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여류소설계의 계보를 잇는 저명 소설가이자 김동리의 아내로도 유명했던 손소희(孫素熙)의 탄생 90주년이자 타계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손소희는 1917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태어나 함흥 영생여고를 졸업한 뒤 1939~1943년 만주 만선일보 기자로 있으며 10여 편의 시를 발표, 문단 생활을 시작하였다. 손소희는 『이라기(梨羅記)』 『회심』 『남풍』 『태양의 계곡』 등을 발표하며 박화성, 강경애, 최정희 등의 선배 소설가와 박경리, 박완서 등 후배 소설가의 가교 역할을 한 역량있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문단사에서는 주로 남편이었던 소설가 김동리와 연관되어 언급되곤 한다. 김동리와 사랑에 빠질 무렵 손소희는 유부녀였고 김동리 역시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5남1녀를 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의 염문은 6·25 전쟁의 혼란 중에도 부산 피난지를 떠들썩하게 할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김동리와의 결혼 후 한국펜클럽 중앙위원(1960~74), 한국여류문인협회장(1974), 한국펜클럽 부회장(1981), 예술원 회원(1981~87), 소설가협회 운영분과위원장(1983) 등 활발한 문단 활동으로 주목을 받던 손소희는 말년에 남편 김동리와 제자 서영은의 연사(戀事) 때문에 다시 인구에 회자되었다. 1967년 박경리의 소개로 추천을 받기 위해 방문한 25살의 서영은과 김동리가 30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운명처럼 엮이게 된 것이다. 김동리는 한동안 두집살림을 하다가 1987년 손소희가 죽자 서영은과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서영은은 1993년 발간된 『한 남자를 사랑했네』라는 산문집에서 나중에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손소희가 남편의 외도를 탓하기는커녕 남편 곁에 계속 머물러줄 것을 부탁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을 내 삶의 두 큰 스승이었던 김동리 선생과 손소희 선생에게 바친다”는 서영은의 헌사는 범인(凡人)의 상식을 훌쩍 넘어선 그들의 특별한 관계를 짐작케 한다. 가부장에의 인습에 익숙해 있던 남자 문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최정희, 모윤숙, 손소희 등 1940~50년대 활동했던 여성 문인들의 자유 연애담은 오히려 오늘날의 그것을 넘어서는 감이 있다. 이들의 문학이 전쟁 전후의 보수적인 분위기로 인해 개화사상의 세례를 받았던 초기 여성 작가들보다 훨씬 강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현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