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혼란한 시대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문명성과 선진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민주와 자유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방종하면서 모든 역사와 모든 가치를 하찮게 발밑에 내팽개치고 짓밟으며 그 속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전복시키고 던져버리는 것이 점차 유행이 되고 있고 심오한 사상을 뽐내는 지표가 되고 있으며 민주와 자유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러한 허무주의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누구나 전제(專制)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고 민주와 자유의 불구대천의 적이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이 막힘없이 통행되는 사회는 이미 민주와 자유가 형성된 사회로 간주된다.

이것이 정말 우리들의 그 뛰어난 지식인들과 사상의 거장들이 르네상스 시기에 추앙하고 정의했던 민주와 자유일까?

나는 이 점에 항상 의구심을 갖곤 한다.

민주와 자유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제한과 척도가 있으며 체계와 질서가 있어, 그 실현이 모든 높이의 철폐와 모든 권위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하의 구분과 예의, 질서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거침없는 욕망의 무절제한 표출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만일 이런 상태의 자유와 민주라면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오랜 세월 모색하고 점차적으로 건립해 온 주류(主流)와 윤리도덕은 물론, 규칙과 상하, 존비의 관계가 존재하는 사회가 하룻밤 사이에 방향도 없고 최저 한계선도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민주와 자유는 이를 포장하는 휘황찬란한 허울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진정한 문명이고 선진인지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시대의 정의와 관련하여 미국 학자 헤롤드 블룸(Harold Bloom)의 생각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시대를 민주의 시대가 아닌 ‘혼란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인류사회는 신권시대와 귀족시대, 민주시대를 거쳐 이제는 혼란의 시대, 극도로 혼란하고 비민주적인 시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문학비평계의 일원으로서 나는 최악의 시대를 만났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서양정전(The Western Canon)』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유명한 서양학자 블룸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그의 또 다른 명저 『영향의 우려(The Anxiety of Inference)』를 읽었던 적이 있다. 그는 고독하지만 거대한 창조력과 예민한 통찰력을 지닌 훌륭한 학자였다. 세속에 영합하지 않는 그의 성품에 반해 나는 그를 멀리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나의 사상의 지기로 여기기도 했다. 『서양정전』은 내가 지도하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그 학생은 내게 전화를 걸어 무척이나 흥분된 어투로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에 담긴 기본적인 관점이 나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내가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보이자 그녀는 책의 한 단락을 읽어주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블룸의 서술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말한 것들은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주장했던 것과 약속이나 한 듯이 일치했고 그 가운에 상당 부분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시대에 대한 느낌, 이 사회에 대한 의혹, 그리고 그 의혹 이후의 언어 표현에 있어서 블룸과 나의 견해는 정말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치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상황과 문제에 대해 사고하고 있었다. “영웅들의 생각은 대체로 비슷하다”라는 말처럼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누군가가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과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줄곧 나의 견해에 대해 의심을 버리지 못했었다. 내가 이 시대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다른 학견(學見, 정견이 아님), 다른 예견(藝見)을 갖고 있는 것이 나의 착각이나 무지, 천박함과 평범함의 소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늘 불안해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내가 여러 장소에서 보여주었던 당당하고 기세 넘치는 모습 뒤에는 나약함과 어쩔 수 없는 무력감, 곤혹감, 자기불신 등이 감춰져 있었다. 심지어 나는 자신의 학견과 예견에 대해 변태적일 정도의 민감함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여 힘껏 나의 견해를 펼칠 때, 청중들이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이런 심리상태에서 『서양정전』을 만났을 때 내가 느낀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증한(憎恨)문학과 원독(怨毒)문학

블룸은 페미니즘이나 신역사주의 같은 심미원칙에서 이탈된 각양각색의 문화비평을 한데 뭉뚱그려 ‘증한학파’라고 명명했다. 이유는 그가 보기에 서로 다른 기치를 내걸고 있는 학파들이 하나같이 과거를 파괴하고 역사와 경전을 파괴하는 데 뜻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미 죽어버린 유럽의 백인 남성’을 당장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것뿐이다. 이처럼 남성이 역사를 대표한다는 것이 서양문학의 도통이고, 그들은 셰익스피어나 단테, 괴테, 톨스토이 같은 인물들로 도도한 서양문학사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증한문학’이라는 단어는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확실하게 정곡을 찌르는 명칭이다. 20세기에는 각종 사상의 신선들이 제각기 도처에서 혈전을 치르면서 각자 투사의 자태를 뽐냈다. 존재와 인성, 세계에 대한 회의적 정서가 대기에 가득했다. 우리의 사유는 더 이상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보다 긍정적이고 건전한 쪽으로 가지 못하고 생경함을 면치 못한 채 모든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세계에 테러가 없는 곳이 없는 시대에 이른 오늘날 나는 항상 전 세계적으로 증오와 원한의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학파의 견해가 얼마나 깊이 있고 얼마나 문명에 가깝든지 간에 그 효과는 한 가지다. 이전에 전제주의를 내포하고 있고 독단적 조화를 내포하고 있던 상태를 타파하고 온갖 소리가 요란하던 그곳에 가치체계의 붕괴와 의식과 행위의 궤도이탈을 초래하는 것이다.

‘증한학파’의 주요 취지는 존재의 악을 드러내고 억압의 해방, 다양한 주장, 유행에 대한 절대적 방임을 제창하는 것으로서, 이는 개인적 노선이 모종의 압력이나 탄압으로 순탄치 못하여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심리에 영합하는 주장인 동시에 이들에게 증오와 원한의 이유를 찾아주는 사상조류이다. 사람들이 민주와 자유에 대한 억압만을 두려워하는 비이성적 콘텍스트가 끝없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것인가, 아니면 혼란스러운 것인가?

증한학파가 문학비평의 영역에 만연하게 되면서 원래 별다른 문제가 없어야 할 문학 자체에 대한 질의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수백 수천 년 동안 문학에는 무수한 유파가 있었지만 문학 자체가 무엇인지를 회의해 본 적은 없었다.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한 번도 문제가 되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문학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학파는 문학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문제와 철학문제 및 형이상학의 문제이다. 블룸은 그들을 ‘아마추어 사회정치가 또는 방탕한 사회학자, 무책임한 인류학자, 용속한 철학자, 거친 문화사가’ 등으로 풍자하고 있다.

문학계에서 문학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매년 대학원생들의 학위논문 심사나 1년에 몇 번 개최되는지 모르는 각종 국제학술대회는 모두 문학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런 현장에 가 보면 그곳이 문학 석사나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문학논문의 심사나 문학에 관한 회의의 자리라는 생각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한 포럼 장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장소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치와 혁명, 모더니티, 경제, 세계화, 반테러, 삼농(三農), 게바라, 카스트로, 푸틴 등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전부가 증오와 원한뿐이다. 제도에 대한 증오와 인성에 대한 증오, 인류에 대한 증오와 역사 및 경전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다.

‘증한학파’라는 이름을 생각하다 보면 최근에 확립된 또 다른 이름 ‘원독문학’이 떠오른다.

원독이란 일종의 극단적인 변태적 원한을 말한다. 문학은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의 주제도 원한이다. 원한은 다분히 일상적이고 정당한 감정이다. 원한은 공개될 수도 있다. 예컨대 햄릿이 어머니를 향해 마음속의 원한을 토로하는 광경은 마치 거센 강물이 끊이지 않고 도도하게 흐르는 것 같다. 심지어 원한은 고상한 감정이기도 하다. 인간은 원한으로 인해 성장하고 건장해지며 사람들이 앙모해 마지않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보복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독은 또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항상 원독이라는 감정에는 비굴함과 사악함이 뒤섞여 있어 영원히 광명정대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원독이란 비열하고 음흉하며 잔인하며 더러운, 우물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기질이다.

지금 문학은 선악과 미추, 애증 사이의 심각한 균형상실로 인해 악함과 추함, 증오만이 남게 되었다. 인성을 저주하고 인성의 사악함을 과장하다 보면 세상에는 원독만이 남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원독이란 소인배들의 원한이다.

문학에는 큰 원한은 있을 수 있지만 이처럼 끝없이 확장되어 도처에 만연하면서 당당하지 못한 작은 원한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에는 사랑, 그것도 큰 사랑이 있어야 한다. 문학은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들고 있는 깃발에 ‘사랑’이라고 크고 선명하게 써야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들고 있는 찌든 깃발에는 가래와 침, 정액만 잔뜩 묻어 있다.

역사주의와 상대주의

전통적 역사주의가 줄곧 상당한 위력을 발휘해 왔다. 역사주의 방법에 대한 문학비평의 운용은 문학에 넓고 풍부한 세계를 제공했다. 역사주의 비평은 줄곧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비평이었다. 나중에는 다양한 신비평과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하여 비평의 세계를 교란시켰지만 역사주의 비평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유행처럼 민첩하고 기이하면서도 신비한 비평들이 일련의 실천을 거쳐 나름대로의 현허(玄虛)함과 결론은 그럴듯하지만 아무 것도 아닌, 그저 닭털이나 마늘 껍질 같은 작은 해석들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역사주의 비평만이 문학의 기본적인 명제를 해석하고 문학사의 중대한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역사주의 비평의 광대하고 중후하며 안정적인 과학성은 다른 어떤 비평방법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주의는 20세기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면서 허무주의의 연막 속에서 점차 상대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전이가 역사주의가 완전히 상대주의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역사주의는 상대주의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마는 것이다.

역사주의의 기본적인 특징은 세계가 변화하고 유동하는 것이고, 영원히 불변하는 사물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서술은 역사의 변화와 호응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변증성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아울러 우리의 서술이 아름다운 탄성을 갖게 한다. 하지만 전통적 역사주의 비평은 영원성에 대한 인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역사는 여전히 변하고 있지만 일정한 방향이 있다는 방향성의 확립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근거하여 역사주의는 시종 가치체계의 확립을 포기하지 않았고 시종 기본으로서의 역사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역사주의는 변하지 않는 목소리로 문학은 반드시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른바 오늘날의 역사주의는 상대성을 무한히 과장하고 있다. 변증법은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유동하며 모든 것에 한계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한 구실로 변해버렸다. 따라서 문학성이란 일종의 역사서술이라는 역사주의적 결론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서 고정적인 문학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른바 문학성이란 것은 영원히 일종의 역사적 개념이고 역사적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와 불변의 변증법을 ’변화가 모든 것‘이라는 상대주의로 전환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주의는 그 사용자들로 하여금 사상의 깊이가 가져다주는 충분한 우월감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 이 시대에 무언가를 긍정한다는 것은 천박함의 표시이고 무언가를 부정한다는 것은 깊이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실 상대주의는 회의주의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맡고 있는 배역의 형상은 뱃속 가득 의심이 들어찬 모습이다. 가장 우아한 자태는 인정이 아니라 회의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모든 가치모델과 도덕모델, 심미모델을 회의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학술회의에 별로 참가하지 않았는데, 그 중요한 원인은 어떤 학술대회도 결과적으로는 상대주의적 결론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흘 또는 닷새 동안의 회의 결과가 순전히 해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학술회의의 액운이 아닐 수 없다.

상대주의가 사용하는 상투적 어투는 진술문이 아니라 의문문이다. 누군가 진술문으로 “문학은 기본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문학이 어떤 기본을 갖고 있는가? 소위 기본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상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단호하게 독단적인 진술문으로 “문학에는 한 번도 고정불변의 기본이 없었다. 이른바 문학성이란 완전히 허구이고 문학성은 원래 상대적인 개념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상대주의자들은 항상 이처럼 주도적인 위치에 서 있고, 이러한 주도적 지위는 거의 천연적이다. 아주 짧고 힘 있는 반문 하나가 한 순간에 천 년 동안 사람들이 고심하여 세워 놓은 사상을 파괴해버리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상대주의가 무소부재하고 패배를 모르는 비밀무기가 되어 있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비밀무기의 효력을 실감하고 있다. 그들은 이 비밀무기에 의지하여 사상계의 정상에 서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러한 역사주의(상대주의)를 통해 해체될 것이다.

나는 일찍이 어느 살롱식 변론의 모임에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러한 상대주의를 조롱한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집에 돌아와 어머님이 문을 열어주실 때 ‘누구세요? 당신의 저의 어머니인가요? 어머니란 것이 무엇이죠? 제 어머니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설마 집 안에 있었다는 사실로 당신이 제 어머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게다가 이 세상에 어머니라는 것이 있습니까? 진정한 어머니라는 것이 있나요?’하고 반문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또한 상대주의의 관용과 너그러운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문학사에 대한 원칙 없는 용서를 허락하게 한다. 마음속에서 영원한 문학의 기준을 제거해버리고 이전의 문학사를 회고하다 보면 우리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과거의 문학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문학의 기준에 오늘과 어제의 구분이 있는 것일까? 문학도 진화론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까? 오늘의 시인들이 쓴 시가 반드시 과거의 시인들이 쓴 시보다 훌륭한 것일까? 루쉰의 소설이 《홍루몽(紅樓夢)》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역사는 용서할 수 있지만 문학사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문학에는 경계의 설정이 필요한가?

상대주의의 책략은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할 필요가 없는 말을 우회적인 언어의 순환으로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말해선 안 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문제이고 또 하나는 상식이다. 상식은 이미 최후의 언어이기 때문에 다시 말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중신(重新)주의 문학은 헛고생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나 단테, 그리고 그들의 문학을 제압할 만한 충분한 인식의 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서양정전』)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시경과 초사, 이백과 두보, 이상은과 『홍루몽』처럼 오늘날까지 세계 각국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모든 작품들을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경험을 이루고 이 추상적 경험은 모든 구체적 작품에 재현되는 것이다. 물론, 대충 지나쳐야 할 시대도 있지만 이런 시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일단의 시대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고 이런 과정이 바로 경험을 강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과거 문학과의 접촉과 변별, 그리고 전문가들의 반복되는 언설을 거치다 보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문학’이 존재하게 된다. 문자로 이루어진 것을 눈앞에 대할 때 우리는 “이것이 문학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세히 읽다 보면 그것이 훌륭한 문학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견해는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대립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일정한 개념 안에서 우리가 이 글들을 변별하고 인정하는 행위를 방해하진 않는다.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없다면 우리에겐 대대로 전승되면서 읽히는 고전적 작품들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이라고 여기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문학의 기본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의 심미경험이 변한다 해도 문학은 문학이고, 그 성질 즉, 문학성이 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일관된 문학성이 없다면 문학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문학성이 역사적인 것이라면, 모든 역사시기마다 서로 다른 문학성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오늘의 역사시기에 지나간 역사시기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일관된 문학성이 없다면 어떻게 오늘의 문학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유행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상업적 성공이나 다른 기준을 내세울 것인가? 그리고 이런 기준은 무엇에 근거하여 세워지는 것인가?

문학은 경계설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의 생명 속에 존재하고 우리의 감정 속에 존재하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열독으로 형성된 공동의 경험 속에 존재한다.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복잡한 것이 사상의 깊이를 증명하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