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한국문단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잇따라 날아들었다. 희소식부터 본다면 조세희의 연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하 난쏘공)』,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 공지영의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국내 문학작품 3편이 판매부수 1백만 부 돌파를 눈앞에 뒀다는 것이었다. 특히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도시 하층민의 삶을 담아낸 『난쏘공』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78년으로 무려 29년 만에 1백만 부를 찍게 된 셈이다. 일본소설을 비롯해 공포, 추리, 연애, 팩션 등 이른바 장르소설이 한국 문학시장을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문학작품 세 편의 '고군분투'는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같은 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07 문예연감'을 통해 발표한 작년 작가들의 1인당 연간 인세 수입액은 이 같은 희소식을 마냥 좋게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문예연감에 따르면 작년 국내 문학류 발행부수는 2천1백13만3천부로 출판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9.4% 가량 늘었다. 그러나 작가 1인당 연간 인세 수입은 약 3백80만원으로 8.2% 가량 줄어들었다. 발행부수가 증가했는데도 문인들의 인세수입이 줄었다는 것은 외국작품이 갈수록 잘 팔리고 있거나 소위 '팔리는 작가'와 '안 팔리는 작가' 사이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00년대 들어 문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문예진흥사업이 전개되고 있지만 많은 문학인들은 여전히 어려운 처지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의 문예진흥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올 가을 작가들은 어느 때 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야했다. 크고 작은 문학행사도 유달리 많았지만 특히 많은 외국 손님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국제문학행사가 서울과 전주에서 잇따라 열렸기 때문이다.
먼저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국작가협회 등이 10월 11~17일 서울에서 개최한 <한중문학인대회>에는 중국의 평론가 장종, 소설가 모옌, 한국의 고은 김원일 신경숙 등 양국의 대표 작가 40여 명이 참가했다. 올해 한중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양국 정부의 공식 후원을 받아 열린 행사로 특히 중국 문인들의 공식 협의체인 중국작가협회가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자리였다. '한중문학인대회-한강에서 장강까지, 장강에서 한강까지'를 주제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양국 작가들은 한중문학포럼, 한강선상낭독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깊은 우의를 다졌다.
11월 7~14일 전북 전주에서 개최된 <2007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전주(AALF)>는 국내외 작가 4백여 명이 참여한 국내 최대의 국제문학행사였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 이집트 여성 소설가 살와 바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루이스 응코시 등 아시아-아프리카 초청 작가만도 70여 명에 이른다. “문학을 통해 양 대륙 간 문학적 소통 창구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 행사에서는 평화와 차별 등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 작가 초청 강연 등 각종 학술 행사와 도서 박람회가 전주 시내 곳곳에서 진행됐다. 세계문학사에서 변방으로 분류돼 온 아시아ㆍ아프리카 작가들이 한 자리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AALF’는 매우 뜻 깊은 자리였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 외국 작가들의 내방이 잦았다. 앞서 소개한 두 개의 국제문학행사 때문에 방한한 작가들을 제외하고도 프랑스 여류 소설가 뮈리엘 바르베리, 베트남 신예작가 응웬옥트, 멕시코 소설가 세르히오 피톨, 중국 소설가 왕멍 등 각국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국문학이 빠르게 세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이 영국 출신 여류작가 도리스 레싱에게 돌아가자 국내 문학계는 다시 한 번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그러나 문학계는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번역량과 수준을 지금보다 높인다면 멀지 않은 시기에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이 '번역아카데미의 전문 학원화' 등의 중점사업을 통해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것도 고무적인 소식이다.
‘독서의 계절’인지라 신작들도 시, 소설, 산문을 가리지 않고 유난히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승우의 『그곳이 어디든』, 김종광의 『율려낙원국』, 서유미의 『판타스틱 개미지옥』,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탁환의 『열하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의 장편소설이 올 가을에 새로 나왔다. 2005년 대산창작기금과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한 김애란이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펴냈고, 이른바 '미래파' 논쟁의 중심의 서있는 황병승 시인이 신작 시집 『트랙과 들판과 별』을 펴내는 등 신인 작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원로, 중진 문인들의 열정도 만만치 않았다. 소설가 박완서가 9년 만에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펴냈고, 올해 여든 살이 된 김남조 시인이 생애 16번째 시집 『귀중한 오늘』을, 중진시인 신달자 시인이 열한번째 시집 『열애』를 발표했다. 암 투병 중인 김점선 화백의 꽃그림이 곁들여진 최인호의 신작 산문집 『꽃밭』, 전방위 저술가로 활동하는 김정환 시인의 산문집 『만남, 변화, 아름다움』, 박범신의 기행산문집 『카일라스 가는 길』 등 한국 문단이 올 가을에 거둔 결실은 풍성하다.
올해 제7회 미당문학상에는 문인수의 시 「식당의자」가, 황순원문학상에는 김연수의 중편 「달로 간 코미디언」이 각각 선정됐고, 제38회 동인문학상에는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당선됐다. 올해 만들어진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서유미의 『누가 나를 남쪽 나라로 데려갈까』가, 제15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는 소설부문에 김훈의 『남한산성』, 시부문에 남진우의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평론부문에 김영찬의 『비평극장의 유령들』 등이 뽑혔다.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가했던 신경림 시인은 북측 문인들과의 분과별 모임에서 “내년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를 더욱 활성화하고 더욱 실제적인 행사들을 진행해나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점점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문학이 새해에는 북한 문학과의 교류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우리 문학인들이 올해보다도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