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로 대표되는 비속어는 타락한 말의 일종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타락이고, 그래서 덜 위험한 타락이다. 그보다 좀 덜 눈에 띄는, 그래서 더 위험한 말의 타락은 꾸밈이다. 꾸밈의 언어는 스스로를 꾸밀 때 교태의 언어가 되고, 대상을 꾸밀 때 감탄의 언어가 된다. 한 쪽에선 자기애가 넘실대고, 다른 쪽에선 팬덤(fandom)의 열기가 느껍다. 얼핏 보기엔 자기애가 더 보기 흉하지만, 언어적 타락의 정도에선 오십보백보다. 사실, 자기애와 팬덤의 열기는 근본이 하나이기 십상이다. 팬덤의 언어 곧 팬픽션은 흔히 작자와 대상을 동일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은 복이다. 그 아름다움을 언어로 찬탄하는 능력은 더 큰 복이다. 그런데 이 복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그리 많은가? 세상에 좋은 것이 그리 많은가? 아니, 범위를 좁히자. 아름다운 텍스트가 그렇게 많은가? 좋은 예술작품이 그렇게 많은가? 비평의 옷을 입고 나풀거리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자면, 한국엔 아름다움과 좋음이 지천인 것 같다. 그러나 그 감탄의 언어들이 가리키는 대상을 직접 보면, 아름다움이나 좋음과는 동떨어져 있기 일쑤다. 사실 그게 당연하다. 무릇, 아름다운 것은 드물고, 좋은 것도 드문 법이니.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꾸미는 언어는 아름답지 않다.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다독거리는 언어도 좋지 않다. 그것은 타락한 언어다. 지금 예술비평은 그런 타락한 언어의 전시장이다. 으레 그렇겠거니 에누리해서 읽는 책 뒤의 발문이나 전시 도록의 평문만 그런 게 아니다. 예술 저널들을 채우고 있는 비평언어들도 그런 팬픽션이 태반이다. 잦으면서 상투가 되지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 감탄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팽창할수록 느낌은 무뎌진다. 거듭된 감탄으로 가용어휘를 바닥내면, 정작 감탄할 대상을 만났을 때 입 다물 운명에 처하게 된다. 섬세한 미적 감각이란 신경과민의 미적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미적 자극에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이다. 10의 자극에는 10의 반응을, 5의 자극에는 5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섬세한 미적 능력이다. 물론 미적 감각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비평의 문제는 그런 주관성의 물렁물렁함이 아니다. 1의 자극을 받았든 5의 자극을 받았든 심지어 0의 자극을 받았든, 제게 맡겨진 모든 글뭉치와 이미지 앞에서 10의 반응을 하는 신경과민이 문제다. 그럴 때 비평은 광고카피가 된다. 팬픽션이 된다. 더 나아가 전근대적 사회의 지도자 숭배 언어가 된다. 실(實)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가장 화사한 언어는 가장 타락한 언어다. 꾸밈의 언어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말의 타락은 과잉분석이다. 물론 세상은 복잡하다. 텍스트나 이미지도 복잡하다. 복잡한 세상과 복잡한 텍스트/이미지에는 거기 걸맞게 복잡한 분석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죄다 복잡한 것도 아니고, 세상의 텍스트/이미지들이 죄다 복잡한 것도 아니다. 세상만사가 죄다 복잡하다 여기는 사람은 음모론의 지지자가 된다. 세상의 텍스트/이미지들을 죄다 복잡하게 여기는 사람은 의미 만들기의 파라노이드가 된다. 말할 나위 없이, 어떤 텍스트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닐 수는 없다. 텍스트는 때로 그 저자조차 깨닫지 못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그 자체로도 그러하고, 콘텍스트와의 관련 아래서도 그러하다. 그러니, 비평가는 저자가 깨닫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하거나 부여할 수도 있다. 오독이 텍스트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말한다. “파리 하늘이 그리워.” 비평가가 이 발화를 분석한다. “그가 세상의 수많은 도시 가운데 하필 파리를 그리워하는 것은 청년기의 한 도막을 그 도시에 묻어두고 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 더해, 그 도시의 이름이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포개지고 할리우드 사교계의 꽃 패리스 힐튼과 포개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파리를 향한 그의 그리움은, 무의식의 수준에서, 폭력과 성애를 향한 그리움이다. 작가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이 만든 인물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당한가?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예술비평 언어들을 한 번 들여다 보라. 파리라는 도시 이름에서 폭력과 성애의 무의식을 읽어낼 법한 ‘의미의 파라노이드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과잉분석의 언어야말로, ‘전문성’의 너울을 쓰고 있는 만큼, 가장 위험한 타락의 언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