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내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시절에 노인들이 토행손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중국의 신마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에 나오는 호걸로서 몸에 ‘토둔(土遁)’이라는 절묘한 신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땅속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잠행할 수 있다. 이런 신기 덕분에 그는 수많은 공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여러 차례 적에게 사로잡혔지만 몸이 땅에 닿기만 하면 언제든지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땅속으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곤 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책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아틀라스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의 부친은 바다의 신이고 모친은 땅의 신이다. 그의 힘은 대지인 모친에게서 온 것이다. 대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의 힘은 무궁무진하지만 일단 대지를 떠나면 무력해져 가벼운 공격도 견뎌내지 못한다.

나는 이 두 인물 사이에 아주 신비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한 뒤로 항상 이 두 인물이 내가 종사하는 문학 활동과 모종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에게는 인민을 어머니에 비유하는 습관이 있고 또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하는 습관도 있다. ‘인민-대지-어머니’의 관계구조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몸을 기탁할 수 있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삶에 다름 아니다.

삶은 문학예술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서 어떤 유형의 천재이든,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든 간에 삶을 떠나고 인민 대중과의 휴척(休戚)공생, 생사를 함께 하는 관계를 떠나면 곧 힘의 원천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시대의 본질을 깊이 있게 반영하는 작품을 써내고 싶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시종 가장 광대한 인민대중과 함께 서서 항상 자신이 민중의 일원임을 잊지 않고 영원히 인민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어야만 대지를 벗어나지 않았던 토행손이나 아틀라스처럼 왕성한 창작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 초에 문학창작을 시작하여 20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줄곧 인민 대중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고, 나 자신의 고통을 인민 대중의 고통과 하나로 연계시키면서 ‘토행손’의 기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를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卜)』와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天堂蒜薹之歌)』, 『풀 먹는 가족(食草家族)』, 『술의 나라(酒國)』, 『풍유비둔(豊乳肥臀)』, 『탄샹싱(檀香刑)』 등의 작품들도 모두 내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일부 편장들은 역사적 삶을 묘사하고 있지만, 이를 관통하고 있는 것 역시 오늘날을 살고 있는 작가의 강렬한 감정이다. 때문에 현실생활을 반영하는 강한 당대성(當代性)을 지니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작품들은 자신이 가장 익숙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고 자신의 정감을 토로하고 있지만 개인의 고통과 대다수 인민들의 고통 및 행복과 어느 정도 일치하기 때문에 자기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보편성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의 인민성을 확보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젊고 혈기가 왕성하던 시절에는 한 동안 ‘삶이 예술을 결정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대해 회의를 품은 적이 있지만 나이가 들고 창작경험이 증가함에 따라 자신이 상상력에 의지하여 써낸 것이라 생각하는 작품마저도 사실은 여전히 삶의 반영이며 자기의 경험을 기초로 하여 창조된 산물임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는 점점 창작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개인적 재능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괴리감과 낯선 느낌을 말한다. 나는 이것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이 함께 느끼는 공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로 인해 높은 관직과 넉넉한 봉록을 얻었다면, 글쓰기로 인해 호화 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면, 글쓰기로 인해 훌륭한 말과 수레를 얻었다면, 그리고 글쓰기로 인해 꽃다발과 박수소리에 파묻혔다면, 이런 작가는 이미 대지를 떠난 토행손과 아틀라스처럼 힘의 원천을 잃은 셈이다. 이런 사실에 불복하여 입으로 연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아직 충분한 힘이 있다고 우겨댄다 해도 실제로는 이미 마음은 있으나 힘이 따르지 않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작품의 수량이 나날이 증가하고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작가들은 물질적 생활에 있어서 광대한 인민 대중과 거리를 두게 될 뿐만 아니라, 더 무서운 것은 인민대중과의 감정의 거리가 크게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작가의 시선은 이미 보다 화려하고 영광스런 직함과 보다 값비싼 명품들, 보다 많은 재산, 보다 편안한 생활에 흡수되고 말았다. 이런 작가들의 정신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속하고 나태해지고 만다. 날카로운 고통과 강렬한 애증을 느끼지도 못하고 사랑과 원한의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른바 ‘중산계급’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작가들은 자신의 모든 부와 성공을 빛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를 위대함으로 간주하며 작은 똑똑함을 커다란 지혜로 오인한다. 또한 이런 작가들은 이른바 고아한 취미를 추구하고 사치와 허영에 기초한 소비과정에서 스스로 즐거워하며 화려하기만 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뉴스와 신기한 소문을 수집하는 데 열중하고 쓰레기 같은 정보에 탐닉하고 도취한다. 이런 정신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여전히 갈채를 받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진실한 정감이 개입되지 않는 문학의 유희에 빠질 뿐이다. 물론 이런 국면은 작가들의 가장 큰 비애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국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톨스토이처럼 집을 떠날 수도 있고 프랑스 화가 고갱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멀리 남태평양의 군도를 찾아가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결단조차 내릴 수 없다면 최대한 하층 인민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사상적으로 두려움과 경각심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상류계층의 배역을 밭지 않으며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조롱하지 않고 자신이 얻은 모든 것에 대해 충심으로 감격스럽고 송구스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신이 모든 사람들보다 똑똑하다는 상상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폄하와 풍자의 대상으로 삼지 말며 뜨거운 마음으로 거대한 세계에 관심을 갖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동정과 관심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들을 그렇게 나쁘게 상상하지 말고 자신을 그렇게 훌륭하게 상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온갖 욕심이 횡행하고 갈등과 분규가 그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백 년 전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명작 《두 도시 이야기》의 서두에 이렇게 썼다. “이 시대는 가장 훌륭한 시대인 동시에 가장 열악한 시대이다. 지혜의 시대인 동시에 어리석음의 시대이고 신앙의 시대인 동시에 회의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빛의 계절인 동시에 어둠의 계절이고 희망의 봄인 동시에 실망의 겨울이다. 사람들의 눈앞에는 온갖 사물이 다 있지만, 동시에 아무 것도 없다. 사람들은 곧장 천당으로 오르고 있지만, 동시에 곧장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직면하여 작가는 냉정한 마음자세를 유지하면서 과잉된 매체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쓰레기와 부유하는 사회의 거품을 뚫고 인류의 정감을 관찰하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소박하고 진실한 삶을 체현해야 한다. 소박하고 진실하며 평범한 인민들의 삶이야말로 삶의 주류가 될 수 있고, 이러한 삶 속에만 진정한 감정과 진정한 창조성, 진정한 인문정신이 용솟음칠 수 있으며, 이러한 삶만이 문학예술의 진정한 원천이 될 수 있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창작에서 대담하게 새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각종 예술수단을 과감하게 운용하여 삶을 처리할 수 있으며 전통적 현실주의의 반도(叛徒)가 되어 발자크나 톨스토이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발자크나 톨스토이를 대표로 하는 비판적 현실주의 작가들이 현실생활에 대해 유지했던 비판과 회의의 정신, 그들의 작품 속에 관철됐던 인간의 운명에 대한 관심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태도는 영원히 우리가 따라야 할 법칙일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이러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작품 속에 우리의 진실한 정감을 쏟아내야 하며, 어떤 계층의 환심을 사거나 헛된 감정과 가식적인 이미지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시대의 병폐를 들춰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시대의 병폐를 들춰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자신의 병폐를 들춰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후회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가차 없이 단호한 태도로 자신의 죄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작가라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적마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자신에 대해 연민을 갖거나 관용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창작과정에서의 가장 크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삼아야 한다.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쓰고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묘사하며 자신을 죄인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우리 예술의 변증법인 것이다.

‘오락의 죽음’으로 요약되는 이 시대, 무수한 오락이 진정한 문학창작과 진정한 문학비평 및 열독행위를 주변화시키는 이 시대에 문학은 비굴하고 천박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오락의 악귀’를 헌납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소중하고 고귀한 본질로써 자신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독자들이 작가를 결정하겠지만 진정한 작가라면 스스로 자신의 독자들을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우리가 처한 이 시대는 디킨스가 말했던 ‘가장 훌륭한 시대인 동시에 가장 열악한 시대’일 수도 있다. 우리가 토행손과 아틀라스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약점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기억할 때, 한 순간도 대지를 벗어나지 않고 인민의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에만 ‘인류 공통의 장점과 단점을 깊이 있게 드러내고 인류의 장점이 창조해내는 찬란함과 인류의 약점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깊이 있게 드러내며 인류 영혼의 복잡성과 선악과 미추 사이의 몽롱함을 드러내고 그 사이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을 깊이 있게 표현해낼 수 있는 작품’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위대한 작품의 정의일 것이다. 우리는 평생 이런 작품을 써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웅심(雄心)을 갖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