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몇 년 전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파이란>을 본 관객이라면 이 포스터 카피문구를 기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위장결혼 상태로 맺어진 삼류건달인 강재와 중국처녀 강백란의 엇갈린 사랑을 아련한 빛깔로 다룬 이 영화는 90분 내내 심드렁만 재촉하는 멜로물이 쏟아지는 영화시장에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회자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송해성 감독은 전작인 <카라>의 흥행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랑이야기를 들고 쩍! 하니 나타났다는데 그의 손엔 아사다지로의 단편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한 시나리오가 들려있었다고 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팅커벨이 그의 손에 다시 카메라를 잡게 해 주었는지 알바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파이란>은 우리를 참 신산한 색으로 물들이고 지나가버린 찡~한 영화가 되어주었으니까.
믿거나 말거나지만 당시의 나도 상당한 삼류였고(지금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에나 앞으로나 삼류들이 자신의 눈을 통해 물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에서 사랑은 상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작인 아사다지로의 단편 「러브레터」는 영화보다는 훨씬 단아하다. 단아하다는 뉘앙스가 적확할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2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을 통해 영화를 보고 난 후, 직격탄으로 날아오는 페이소스를 같은 필터링을 통해 지면을 흡입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공간은 일본의 가부키거리가 인천의 뒷골목으로 변했고 인물은 ‘타카노 고로’가 ‘강재’로 ‘칸 파이란’은 ‘강백란’으로 둔갑했지만 느낌은 차이가 많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건 뭐랄까? 원작에선 담백하고 깔끔하게 처리한 슬픔을 영화는 끈적끈적하게 비벼놓은 느낌이다.
원작 「러브레터」는 제목에서 보이듯이 칸 파이란이 고로에게 보내는 두 통의 편지에 초점이 놓여있다. 우연히 한 통의 편지가 고로에게 전해지는 순간부터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듣고 그녀와의 추억을 상기해가면서 남편의 자격으로서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또 한통의 편지를 발견하는 과정이 소설의 중심서사라면 영화는 편지보다는 강재가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파이란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시간의 과정에 중심이 모아진다. 한마디로 원작은 서사를 위해 필요한 중심 소재가 편지이고 영화는 편지가 서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