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과 혼이 담긴 5편의 변주곡 - 불역 이청준의 『Les Gens du Sud(남도 사람들)』
글 / 김시몽_고려대학교 불문학과 교수. 역서 『죽음의 한 연구』(박상륭 作)
파트릭 모리스(Patrick Maurus) 씨가 프랑스 악트 쉬드(Actes Sud)출판사에서 오래 전부터 ‘Les Lettres Corennes한국문학시리즈’를 주도하고 있다. 모리스 씨는 이를 통해, 한국 현대작가들을 끊임없이 소개하기 위해 온 힘을 써왔다. 박완서, 이균영, 이문열, 이청준, 최인호 등 한국문단의 주요 작가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번역서를 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모리스 씨가 직접 제일 많이 번역한 작가는 이청준이다. 소문에 따르면 이청준 작가가 모리스 씨가 아니면 자기 작품의 불어 번역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문은 소문뿐이라고 해도, 그만큼 모리스 씨가 이청준의 문학세계와 친밀하다는 의미가 없지 않다. 그래서 이번 번역서도 역시 이청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남도사람들』, 이청준 전집 속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잡고 있는 작품이다. 연작 형식으로 실린 이 다섯 소설 중 두 편은 이미 영화감독 임권택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그 첫 영화가 다름이 아닌 <서편제>(1990)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를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에 크게 알리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영화 <서편제>도 그렇거니와 원작 소설 「서편제」도 그만큼 한국의 전통문화에 그 뿌리를 깊숙이 박고 있다. 마치 경고를 주듯이 모리스 씨는 이번 번역서에서도 발문(跋文)을 통해 이 『남도사람들Les Gens du Sud』이란 소설이 얼마나 한국의 민족성을 잘 드러내는 한국적인 소설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남도사람들』이란 소설은 전라도와 판소리에 관한 이야기이긴 하나, 더 나아가 한(恨)과 혼(魂)을 말하는 작품이다. 한 번이라도 번역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한(恨)'의 번역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번역하려면 그 작업은 무척 까다롭다. 모리스 씨가 발문을 실을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발문은 번역된 글을 잘 이해하도록 쓰여진 것인 만큼 번역의 한계를 선언하는 것이기도 한다. 번역가로서는 실패의 고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모리스 씨가 그런 것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이유는 발문이 없이도 이 다섯 편의 연작소설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프랑스 번역비평가 앙토안 베르만(Antoine Berman)씨는 ‘외국도서를 찾아 읽는 독자는 자기가 모르는 다른 문화를 만나기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에 번역가들은 번역의 한계에 대해 너무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쓴 바가 있다. 프랑스 독자들이 한(恨)으로 가득 찬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 이국적이라고 생각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번역의 실패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번역서 본문으로 들어가 보면, 아까 필자가 말한 대로 이 소설들은 전체적으로 잘 읽힌다. 이번 번역서의 특징은 『남도사람들』 안에 든 다섯 개의 단편소설을 한 번역가가 아니라 총 세 팀(다섯 명)이 나누어 번역했다는 점이다. 각 소설은 서로 다른 톤으로 구성됐으므로 번역하는 사람이 달라도 불이익이 아닌 듯하다. 다만 번역가마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서 약간씩의 차이가 나타난다. 「서편제」(1976)와 「소리의 빛」(1978)은 파트릭 모리스 씨가 직접 참가한 번역이다. 「서편제」는 최윤 씨와, 「소리의 빛」은 양정희 씨와 작업했는데 모리스 씨가 한국말이 하도 익숙하다 보니, 불어문장에서도 가끔 한국어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술잔으로 목이나 좀 축이고 나서"라는 대목에 "목을 축이다"는 그대로 "humectons-nous la gorge"(목을 적시게 하자)라고 번역하여 오역은 아니지만 불어로는 절대 익숙한 표현이 아니다(‘목을 축이다’는 여러 표현(tancher sa soif, se dsaltrer, etc)이 따로 있다). 또는 창(唱)을 듣고 "좋으네. 참으로 좋으네"(「소리의 빛」)는 “c'est bon, c'est vraiment trop bon(기분이 너무 좋아, 혹은 너무 맛있다)”로 번역이 되어 독자가 미소 짓게 하는 효과를 줘버리다. 나머지 세 편의 소설들을 번역한 김정숙 씨와 아르노 몽티니 씨 팀은 좀 더 유연한 불어로 번역하기는 하였으나 원작과 비교해봤을 때 너무 많은 부분이 아예 삭제되어 안타까운 일이다. 「새와 나무」(1980)의 마지막 부분에 "인사를 건네고는 미구에 다시 길을 돌아오기라도 할 사람처럼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그 서녘 하늘 쪽으로 발길을 서둘렀다"는 대목은 "ce fut la dernire salutation du voyageur(이것이 여행자의 마지막 인사였다)"로 간략하게도 옮겨졌다. 제일 추상적이고 한국의 사상을 제일 뚜렷하게 인용한 마지막 소설 「다시 태어나는 말」(1981)에서는 정다산과 정약용이 서로 다른 사람으로 해석되어 있다는 점도, 그리고 다산이 카톨릭으로, 정약용이 실학자로 소개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결론을 내리자면, 한국의 혼, 한국의 전통 민족성을 소개하려고 번역된 작품이니만큼 번역 팀들의 거듭된 고민의 흔적이 강하게 와 닿는 동시에 이청준의 어려운 문체와 집요한 묘사 방법 등이 잘 옮겼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변주곡처럼 구성된 다섯 소설들의 리듬과 음악성이 잘 살아있다는 것이 이 번역서의 가장 큰 장점이다.
* 『Les Gens du Sud』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2007년 프랑스 악트 쉬드(Actes Sud)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