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최미경․장 노엘 주테가 공역한 황순원의 별과 같이 살다는 번역 텍스트를 읽는 것도 즐거움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도착어로서의 표현력과 설득력에 더 많은 비중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던져 보는 질문이지만, 번역이란 작품을 낳은 사회와는 다른 문화적인 맥락 속에 작품을 위치시키는 일로서 수용의 문제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작품은 텍스트의 읽힐 수 있음을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번역 작품을 읽을 때 항용 느끼게 되는 생경함이나 지루함을 상당 부분 완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이론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것은 번역이란 말의 전달이 아닌 의미의 전달이며, 따라서 말 대 말이란 ‘대응 번역’은 불가능하며 다만 원작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텍스트로 재구성하여 이 재구성한 텍스트를 원문과 다시 대조하여 표현하는 ‘등가 번역’만이 가능하다는 파리 통․번역대학의 해석 이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번역이란 원작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해한 텍스트를 자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본과 번역본 사이에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고 이 거리감 때문에 번역이 제 2의 창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이 ‘홀로 쓰기’의 고독한 작업인데 반해 번역은 최소한 모국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 작업이라는 점에서 다르며, 이 작품의 장점도 바로 이 ‘같이 쓰기’의 묘미를 최대한 살렸다는 데 있다. 번역은 그 정의상 같이 쓰기의 작업이다. 그것은 원작과 더불어 호흡하고 또 이 타자의 텍스트를 모국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이 함께 다시 쓴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같이 쓰기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성찰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우선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작품의 제목이다. 원작의 제목은 『별과 같이 살다』이다. 하지만 번역자는 이것을 ��작은 곰자리 La petite Ourse��(곰이의 딸 혹은 곰녀라고 해석될 수 있음)라고 바꿈으로써 식민지 통치와 해방이라는 시대적 상황의 희생물이 다른 무엇보다도 한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한다. 이 작품에 대한 프랑스 문단의 반응도 이 작품이 식민지 현실을 그린 여타의 작품과는 달리 하녀에서 서울의 술집으로 또 평양의 사창가로 전락해 가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는 점에 유의하여 이 여인을 플로베르의 ｢순박한 마음｣의 여주인공이나, 서양의 박해받는 신데렐라의 또 다른 원형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이처럼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원작의 제목은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프랑스인의 정서와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시대적인 조류에 걸맞게 개명되어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곰이 ‘단군신화’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신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여인이 겪은 삶은 바로 한국이 겪어야만 했던 현실로서 이 작품에 신화적인 차원을 부여하는 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처럼 번역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보다 기술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반복, 사투리의 문제도 프랑스인의 정서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반복적인 표현이나 이야기가 계속될 때 이 작품은 반복을 싫어하는 프랑스인의 취향에 따라 대명사나 등가어를 사용하여 표현의 다양화를 꾀하거나, 때로는 문체의 무거움을 피하기 위해 반복적인 표현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있다. 사투리인 경우 정확하지 않은 프랑스어 표현이나 문법이 조금 틀린 표현을 사용하여 향토색을 살리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어의 사투리로 옮길 경우 원래의 지시물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의 한 소도시의 언어라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한다.

  그러나 은유나 환유 등 비유적인 표현이나 관용어인 경우 프랑스적인 표현으로 바꾸고 있는데 이것은 번역 작품이 ‘낯설게 하기’의 탁월한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 특히 외국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플로베르가 말하는 ‘다른 곳’으로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때문이 아닐까? 여하간 ‘고추가 달린 계집애’를 구태여 ‘당근이 달린 계집애’로, 점쟁이는 ‘점성가 astrologue’로 옮기는 것은 문화적인 차별성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텍스트의 읽힐 수 있음과 문화적인 코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번역자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뛰어난 번역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것은 그것의 문체다. 조금은 진부해 보이는 듯한 원작의 인본주의적인 어조가 황순원 특유의 서정성으로 인해 상쇄되고 있다면, 이 책에서도 이 점에 유의하여 주인공의 탄식이나 아쉬움, 기다림 등 내면의 느낌을 자유간접화법이나 내적 독백을 통해 옮기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간결하면서도 정련된 문체, 객관적인 서술과 서정적인 표현이 한 데 어우러지면서 원작의 아름다움에 버금가는 그런 지평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