貧論)’ 등의 논변문은 대부분 기본 통설에 대한 반박으로 채워지고 있다. 예컨대 ‘안빈’은 흔히 가난을 편하게 여긴다로 해석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귀를 잘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해석한다. 왜 그러한가. 군자란 가난 속에서 자신의 역량이 갖춰지기를 힘 쓰는 사람이어서 가난을 견딘다는 것 자체가 부귀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던 심대윤은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요, 뚜렷한 스승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글은 평범하지 않다. 사상은 통념을 거부한다. 그의 독창적인 사상과 논리는 어디에 서 유래한 것일까. 심대윤의 저작을 발굴해 『심대윤전집』을 편찬하고, 문집 『백운집』 번역을 이끌었 던 임형택 교수는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남다른 인생 체험이다. 심대윤은 “우환 속에서 태어나 곤궁한 가운데서 자랐기 때문에 자못 세상사에 생각이 깊었으므로, 일찍부터 고심적려(苦心積慮)하여 사물의 실정에 대한 견해가 있었다”고 밝혔다. 천시 받던 상업과 공업에 종사하였던 체험적 식견이 학적인 논리로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심대윤이 처한 19세기 조선의 사상적 위기가 그를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심대윤의 경학사상은 밀려드는 천주학에 대한 학문적 대응이었고, 그의 복리사상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폐해진 민중을 위무하는 행복 철학이었다.
셋째는 심대윤의 사상이 양명학에 연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대원의 증조 심확과 백증조 심육은 모두 양명학자 정체두의 문인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가학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라는 게 임형택 교수의 진단이다. 임 교수는 심대윤의 학문이 조선 양명학의 계보에 뿌리가 있다며, 심대윤을 양명학 좌파로 분류했다.
심대윤은 1995년 『한국경학자료집성』에 그의 경학 저술이 실리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심대윤전집』(3책, 2005)이 편찬되고, 문집 번역본 『백운 심대윤의 백운집』(2015)이 나오면서 본격 조명받고 있다. 그간 박사학위 논문을 비롯해 연구 성과가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생애와 학문적 사승 관계 등 아직 규명되지 않은 점도 적지 않다. 학계는 일단 실학자로 분류하고 있으나 그의 학문적 좌표를 어디에 설정해야 할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심대윤을 학문적,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있어 번역은 특히 중요하다. 『백운집』 출간에 이어 『심대윤전집』에 포함된 경학 자료, 역사 저술 등의후속 번역작업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