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민규_소설가. 1968년생. 소설『핑퐁』『카스테라』『지구영웅전설』『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등
감개무량(感慨無量)! 서기 4731 년이라 한들 한국을 빼고 어찌 대우주선교사업사(大宇宙宣 敎事業史)에 대해 논할 수 있으랴. 지난 10 세기에 걸쳐 장장 3 백 광년 우주에 복음을 전파 하고 금수만도 못한 숱한 외계생명체들을 구원으로 이끌었으메 차마 한떨기 복음의 꽃으로 쓰러져간 이백 칠십만 팔천 예순 두 명 순교자들의 영전에 이 꽁뜨를 바치노니 너희는 세상 의 빛, 그리고 염화, 나트륨. 선교순항함(宣敎巡航艦)이 목성의 다섯 배에 달하는 거대 행성 YT-7851 에 도착한 것은 역시나 신의 가호에 따른 것이었다. 지구로부터 천 이백 광년, 두 개의 웜홀과 세 개의 블 랙홀을 지나면서도 무사히 또 일곱 개의 우주 벨트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미지의 행성에 진입한 순간 선교사 삼백 이십 칠명은 일제히 통성기도를 올렸다. 생명체 존재 가능성 백프로, 고도 문명 증거 포착, 지성체일 가능성 매우 높음… 순항함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한 양자브레인 야곱의 모니터에 연이어 견출고딕체의 자막이 뜨 는 순간, 기도의 목소리는 더욱 간절하고 드높았다. 교신 이루어지고 있음, 매우 온화한 존 재들로 판명, 현재 그들의 안내 항로로 궤도 수정… 주여, 하고 양인기 목사의 입에서 절로 찬양이 터져나왔다. 대우주선교사업사를 통틀어 이 정도의 고도문명을 조우한 예는 일찌기 2 없었다. 믿음으로 온 몸 이백여개의 불수의근(不隨意筋)이 자동 작동, 그만 속 시원하게 양 목사는 방언을 터트렸다. 보는 이의 가슴마저 후련해지는 일등급 방언이었다. YT-7851 의 행성인들은 더없이 영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지구 못지 않은 과학 문명 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지구인과!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주여, 선교사들은 다시 한 번 신의 역사하심에 탄성을 터트렸다. 드넓은 우주에 어찌 이토록 안성맞춤인 일등 급 외계인들이 길 잃은 양떼처럼 우수하게 방목되고 있었단 말인가. 양 목사는 찬송을 읊조 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지난 번 RU- 3289 행성의 박테리아 단계 외계인들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박테리아들도 지금은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는 주님의 일등급 어린 양들이 되었지만. 서로의 적응기가 지나고 그들은 이 머나먼 외계에서 온 선교사들을 형제로 받아들여 주었 다. 최적의 주거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이들이 원하는 예배당을 지구의(특히 한국의) 디자 인 그대로 건립해주었다. 대우주선교사업사를 통틀어 존재한 최대, 최고의 개척교회였다. 지구에도 이 정도의 예배당은 없을걸요? 김원호 전도사가 중얼거렸다. 다 하나님의 뜻 아 니겠는가… 양 목사는 기도를 올렸다. 선교사들만이 모인 조촐한 예배였지만 이미 선교가 끝난 행성처럼 평화로운 첫 예배였다. 그렇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나 이곳에서의 선교가 쉬운 일이 아님을 양목사는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라며 그들은 선교를 거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믿음을 가지지도 않았다. 뭔가 느껴지는게 없습니까? 당신들에게 이 행위가 아주 중요하다 는 걸 느꼈습니다. 그들은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외계의 신앙을 있는 그대로 존중 해줄 따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매우 종교적이었지만, 어떤 신도 종교도 가지고 있 지 않았다. 깊은 신앙심으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양 목사였지만, 미치고 팔짝 뛰는 온 몸 이백여개의 불수의근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아 답답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통과 변비를 호소하는 선교사들이 늘어만 갔다. 어쩔 수 없는 이백여개의 불수의근 때문에 양 목사의 방언도 삼등급 정도로 레벨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특목신학고 일 학년 이반 시절 이미 일등급 방언을 최초로 읊었던 양목사였다. 핍박도 없고… 이교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전도가 되지 않는 이 특수한 상황을 양목사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주는 과연 넓고도 거칠었다. 3 무엇보다 행성인들은 더 할 나위 없이 옳은 삶을 살고 있었다. 온유했고, 서로를 미워하 지 않았으며, 무례히 행치 않을 뿐더러,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자랑도 교만도 아니했으 며, 진리와 함께 기뻐했다. 게다가 삶과 죽음을 동등하게 바라보았으므로 이것 참, 예수천 국 불신지옥의 필승 카드도 도무지 써먹을 방도가 없었다. 양목사는 더욱 애간장이 끓었다. 이토록 고린도전서 13 장 그 자체의 삶을 살면서도 주님을 믿지 않을 수가! 익히 우리가 알다시피 전도는 사랑입니다. 전도 역시 오래 참고 온유해야 합니다. 이럴수 록 더욱 기도에 열중하고 저들에게 주의 사랑을 전파합시다… 라고는 해도 그게 또 잘 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가득 찬 곳에서 빈 곳으로 흐르는 물과 같이 사랑도 그렇게 흐르는 것 이었다. 되레 그들은 충만한 사랑을 선교사들에게 베풀었고, 우주와 삶에 대한 더 깊은 성 찰과 관점을 열어주었다. 다만 여호와가 빠진 채로, 다만 예수의 이름을 통하지 않은 채. 에헤라 디야 선교사들은 결국 그런 심정이 되었다. 지구로부터 천 이백 광년을 날아와 에헤라 디야… 하지만 역시 특목신학교, 게다가 내신 일등급이었던 양목사의 신앙은 그 그릇이 달랐다. 이 제부터라도 이들의 역사를 파악해 봅시다. 김 전도사를 비롯한 일군의 선교사들이 그래서 행성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모두가 주님의 뜻이란 걸 믿어야 합니다. 천 이백 광 년을… 여호와께서는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으며… 다시금 우리를 인도해 주 실 것입니다, 아멘. 나머지 선교사들을 이끌고 양목사는 줄기차게 봉사와 희생, 사랑 그 자 체인 선교활동을 꿋꿋이 이어갔다. 물론 행성의 어느 구석에도 봉사와 희생, 사랑이 필요한 곳은 없었다. 지구의 시간으로 표현하노니, 그렇게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구한 대우주선교사업사 를 생각한다면 섬광과도 같이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은 대우주선교사업사를 통틀어 가장 혹 독하고 까다로운 선교의 역사였다. 행성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대부분의 행성인들이 주 예 수를 믿겠노라 다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천 이백 광년 너머의 한국처럼, 그들은 수많은 교 회를 지어올렸다. 이제 편안하십니까? 온화한 얼굴로 그들이 물었다. 아멘, 하는 선교사들 의 두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뜨겁게 흘러내렸다. 형제여 이제 함께 노래합시다. 내게 강 같 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행성의 형제들도 후렴을 따라 불러 주었다. 4 그 사이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가? 변화는 육개월 전 발생한 선교사들의 집단 히스테리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선교의 성과도 없이 그들은 늙어갔고, 한 순간 그들은 그 사실을 견뎌내지 못했다. 우우 그들은 예배당을 뛰쳐나갔다. 주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십니까아아아? 오가는 행성인들을 붙잡고 그들은 울부 짖었고, 주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고 요오오오! 피눈물을 흘렸다. 놀란 행성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그들은 견디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합니까?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그 길만이 살 길입니다. 어쨌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도와야 했기에 행 성인들은 주님을 영접하겠노라 약속을 해주었다. 아아, 눈물을 흘리는 선교사들을 바라보며 행성인들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마침내 저들을 구원했나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여! 행성인들이 참여한 첫 예배에서 양 목사는 대우 주선교사업사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감사기도를 주님께 올렸다. 주님의 뜻에 따라, 비로소 우주의 모든 존재를 구원한 느낌이었다. 김 전도사가 양 목사를 찾아온 것은 행성이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이브의 고요한 밤이었 다. 그가 행성 중앙에 위치한 역사의 탑 속으로 들어간지 이십 년만의 만남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백발이 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김 전도사의 쾡한 눈은 이제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아아, 두 사람은 와락 서로를 껴안았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다. 목사님… 하고 김 전도사가 울먹였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그가 입을 연 것은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만큼이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바로 이곳이… 야훼의 별이었습니다. 이곳의 초고대 기록에서… 이곳의 선조들이 많은 소우주와… 지구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여호와였던 것입니다. 이제… 어쩌죠? 멍하니, 다시 행성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이나 긴 시간이 지난 후 김 전도사의 어깨를 툭 치며 양 목사가 중얼거렸다. 어쩌겠는가… 그만… 크리스마슨데. 온 몸 이백여개의 불수의근도 이번 만큼은 어찌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밤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