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스물네살에 쓴 처녀작 『죽은 군대의 장군』이래 줄곧 알바니아의 신화적인 모습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냄으로써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알바니아를 세계에 소개한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é). 그는 지난 10여년동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많은 언론과 문학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코소보를 둘러싸고 세르비아계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와 나토군의 세르비아공습, 그리고 78일간의 전쟁을 끝내고도 끊임없이 고조되는 긴장과 해법을 찾지못하는 반목과 혼돈. 거대한 한세기를 접는 1999년 세계의 이목은 발칸반도로 향해 있다. 그리고 관심은 알바니아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해 살고 있는 대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에도 한 층 더해가고 있다.

  대산문화재단과 주한프랑스대사관 및 프랑스 외무부가 공동주최하는 ‘한불작가교류’프로그램의 프랑스 첫 방문작가인 이청준(李淸俊)이 이스마일 카다레를 만났다. 두 사람은 5월 11일(화) 저녁 8시부터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3시간여동안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청준 : 만나뵙게되어 반갑습니다. 한국에는 『죽은 군대의 장군』과 『부서진 사월』등이 소개되었고 많은 독자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국의 독자를 대신해서 만나는 셈이기도 합니다. 알바니아에는 손님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카 : 저도 만나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책은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악트쉬드출판사에서만 작품이 출판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 제가 초등학교때 사회시간에 세계지도를 보면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철로를 나타내는 기호가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코소보사태로 알바니아가 관심사로 성큼 다가왔을 때도 어린시절의 생경함이 여전했는데 이번에 파리에 오기직전 선생의 소설 을 읽으며 그 거리감을 단숨에 메울 수 있었습니다.

△카 : 제가 한국을 처음 접한 것은 ‘한국전쟁’때입니다. 그 때 알바니아는 공산정권치하에 있었고 저는 고등학생때였습니다. 하루종일 라디오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뉴스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바니아가 1960년 소련과 결별하고 이어 다른 공산국가들과 관계를 단절하는 등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온 이유도 있었겠지만 알바니아는 북한과는 특별한 교류가 없었고 오히려 냉랭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아마 엔베르 호자와 김일성이라는 두 닮은꼴 독재자 사이에 묘한 감정이 흐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 선생의 작품을 읽으며 바다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바다와 면해있는 알바니아에 있어 바다는 재난의 통로로 상징되고 있었습니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와 면해 있고 대륙과 섬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한국도 바다를 통해 숱한 외세의 시딜림을 받아 왔다는데 서로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카 : 알바니아에 있어 바다는 유럽과 미국 등 외부세계와 교류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알바니아를 둘러싼 주변 내륙국가들이 바다로 진출하기 위해 대립하고 분쟁을 일으켜왔습니다. 오늘날 발칸반도는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요충지이며 따라서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장구한 세월동안 아픔이 계속되면 그 민족에는 일련의 정서나 관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명예를 지키기 위한 복수로서 살인이 일어나는 관습은 전율스러운 면이 없지않습니다. 선생은 소설에서 이 잔인한 관습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존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카눈은 대량학살 막기위한 규범

△카 :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는 알바니아의 관습 카눈은 2차대전 전까지 고원지대를 중심으로 실제 있었습니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법으로 금지되었지요. 공산정권이 붕괴되며 부활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끝내 부활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관습법에는 비극적이고 냉혹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이 내재적 규범은 대량학살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지요. 복수를 위한 살인을 하되 연쇄살인이나 대량학살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한 사람만으로 그치는 것입니다. 관습법에서 살인자가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살인이 확산되지 않도록 냉정하게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 그 말씀은 인간사회에서 타자(他者)에 대한 살인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살인이 숙명적이라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 : 관습법에 있어 살인은 열정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법칙은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호를 하는 것이지요. 현재 코소보에서 일어나는 인종청소는 이러한 최소한의 규범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때로는 이 원시적인 관습법이 현재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복수의 관습법은 알바니아만이 아닌 중세 유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고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에서 오레스트가 아버지 아가멤논의 복수를 하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중세의 잔혹한 법에 매혹되었다거나 지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중세의 성(城)이 오늘날 거리에 존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살인이라는 숙명적인 고리를 끊는 것은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 화해는 한국에도 분단과 광주 등으로 인해 많이 논의되는 화두(話頭)입니다. 문학은 그런 어려움을 담아 개개인간의 삶의 믿음을 되살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국이 고통받고 있으면 작가도 모국과 모국어에 대해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제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분단 또는 광주문제가 나올 때 내 문학도 삶도 어려워지곤합니다. 코소보사태로 선생의 삶과 문학이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지요.

△카 : 대개 사건이 일어났을 때보다 모국어의 고통은 조금 늦게 느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역사적 사건이 났을 때 작가가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정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 자신은 정치참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루에 20여통 이상의 구명전화를 받는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조금 알려진 작가로서의 입장은 곤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문학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지만 코소보의 상황도 내가 짊어져야할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학은 희망의 언어

▲이 : 오늘과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첨단 대량정보, 즉 집단언어가 개인언어를 무력하게 만드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개인언어라 할 수 있는 문학이 희망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카 : 매스미디어 등에 의한 대량커뮤니케이션은 공개성을 띤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다만 이 집단언어가 개인을 조작할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고대비극을 연구한 실러는 ‘문학은 보호벽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대비극에서는 보호장치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6명의 합창단이 있는데 이들은 작품과 관중의 중간에 서서 관중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동시에 문학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산독재자 모택동이 문학에 대중을 참여시키며 보호벽이 사라졌습니다. 집단이나 대중에 굴복하고 군중이나 집단에 의한 창작은 문학을 비천하게 만들고 죽이는 것입니다. 모택동이 문화혁명 당시 중국에 2백만명의 소설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10명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셰익스피어가 1천명이나 있다면 그것은 그냥 작가일 뿐입니다. 구전되는 음악이 위대한 시인의 창작을 넘지 못하는 것처럼 개인의 창조가 집단의 창조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이며 문학은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문학구조가 괴테에 의해 이루어졌고 단테에 의해 이탈리아문학이 형성된 것이 그 예라 하겠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언어에서 보듯이 제국과 집단에 의한 또는 이를 대변하는 언어는 빈곤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위대한 개인언어의 대두가 필요한 것이지요.

▲이 : 선생의 작품을 보면 알바니아인 전체의 운명을 떠올리게 됩니다. 알바니아를 그릴 때 반성적인 입장에 서는지 반대로 고양시키는 입장에 서는지요. 대개의 경우 모국어를 통한 글쓰기는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 어려운데 정작 문학은 반성적인 글쓰기를 요구하기 마련입니다.

△카 : 여성의 권리가 없거나 비정상적인 관습에 대해서는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내 조국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이 : 현재의 코소보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요. 이브 안드리치의 『드라나강의 다리』를 30여년전에 읽은적이 있는데 이번 코소보사태의 씨앗은 오스만투르크에 의한 전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종청소는 열등 콤플렉스

△카 : 과거의 편견이나 선입관에서부터, 역사와 신화로부터, 과거의 회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할 권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타자를 미워하고 죽일 권리가 있다 생각하는 것은 악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날 세르비아에 의해 일어난 코소보사태의 바탕은 600여년전인 오스만투르크시대에 알바니아계가 지배계급이 되고 세르비아계는 피지배계급이었다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6세기 전에 세르비아의 땅이었으니 비키라거나 6세기전에 지배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오늘날 알바니아인들이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동안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전쟁과 분쟁이 있었습니까. 이는 그칠줄 모르는 열등콤플렉스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 그렇다면 코소보문제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카 : 3～4년동안 유엔의 관리하에 중재되어야 합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축출된 알바니아인들을 본래의 삶터로 되돌아가게 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이 함께 살려는 공생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또한 세르비아는 자신들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알바이아인들은 오늘의 상처를 오랫동안 잊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 3～4년후 유엔관리가 지난 다음에는...

△카 : 앞으로 발칸반도는 3～4년동안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민주화와 교류가 가속화하고 국경에 대한 개념이 지금보다 많이 약해지면 해법은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 선생께서는 최근 코소보사태를 두고 <르 몽드>紙와 <아르테>방송 등을 통해 세르비아를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은 갈등과 대립속에서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때 훨씬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카 : 물론 문학은 갈등과 대립속에 가치중립적이어야 합니다. 문학은 내부율을 가진 심층적인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문학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르 몽드>에 쓴 칼럼이나 방송에서 발언한 것은 문학외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선생께서는 알바니아어로 생각하고 알바니아어로 작품을 쓰는지 아니면 불어로 생각하고 불어로 작품을 쓰는지요.

△카 : 저는 알바니아어로 생각하고 씁니다. 불어로 생각하고 쓰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웃음) 제 작품은 친구이자 유네스코 알바니아 대사인 주수프 브리오니가 불어로 번역해서 프랑스에 소개합니다. 주수프 브리오니의 번역에 만족하고 있으며 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가 제작품을 불어로 옮길 것입니다. 걱정은 그가 자꾸 나이가 들어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웃음)

▲이 : 선생과 오늘 처음 대화하는데 그다지 낯설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웃는 모습이 편안하고 인상 또한 호감이 갑니다.

△카 : 이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작가가 고결한 종족이기 때문이 아닐까요(웃음)

▲이 : 오랜 시간동안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 대산문화재단이 서울에서 개최하는 ‘국제 문학포럼’에 초청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카 : 내년 가을 서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é)와 작품세계

  1936년생인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구 소련의 고리키연구소에서 수학했다. 초기에는 문학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3차례에 걸쳐 인민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한 뒤 지금까지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953년 시집 『서정시』를 출간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한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작품은 24세에 쓴 첫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이며 『부서진 사월』『돌에 새긴 연대기』『위대한 겨울』『H서류』 등의 작품이 있다.

  카다레는 줄곧 알바니아의 역사적인 기억과 구전적 전통에 뿌리박은 작품을 통해 알바니아의 신화적인 모습을 작품에 형상화하고 공산전제정권에 저항하며 베일에 가린 알바니아를 세계에 소개해왔다. 그의 작품세계의 특징은 비천하고 왜소한 삶에서 인간을 끌어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죽음, 나쁜날씨, 전제주의, 지옥을 상징하는 문서실, 도로 등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장과 문학적 장치를 활용하여 다층구조의 이야기를 직조해 낸다. 고대신화를 원용하거나 그리스의 비극과 셰익스피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