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통신사 조엄, 고구마를 발견하다

요즘 웰빙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고구마. 이 고구마라는 말이 실은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고구마를 일본에서 전래한 사람이 조엄이라는 사실은 역사책을 통해 배웠어도, 그가 1763년 11차 통신사행의 정사로 임명되어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고구마를 가져왔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고구마의 원래 이름은 효행우(孝行芋), 일본음으로 고코이모였다. 조엄은 쓰시마의 사스나포에서 처음 고구마를 보았다. 그의 사행일기인 『해사일기』에 고구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쓰시마에는 먹을 수 있는 풀뿌리가 있는데…모양은 마 같은 것, 순무 뿌리 같은 것, 오이 같은 것, 토란 같은 것도 있어 형태가 일정치 않다. 잎은 마 잎 비슷한데 좀 더 크고 두꺼우며 약간 붉은빛이 돈다. 줄기 역시 마 줄기보다 크다. 맛은 마와 비슷하지만 좀 더 단단하다. 실로 찰기가 있어 반쯤 구운 밤 맛 비슷하다. 날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삶아서도 먹을 수 있다. 곡식과 섞어서 죽을 쑤어도 된다. 꿀로 반죽해 약과를 만들어도 좋다. 떡을 만들든 밥에 섞든 안 되는 것이 없으니 기근 때 버틸 수 있는 좋은 재료이다.

1763년 부산을 떠난 날 처음 도착한 기착지인 쓰시마의 사스나포에서 조엄이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일본인이 먹고 있던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감저’라는 이름으로 중국 서적을 통해 이미 조선에 알려져 있었다. 이광려 같은 이는 여러 차례 연경으로 가는 사신단을 통해 이 감저의 종자를 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런데 일본 사신을 갔던 조엄의 눈에 띈 것이다.

조엄은 곧 종자를 구해 부산으로 보냈다. 이듬해인 1764년 부산의 절영도에서 처음 재배가 되었다. 절영도산 ‘조내기 고구마’는 붉은 색을 띠고 밤 맛과 비슷해 오랫동안 인기가 많았는데, 조내기는 바로 “조엄이 가지고 온 고구마를 캐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조엄은 종자를 더 구해 기후가 대마도와 비슷한 제주도로 보냈다. 고구마는 시험 재배가 성공하여 널리 퍼졌는데, 제주도에서는 “조엄의 감저”라는 뜻에서 고구마를 조저라 불렀다. 이렇듯 이름에도 전래자 조엄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구마가 대마도에 전파된 것은 1715년, 빠르게 확산되어 1732년 대기근도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다. 1719년, 1748년에도 통신사가 갔지만, 1763년에서야 눈에 띈 것은 왜일까? 조엄의 자세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조고집, 백성을 위해 일본을 관찰하다

11차 사행은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정사에 임명된 사람은 북학파의 비조로 꼽히는 서명응이었는데 그만 죄에 걸려 유배를 당했다. 그다음 정상순이 물망에 올랐으나,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이유로 어명을 거부하다가 결국 귀양을 갔다. 마지막으로 임명된 조엄. 그가 임명된 이유는 조정에서 일본통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동래부사와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일본교섭의 경험이 많았다. 게다가 목민관으로서 치적을 쌓아 백성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사행 때문에 부산을 떠나는 그를 전송하기 위해 수백 명의 동래 백성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치적은 조운제도를 정비한 것이다. 본디 세곡 수송은 경강상인들이 독점하여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배가 부실해서 가라앉으면, 백성들에게 세곡을 다시 걷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엄은 관찰사 시절 영남지방의 세곡을 수송하는 서울배가 튼튼하지 못한 것을 보고 전함을 본뜬 조운선을 새로 제작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새로 조창을 설치하고 역졸을 선발하는 등 영남 백성 스스로 세곡을 수송하도록 제도를 정비해 주었다. 경강상인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조고집’이라는 별명답게 강직한 목민관의 자세로 밀어붙였다.

『해사일기』에는 이러한 조엄의 태도가 곳곳에 보인다. 동래부사 시절 수족처럼 부리던 영리한 아전과 장교들을 사행단에 포함시켜, 적재적소에 부렸다. 변박이라는 사람은 선장의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그림을 잘 그렸다. 원래 오사카에 남아 배를 지켜야 했지만, 조엄은 그를 에도까지 데리고 갔다. 도중 변박은 일본의 지도를 여러 장 그렸을 뿐 아니라 논으로 물을 퍼 올리는 수차의 모양도 그렸다. 전함을 본뜬 조운선을 제작한 것처럼 기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또 조선의 농업 기술에 응용할 수 있는 제방 쌓는 법이나 물레방아 만드는 법을 따로 수하를 시켜 정보를 수집하게 하였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편하게 살게 할 수 있을까하는 목민관의 관심에서 우러나온 태도였다. 이런 조엄이었기에 고구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조사한 고구마의 생태와 재배법, 저장법 등은 조선의 고구마 재배의 기초가 되었다.

최초의 국제 살인 사건에 냉정을 잃지 않다

영조도 “이번 사행에 정사가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위로했듯이 11차 사행은 곡절이 많았다. 먼 길을 다녀오는 동안 사람이 병들어 죽는 일이야 있을 수 있었지만, 조엄 때는 풍랑 때 다쳐서 죽고 여독에 죽고 심지어 미쳐서 자살한 사람까지 나왔다. 그리고 통신사 사상 최초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 오사카성에 머문 지 이틀 되던 1764년 4월 7일 새벽 한 괴한이 자고 있던 도훈도 최천종의 방에 뛰어들어 다짜고짜 칼로 목을 찌르고 달아났다. 최천종은 희미한 옆방의 불빛을 통해 그자가 왜인임을 확인했으며, 여러 사람이 도망가는 왜인을 목격했다.

범인은 사행단을 호송하는 일을 담당했던 쓰시마 통역 중 하나였다. 전날 최천종은 거울이 없어지자, 스즈키 덴초에게 찾아내라고 했다. 스즈키가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최천종은 왜인은 도둑질을 잘 한다고 하였다. 이 말에 화가 난 스즈키는 조선인이 도둑질을 한 것이라면서 욕을 하였다. 화가 난 최천종은 계속 대드는 스즈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이에 분한 마음을 품은 스즈키가 밤을 기다려 복수를 한 것이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에 사행단은 발칵 뒤집어졌다.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겁이 나 빨리 돌아가기를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엄은 사행원들이 절통한 마음에 일본인에게 해코지를 할까 단속하고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꾸짖어 마음을 다잡게 했다.

중앙집권제인 조선과 달리 일본은 각 번의 정치에 막부가 간여하지 않았고, 번끼리도 간섭하지 않았다. 범인은 쓰시마 소속이고 피해자는 막부에 온 손님이요, 범행은 오사카에서 일어났으니, 일본 내에서도 전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둥 최천종이 자살한 것이라는 둥 엉뚱한 말이 퍼지기도 하였다.

철저한 조사와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려는 조엄의 꾸준한 노력 끝에 5월 2일 양국의 입회인 아래 죄인은 효수형에 처해졌다. 잘못된 전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조엄의 고집이 여정을 지체하면서 근 한 달을 끌고 나갔던 것이다. 이 과정이 『해사일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은 일본 사람의 흥미를 자극했는지 얘기가 전해지고 또 전해져 가부키와 조루리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흥미를 끌 수 있도록 변형되어, 최천종을 스즈키 부친을 죽인 원수로 설정한 것도 있다. 공식적인 문서를 남기고 꼼꼼히 사실을 기록했던 조엄의 태도와는 정반대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엄은 일기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제 내가 외람되게 사신의 임무를 맡아 일본의 산천을 두루 구경하였다. 여행은 대단하였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의관과 문물이 추한 무리를 감동시켰을지라도 믿음과 독실함은 교활한 놈들을 감읍시키기에 부족하였다. 이는 실천궁행이 아직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후에 이것을 보는 사람은 공자님의 오랑캐 땅이라도 갈 만하다고 하셨던 교훈에 힘쓰기 바란다.

“교활한 놈을 감읍시키기에 부족했다”는 것은 살인사건 발생에 대한 회한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조엄은 이전 사행록들을 모두 모으고, 자신의 『해사일기』를 덧붙여 『해행총재』라는 이름으로 편집했다. 다음 통신사가 읽어보고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런 조엄의 바람과는 달리 『해사일기』는 에도까지 왕복한 마지막 사행일기가 되었다. 1811년 마지막 통신사는 쓰시마까지 가는 것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객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일본을 꼼꼼하게 기록하려 했던 조엄의 『해사일기』가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자신이 아끼던 수하가 살해당한 일을 겪었으면서도 지역으로 오랑캐를 구분 짓지 말라는 공자의 교훈을 새기는 그의 자세를 나중에 읽는 자로서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