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리처드슨(1689-1761)의 첫 소설 『파멜라』는 1740년 겨울 출간된 이후 1년도 안 돼 5판을 찍고 프랑스어로도 번역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이 50세가 넘은 리처드슨의 첫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 때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로 영국 의회의 인쇄물을 전담하는 인쇄업자였다. 그는 다른 인쇄업자들의 부탁을 받고 여러 상황에서 일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서한문 견본집을 저술하다가 그러한 틀에 맞춰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후에 이 소설은 영국 문학사상 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되게 만든 최초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 이 소설은 신분이 높은 주인과 하녀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계급 타파적인 소설로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파멜라』를 모르면 문화인이 아니라고 여길 정도로 선풍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18세기에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소설이었으며 따라서 당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이었다. 서간체 소설인 이 작품을 통해 저자가, 어려운 가정 형편상 하녀로 일하게 되더라도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을 해야 적절한 보답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미덕에 대한 보답’이라는 부제에서도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작품은 전·후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편의 줄거리는 젊은 대지주 모친의 여종이었던 어여쁜 파멜라가 그 모친이 사망한 후 주인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고 마침내 주인의 마음을 돌려 정식 결혼에 이른다는 것이다. 후편에서는 결혼식에 이르기까지의 상세한 과정과 그 이후에 변함없는 파멜라의 유덕한 행적을 묘사한다. 파멜라는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서간체 소설은 극적인 긴장을 고조, 유지시키고 독자가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리처드슨은 이 소설에서 그러한 장점을 한껏 활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극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신분의 격차를 결혼이라는 안이한 결론으로 풀어간 데 대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우세하고 실제로 리처드슨의 다음 작품인 『클러리사(Clarissa)』가 그의 걸작으로 공인되고 있기도 하다. 『파멜라』는 한 하녀가 주인의 끈질긴 유혹을 물리친 끝에 그와 정식 결혼하게 되었다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 실화의 결론에 충실하다보니 결론이 안이한 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영국 문학 사상 최초의 진정한 소설로서, 또 사상 최초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묘사한 소설로서 그 지대한 영향력의 면에서 『파멜라』가 차지한 위치는 흔들릴 수 없다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비판으로 지금까지도 유력한 것은 파멜라가 자신의 미모와 정조 관념을 내세워 내심으로는 교활하게 주인을 유혹하면서 신분의 상승을 꾀했다는 것이다. 영국 소설의 주요한 주제들 중 하나가 계급의식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중요성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는 하녀의 신분에서 대지주의 부인이 되는 계급의 급상승이 일어나므로 보수적인 비평가들이 특히 위계질서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파멜라의 행동을 과격하게 비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주인이 자기를 유혹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는 줄 알게 된 후에도 주인의 조끼를 완성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 저택을 떠나는 시각을 늦추는 것이나 마침내 그곳을 빠져나오는 길에 주인의 흉계에 의해 다른 곳으로 납치당한 후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도 이런 저런 핑계로 탈출하지 않은 것이 파멜라의 숨은 의도를 보여준다고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물론 파멜라가 무의식중에 주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선택을 했을 수는 있고 저자도 그렇게 볼 여지가 있음을 넌지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파멜라가 교활한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더라도 그러한 행동이 의식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파멜라는 기껏해야 16세의 소녀에 불과한데 자신의 무의식적인 마음까지 다 간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면, 이 소설은 주인공 파멜라의 시시각각 변하는 미묘한 심리묘사와 아슬아슬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해나가는 그녀의 모험담으로 독자에게 마치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쾌감과 스릴을 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모든 역경을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성공한다는 다소 통속적인 결론(물론 후일담도 있지만)으로 독자에게 행복감까지 선사하는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파멜라』는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