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좀 대지마. 잊었니? 넌 운지 너무 오래 됐어. 알고 있었니? 아니면 다른 무엇을 외면하고 있었니? 오래전부터 두둥, 두둥 나를 향한 심장이 몸 밖에서 뛰는 걸 넌 알고 있었잖아. 통 잠을 못 자서? 아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다 변명이잖아. 넌 오늘 오후까지 억지로 여자 유도 선수 얘기를 지어내고 있었잖아. 왜 그만두려 하는 거지? 신선하지 않아서? 느닷없이 일어나 보드카를 마셔서? 다 변명이야. 넌 내게,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마감에 쫓겨 잠깐 자는 동안 자면서도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려고 애썼잖아. 진정 그리워한 것은 아니었을 거야. 너만 알겠지만. 니가 쓰고 싶었던 유도 선수들. 잠에서 깨 정신 나간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꿈속에 스쳐간 그녀들을 되살려내려 애썼잖아. 물론 꿈속에 스쳐간 그녀들이 되살아나지 않았겠지. 그래서 넌 다시 핑계대기 시작했지. 불현듯 드는 생각이 혹 갑상선 환자가 아닐까. 정신병이 생긴 걸까 고민했었잖아. 그거 다 핑계야, 알지? 그런데 실은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아무 것도 아닌 걸. 니가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는 그냥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이라는 걸. 예비군 훈련을 갔다 온 동생이 삼겹살을 구워 먹자는 데 넌 신경질이 났어, 분명. 짜증을 참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너 후다닥 상추 사러 나간 거잖아. 그렇게 바쁘게 걸어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넌 왜 뛰었어? 기껏 상추를 사러가면서 말이야. 너도 니가 싫었던 거야. 잠을 못 잔 지 꽤 되었지? 그래, 그게 어쨌다고. 평소에 많이 잤잖아. 왜 날 만나려면 잠투정이야? 넌 그게 참 그래. 남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후까시는. 마음 속 한 구석에선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을 고려하려고? 아까, 불과 두 시간 전만해도 컴퓨터 앞에 앉아 불평을 했었잖아. 도대체 그 짜증의 정체를 알고 싶어 이리저리 전화도 했었잖아. 갑상선? 너 실수 했어. 상대방이 물었지? 내가 그렇게 짜증 부렸어? 하고 말이야. 너 우물쭈물 했잖아. 넌 이 순간에도 지금 쓰는 이것이 소설이 될 줄 모른다는 기대감에 사로 잡혀 있지? 난 알아. 니가 원하는 게 뭔지. 입버릇처럼 말하잖아. 니가 말하는 문학, 소설. 도대체 그게 뭔데? 너가 착각하는 것 중에 제일은 바로 그거야. 니가 맘만 먹으면 쉽게 날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 소설을 잘 쓰는 게 뭔데? 이야기를 재밌게 만드는 것? 아름다운 문장을 기억해 내는 것? 그래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니가 생각하는 것은 그게 아니잖아. 넌 언제나 나와 다른 사랑을 꿈꾸잖아. 다시 말하지만 넌 내게 별로 절실하지 않아. 결국 니 사랑이 부족한 거지. 그래서 널 만날 수 없는 거야. 바로 그거잖아, 넌 사랑이 부족해. 그래서 넌 날 위해 울지 않는 거야. 니가 울린 사람들을 생각해봐. 그들이 네게 보냈던 사랑을 기억해봐. 넌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야. 사랑은 준비됐을 때 시작해야만 되는 거라구. 넌 기억을 떠올리기만 하면 입버릇처럼 지나간 옛사랑을 주절거리잖아. 받은 상처에, 서운한 감정에, 이것저것. 그럼 난 뭐야. 그 정도의 주절거림도 없으면서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아냐? 너 지금도 유도 선수들 생각하고 있지? 너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는 안 되는 거야. 너 억지로 그들의 사랑을 엮으려고 하고 있잖아. 사랑이 억지로 되니? 넌 아직도 그걸 몰라. 너 불만이었지? 니가 쓴 소설이 사랑으로 엮이는 걸. 니가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넌 정말, 몰라. 사랑이라는 것. 넌 언제나 나와 이별이 쉽지 않아. 그것이 니 단점이야. 그런 니가 어떻게 나와 사랑할 수 있겠니? 단념이라는 것을 좀 해 봐. 매번 상대가 다른 데 어떻게 감정이 똑같을 수 있겠니. 다 너에게 달린 거야. 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내 감정도 달라지기 마련이야. 명심해 이건, 사랑은 언제나 절실해야만, 준비됐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