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1.

소설가의 모든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한번쯤 되돌아가곤 하는 어떤 생의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작가에게는 그것이 청춘이라는 시간이기도 하고 어떤 작가에게는 고향이라는 장소이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에게는 종교나 정의라는 신념이기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유년이었다. 나는 전라도의 소읍에서 유년을 보냈다. 전 국민의 80퍼센트가 농민이고 국민소득이 100 달러 단위에 머물 때, 동네의 극장과 우체국과 중국집과 양품점과 사진관과 목욕탕과 성당과 자전거포에서 세상을 배웠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나는 30년째 대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때로 도회적인 감수성의 작가라고 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도시는 여전히 타인들의 장소이다. 동경이면서 환멸이었고, 자유이면서도 상실과 고독을 뜻했다.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도시의 이방인인 것이다.

2.

시골 소녀인 내가 처음 서울을 본 것은 열두 살, 수학여행 때였다. 기차를 탄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벽 어둠속에 집결한 아이들은 메스꺼운 기름 냄새로 가득 찬 첫 완행버스에 올라탔다. 자다 깨다 하면서 덜컹대는 버스에서 두 시간쯤 시달린 뒤 가까스로 기차역에 도착하니 비로소 날이 밝았다. 끝내 멀미를 못 이겨 한바탕 토하고 난 시골 아이들로서는 세상 끝까지 온 듯했지만, 거기가 출발 지점이었다. 하루 온종일 기차에 흔들리며 드디어 서울에 도착한 것은 밤이었다. 멀리로 화려한 불빛들이 보였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것들은 공중에 떠 있었다. 그 불빛들을 향해 기차가 한강철교를 가로질러가던 순간을 4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발밑에서는 바다보다 더 깊고 검은 강물이 흔들리고, 조명을 받아 우주기지처럼 보이는 복잡한 구조의 철교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으며, 덜컹거리는 굉음은 어딘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거세게 귀청을 때렸다. 감동이라기보다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남산과 창경원과 백화점을 구경했다. 높은 빌딩과 자동차들과 멋쟁이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기다란 줄을 만들어 도로를 점유하며 걸어가는 우리를 도시인들은 짜증스럽거나 경원의 눈길로 바라보았고 어느 촌에서 구경 나왔냐는 둥의 모욕적인 질문을 던졌다. 또 단체 도시락에 담긴 무성의하고 비위생적인 반찬에 식중독을 일으키고 말았다. 특히 우리가 단체로 묵었던 도심 뒷골목 낡아빠진 여관의 좁고 음침하고 퀴퀴하고 삐걱대는 복도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까지도 이따금 꿈에 나타나곤 했다. 아이들 중 짓궂은 남자애 몇이 남녀가 함께 든 방문에 노크를 하고 도망쳤다. 문이 벌컥 열리고 나타난 팬티바람의 남자,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몽둥이를 든 채 복도 끝까지 애들을 따라가 후려쳤던 것이다. 남자는 ‘어디서, 촌놈들이!’라고 소리치며 식식거렸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남동생에게 백화점에서 산 자석필통을 선물했다. 그리고 기차의 속도와 도시의 세련됨에 대해 끊임없이 자랑을 늘어놓았다. 도시에 대한 찬탄 어린 감상문을 써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는 내 스스로의 느낌보다 교육받은 그대로 느끼려고 애썼고, 그것을 진짜라고 믿었다. 나의 근대 체험은 처음부터 위선과 허위의식의 학습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자란 소읍의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첫 번째 장편 『새의 선물』은 농담과 냉소의 어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해에 미국은 아폴로 13호를 쏘아 달 착륙에 성공함으로써 근대의 한 상징인 과학적 이성의 승리를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 시기 한국에서는 독재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근대적인 개헌이 진행되고 있었고, 최악의 가뭄이 들어 고향을 등져야 했던 수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가 변두리 빈민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사정부 박정희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는 ‘조국의 근대화’였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도청 소재지가 있는 도시로 이사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오래된 도시였다. 도청 소재지 치고는 교통이 불편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인근의 다른 도시에 비해 기차역이 뒤늦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제가 처음 선로 공사를 시작했던 이른바 개화기 때, 그곳 선비들은 천박하고 시끄러운 기차가 자기 고장에 들어오는 걸 맹렬히 반대했다. 일제가 들여오는 신식 문명, 즉 근대화에 대한 거부였다. 덕분에 그 도시는 규모에 비해 교역이나 산업의 중심도시로 발전하지 못했다. 사회시간에 나는 그런 것이 바로 한국의 근대화를 가로막은 위정척사 운동이라고 배웠다.

근대는 서양인들의 역사에서 비롯된 계몽과 이성의 결과물이다. 민족국가의 성립, 산업생산과 테크놀로지의 발달, 도시의 발전,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개인의 탄생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 자체가 모순을 포함하고 있듯이 한국의 역사에서 근대는 기계문명을 앞세워 주권을 빼앗는 제국주의의 얼굴을 하고 이식되었다. 근대의 또 다른 얼굴은 야만적 약탈이었던 것이다. 또한 5.16 이후에는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고도성장만을 내세우는 군사 정부의 명함으로 통용되었다. 한국인에게 근대는 정체성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그 혼란은 포스 모던이 논의된 지 오래인 21세기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소설이 돌아가곤 하는 유년이라는 지점이 의미하는 것 또한 정체성 회복에 대한 갈망인지도 모른다. 나는 삼십대 중반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내가 누군지나 알고 살아야겠다’라는 절박함이 내 소설의 추진력이 되었다. 그때까지 ‘근대적 국민국가’의 교육 시스템에서 ‘학습된 인생’은 온전한 나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내가 갖고 있는 틀로는 도저히 세상을 해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점점 혼란과 절망에 빠졌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것이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며 또한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삶의 구체적인 곤궁과 불신에 부딪히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비겁하고 모순되고 이기적인 면을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이 허위와 모순에 차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러므로 나의 소설은 유년, 즉 나의 ‘첫 번째 근대’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되어야 했던 것이다.

자기부정과 세상의 이면을 뒤집어보는 비판적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내 소설은 따뜻하고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신랄하고 냉정해져야 했다. 나의 출발점이었던 첫 장편 <새의 선물>에서 나는 인간의 상처를 덮고 핥아주는 다정함보다는, 환부를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고통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위악적 태도를 상처의 치료법으로 택했다. 그것은 10년 후 나의 또 한 번의 유년여행이었던 장편 『비밀과 거짓말』에서 이르러서야 폐기되었다.

3.

나는 농부의 자식들이 땅을 떠나고 본격적으로 경쟁이 시작된 경제개발 시대에, 일제 잔재인 군대식 학교 교육으로 억압과 통제를 받으며 성장한 세대이다. 청년기였던 80년대에는 자기 자신이 아버지 세대가 담당했던 70년대 부실 성장시대의 공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대학은 데모 때문에 장기 휴교에 들어갔고 어느 밤 쿠데타 세력의 탱크가 서울 시내를 점령했는가 하면, 수많은 친구들이 곤봉으로 얻어맞고 군화에 짓밟히며 끌려갔다.

장편 『비밀과 거짓말』의 작가의 말에 나는 이렇게 썼다.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내가 뭘 잘못했나 불안해진다. 또 이유를 모른 채 통제를 받거나 누군가 부당하게 권력을 과시할 때 앞뒤 없이 분노가 치민다. 이것은 폭력을 습득하면서 성장해야 했던 내 세대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혹을 훨씬 넘겼지만 나는 언제나 조금씩은 위축돼 있고, 뭔가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기분이다. 이게 너의 인생이냐는 질문에 매번 당황하게 된다.

90년대에 이르러 나의 세대는 정체 찾기의 여정에 나섰다. 나 역시 ‘나는 나다’라는 선언의 흥분과 두려움을 동력으로 해서 고여 있던 물 밖으로 튕겨져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요즘 내 눈앞에는 탄생과 죽음이 만나는 지점이 자주 어른거린다. 사람들이 고향에 대해 말할 때 결국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깨달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실험적 분신일 수밖에 없다. 『비밀과 거짓말』의 주인공은 아버지 혹은 근대화라는 타의에 의해 연출되었던 자신의 유년에 대해 회의하며 정체성 문제로 고민한다. 결국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아주 어쩌다가 제 고향을 지나쳐가는 여행자로서, 그 냉담을 통해 강해지는 법을 터득하는’ 방식이다. 고향을 부정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버린 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준은 기획사에서 지금 차지하고 있는 일층의 방을 내놓고 좁은 방들이 몰려 있는 이층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에서도 빨리 승부를 보지 못하면 대기조를 위한 길 건너편 건물로 밀려난다. 회사의 헤드쿼터에서 멀어지는 거리만큼 관심과 지원을 덜 받게 되는 것이다. 서열은 냉혹했다. 그러나 벌어들일 돈에 근거한 것인 만큼 한편으로는 무섭도록 공장했다. 영준은 불만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이 도시의 삶이었다.

그는 늦은 밤이면 뜨거운 물로 샤워한 뒤 온더락 잔에 얼음 큐빅을 세 개쯤 넣은 몰트 위스키를 마시곤 했다. 마포에 있는 그의 오피스텔은 십이층이라서 강변도로의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혼자서 늦은 밤 도시의 야경에 깃든 피로와 적막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도시에서는 혼자라는 게 자연스러웠다.

영준의 오피스텔 입구의 데스크에 앉아 졸고 있던 경비원이 힐끔 눈을 뜨더니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영준은 인사를 받지 않았다. 얼굴을 익히면 마주칠 때마다 알은척을 해야 하고 드나드는 것이 의식되어 자유롭지 못했다. 술집이든 이발소든 영준은 단골을 싫어했다. 되도록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고 주의하지만 그래도 알아보고 반긴다거나 서비스 안주를 내오는 집은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자기 연출을 강요하는 남의 시선이란 피곤할 뿐이었다. 영준은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쳐도 제 편에서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살인강도의 침입을 받아 신원불명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마 익명을 원했을 것이다.

고향과 공동체를 부정한 주인공이 택할 수밖에 없는 도시 속의 삶. 그것은 생존 게임, 익명성, 그리고 고독을 의미한다. 근대의 산물인 ‘개인의 발견’은 더 많은 기회와 자유, 그리고 소통을 가져다 줄 듯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운명은 사뭇 다른 길로 내몰렸다.

4.

『타인에게 말 걸기』라는 내 소설에서 주인공 여자는 타인의 따뜻함과 사랑, 즉 소통을 갈구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많은 남자에게 말 걸기를 시도해보지만 결국 언제나 혼자 남겨진다. 반면 주인공 남자는 일찌감치 타인을 거부하고 개인화된 삶의 단조로움을 유지하려는 인물로, 자신의 세계로 침입하려는 여자를 경계한다. 그는 어느 새벽 우연히 여관에서 나오는 여자를 보게 된다. 여자는 사랑 없는 섹스의 결과 남자의 정액이 묻어 손가락에 달라붙은 휴지를 마치 옥수수를 먹듯 이로 긁으며 서 있다. 그 이후 남자는 더욱 그녀를 피한다. 여자는 점점 망가져가더니 마침내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억지로 병원으로 불려나온 남자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왜 하필 너를 불렀는 줄 알아? 네가 친절한 사람 같지 않아서야.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어. 난 네가 좋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이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그 주인공뿐이 아니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고독과 불안, 소외, 따돌림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분명 뭔가가 잘못돼 있는데,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것이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선악이 분명한 시대에는 물리쳐야 할 적이 있었고, 또 인과관계와 승자가 있었다. 고전소설이 그렇듯이 서사도 다채로웠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은 타인에게 깊이 개입하지 않고 자신 역시 침해받지 않으며 거리 유지를 하면서 살아간다. 대신 고독을 감당해야만 한다. 존중받아야 할 자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타자와의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 단편소설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은 오피스텔이 밀접한 지역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도 거리에는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요. 철저히 이웃과는 격리되어 있는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대신 곳곳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있어 통제되고 관리를 받지요. 당신이 절대적인 단독자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누군지 모르는 수없이 많은 이웃과 함께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근대는 인간을 해방시켜 개인화했고, 그 결과 개인은 고독해졌다. 내게 있어 가장 큰 근대의 산물은 고독이다. 그러나 어떤 정서적 사회적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해서든 인간은 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소통을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며, 저마다 고독으로 성을 쌓고 있지만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는 데에 현대적 휴머니즘이 자리한다. 나는 내 소설이 인간의 고독에 대해 더 많은 관점을 갖춰나가기를 원한다. 인식, 즉 안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문학에서 구하는 위로는 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모더니즘은 계몽사상의 화신이며, 계몽 인식론과 이성의 최우선성에 동의하는 한 우리는 모더니즘의 산고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존중받고 행복해질 인간의 권리는 어떤 세상 끝에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모든 작가들은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