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려한 불어로 담아낸 고전의 그윽한 향기 - 최미경․장 노엘 주테 공역 『La Chant de la fidele Chunhyang 열녀춘향수절가』
글 / 홍승오_불문학자,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 1932년 생. 역서 『이방인』『보이지 않는 적』 등
<춘향전>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가장 애호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주제로 하여 아름다운 청춘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시련 그리고 승리를 풍부한 유머와 풍자를 섞어가며 화려한 문체로 엮어낸 우리의 대표적 고전소설로 문학으로서의 영원성과 보편성을 지녀 외국 독자에 대해서도 강한 호소력이 있기에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서 외국에 널리 소개하고 싶어하는 작품이다.
영어로는 1889년에 처음으로 알렌에 의해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불어로는 1892년에 로니․홍종우 공저 「춘향」이 출판되었을 뿐인데 이 것은 원본을 토대로 한 번역이 아닌 일종의 번안작품으로서 여주인공 춘향이 금발 여인으로 묘사되는 등 원작과는 거리가 먼 점이 눈에 거슬린다. 그런데 이 번에 최미경․주테(Juttet) 공역으로 본격적인 불어판 번역작품이 출간되었다. 이것은 1870년에 완주에서 판각 간행되어 70여종에 이르는 <춘향전> 이본(異本)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되는 목판본 <완판 열녀춘향 수절가>를 대본으로 하여 현대불어로 완역하고 <춘향전>의 생성과정과 이본의 소개, 그 성립원(成立源)의 하나인 판소리의 소개, 완판본의 특징 등 외국독자의 이해를 돕는 깊이있는 해설을 서론에 싣고 작품에 나오는 인명, 지명 등 고유명사나 인용된 고사성어 등에는 장별로 분류하여 상세한 주를 달아 권말에 싣는 등 일반독자는 물론이고 좀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하려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상세한 참고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 문학작품을 언어가 다르고 제도가 다르고 풍습이 다르고 종교가 다른 외국독자가 읽을 수 있게 번역하는 일은 대단히 여려운 일이다. 구전설화에서 출발하여 판소리 등의 형태로 흘러다니다가 문자로 정착하여 소설로 형태가 잡히면서 새로운 요소들이 쌓이고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한시, 시조, 가사, 속담, 서한문, 민요 등 잡다한 문학양식이 수용되고 양반계층의 박식하고 고상한 말투와 서민계층의 상스러운 말투가 교차하는 복합적 성격을 지닌 『열녀춘향수절가』같은 작품을 번역할 때 역자가 넘어야 하는 난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원본에서는 운문과 산문이 혼용되고 유식한 한문투의 문장이 계속되다가 대화체로 전환하여 상스러운 표현으로 바뀌고 그러다가 불쑥 화자가 끼어듦으로써 문체의 레벨이 수시로 바뀌는데 역자는 되도록 원본을 존중해나가면서
조화시켜 불어로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독자가 문체 레벨의 전환을 감지할 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수없이 인용되는 중국 고전작품의 한시 등은 운문으로 옮기면서 각운을 맞추어 한시의 운율 분위기를 전달하였고 한시는 아니지만 정자돌림 노래 같은 것은 정을 사랑amour으로 고쳐서 각운을 맞춰 훌륭한 효과를 내었다.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가 특히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외국어로 번역할 경우 일치하는 의성어 의태어를 찾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최선의 방법은 한국어의 의성어 의태어가 내는 효과와 거의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응어로 대치하는 것이다. 원본에 비녀가 비녀 비녀 하면서 떨어지는 대목이 있는데 역자는 비녀가 돌에 떨어져 부딪치는 느낌을 줄수 있는 대응어를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핀이라는 뜻의 단어 epingle을 생각해 내고 그 이형 pingre를 대응어로 동원하여 비녀가 ‘팽그르 팽그르’하면서 떨어진다고 표현함으로써 불어권 독자에게 원작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번역본을 읽노라면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정확하게 선택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들이 모여 절제된 문장을 이루면서 적당한 긴장을 유지해 나가고 그 긴장이 독자의 마음에 전달되어 호흡을 독서에 맞추게 만들어 손에 든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우리의 대표적 고전소설이 이렇듯 유려한 불어로 완역되어 불어권 독자들이 문학적 향기 그윽한 우리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매우 의의있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