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정란_시인, 상지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 1953년생.
시집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 『나는 지금 사랑을 말하고 있다』 『용연향』 등
현대사회의 정보는 정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 유통 회로에 들어가는가가 더 중요하다. 정보는 흘러넘치며, 정보의 진위나 질을 판단할 기준도 모호하다. 따라서 그 정보들을 걸러주고, 그 정보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는 중간 유통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 매개자들의 공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언론이다. 만일 정보 유통자인 언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보의 진실성은 증발되고, 모든 것은 그 언론이 지지하는 세력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고 일그러질 것이다. 결국, 정보를 공정하게 공유하여, 세계를 공동체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운영해 가기 위해 왕과 귀족의 정보 독점력을 해체시켰던 민주적 원칙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방법만 달라졌다 뿐이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여전히 사회 상층계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처지로 몰락하게 된다.
정보를 전달하는 제1 매체는 언어이다. 따라서 한 사회가 민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판단은 그 사회의 언어체계가 얼만큼 합리적이며 공정한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사회의 언어체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언론, 특히 정보 유통시장의 절대적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거대 신문권력은 진실의 전달자, 또는 기대 수준을 아주 낮춘다면, 사실의 전달자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왜곡하고, 심지어는 조작하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이 아니라, 정치세력이다. 그들은 아주 일찌감치 공정한 정보 유통자의 역할을 집어던져 버렸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신화론』에서 현대 사회의 신화가 어떤 방식의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한다. 그가 말하는 ‘신화’는 우리가 흔히 ‘신화’라는 용어로 이해하는 고대사회의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모든 재현 체계를 의미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나 조셉 캠벨, 또는 질베르 뒤랑이 이야기하는 신화가 아니라, 현대의 사고와 행동 양태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묻지마’ 신념체계를 나타낸다. 그가 그것을 ‘신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화’, 즉 뮈토스가, 플라톤 이래로, 서구 철학사에서 검증 불가능한 ‘견해’, 즉 doxa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르트의 ‘신화’에 대한 정의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나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 가깝다.
나는 ‘신화’에 대한 바르트의 정의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는 언어체계에 대한 그의 기호학적 비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에게 신화는 ‘메타 언어’로 이해된다. 신화 안에는 두 개의 기호학 체계들이 함축되어 있다. 첫 번째 체계는 랑그이다. 바르트는 이것을 대상언어langage-objet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신화 안에서 랑그는 신화 고유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점령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체계인 신화는 그 체계 자체가 이미 첫 번째 체계에 관해 말하는 이차언어이기 때문에 ‘메타-언어méta-langage’이다. 신화는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것을 강제적으로 명시하며,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한다.
신화의 언어는 신화를 유통시키는 막강한 지배계층에게 유리한 ‘의미생산’을 위해 왜곡되고 그 본래적 의미로부터 멀어진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게도, 이 체계를 작동시키는 계급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상적인 삶 안에 있는 모든 재현 체계가 모두 부르주아 계급이 인간과 세계의 관계들에 대해 만들어 낸 표상에 종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표준화되고 광범위하게 유통될수록(자연화), 신화 형성 세력의 “부르주아적”인 계급적 특성이 주목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현상을 ‘탈명명화ex-nommination’라고 부른다. 누가 지배체계를 작동시키는지 모르는 것이다.
특정정치 세력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언론 고유의 임무를 집어던져버린 우리나라 거대언론은 바로 신화라는 메타 언어를 유통시키는 장본인들이다. 그들에게 정보의 진실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기호를 선발해서 그것에 그들이 유통시키고자 하는 시니피에를 채워 넣는다. 랑그는 단지 그들이 주입시키고 싶어 하는 의미를 위해 텅 비어 버린, 징발당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또한 ‘탈명명화’를 수행한다(바르트적 의미와는 약간 다를지라도). 언론이면서 언론이 아니기. 언론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도망치기. 그러나 ‘언론’이라는 외적 표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자신들이 공정한 정보 유통자라는 ‘신화’를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얼굴 없는 자들의 언어는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든 곳으로 만들 것이다. 도처에 거짓이 난무한다. 어떤 진실한 노력도 소용이 없다. 저들의 신화 체계에 포획되는 순간, 저들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모든 가치 판단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한 신화 유통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 하나가 최근에 <국어연구원>을 통해 발표되었다. <국어 연구원>은 신조어 리스트에 ‘놈현스럽다’, ‘노빠당’ 등의 용어들을 등재시켰다. 그 단어들의 함의는, 짐작할 수 있다시피,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 의미는 경멸적 느낌으로 가득차 있다. 이 황당한 선정 이유를 그들은 그 말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들에게는 언론에 등장하는 말만이 고려의 대상이다. 백 보 양보해서 그런 기준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왜 ‘딴나라당’, ‘딴나라당스럽다’, ‘차떼기’, ‘수첩공주’ 등의 용어는 제외시킨 것일까? 그런 말들은 거대 언론들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인터넷을 위시해서 시중에서 그토록 자주, 그리고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단어들은 거대 언론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그 단어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되지 않았는가?
<국어교육원>은 ‘학문적인 체’하는 가면을 쓰고 매우 정치적인 행위를 한 것이고, 그리고 언어를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신화적으로 징발한 것이다. 국어연구원은 차라리 <한나라당신화 연구소>라고 간판을 갈아 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쩌면 곧 ‘국어연구원스럽다’라는 말도 생겨날지도 모른다. ‘국어연구원스럽다’ : 기득권자들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학문의 가면을 쓰고 기득권자들의 상대 세력을 폄하하는 행위를 하는 것. 국어연구원의 이번 행위는 두고두고 그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학자들은 인간적 사실들이 언어를 중심으로 분절되며, 그 언어가 소통체계 안에서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에 징발 당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언어는 그 자체로 순수하지도 불순하지도 않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순수해질 수도 있고 불순해질 수도 있다. 언어가 병들 때, 우리는 진실의 얼굴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모든 인간적 사실은 언어의 회로를 통과해서 비로소 인지가능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언어가 진실한 방법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거짓에 기반하여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우리의 ‘존재의 집’은 ‘거짓의 집’이 된다. 바퀴벌레와 진드기가 들끓는 집.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어의 점령군들은 그 집이 보석과 비단으로 가득 차 있는 집이라고 선전한다. 그런데 그 속임수는 언제까지 갈까?
누군가 이들의 행동을 막아야 한다. 생은 결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그곳에 진실이 강물처럼 흐를 것이라는 환상을 지닌 사람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이 진실을 참칭하는 행위 정도는 막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정말 생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어떻게 거짓말쟁이들이 나누어주는 정보를 소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다. 나는 이 싸움에 시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들은 언어의 파수꾼이다. 그들은 언어가 진실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의 존재 이유는 없다.
시인은 언어라는 국자로 생이라는 샘물을 떠먹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국자 밑바닥에 쓰레기가 늘어 붙어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에도 수없이 나는 지금 썩은 언어의 뻘밭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이 썩은 말들의 늪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