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동하_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1942년 생. 소설 『전쟁과 다람쥐』 『장난감 도시』 『문 앞에서』 등
근원적인 것에 대한 어떤 갈증이랄지 또는 그리움 때문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다시 읽었다. 훼손되지 않은 원시적 자연 앞에 섰을 때처럼 나는 거기서 적지않은 위안과 정화감을 맛볼 수 있었다.
소로는 미개인들의 습관 중에서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의 하나로 머클래시족(族) 인디언들의 ‘버스크’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첫 곡식의 잔치’라고도 부르는, 말하자면 우리 상고사의 제천의식에 해당할 법한 이 행사는 이런 식으로 치러진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먼저 새 옷, 새 솥과 냄비, 그밖에 새로운 살림도구들을 마련한다. 그런 후, 헌 옷과 낡은 세간살이들, 집 안팎에서 쓸어낸 온갖 쓰레기들과 함께, 한 해 동안 먹고 남은 곡식과 그리고 다른 먹거리들까지 몽땅 끌어내어 한 무더기로 쌓아놓고는 깨끗이 불살라 버린다. 그런 다음, 마을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사흘간의 단식에 들어가는데, 이 기간 중에는 철저히 금욕하며, 또한 사면령을 내려 모든 죄인들이 자기 마을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나흘째 아침, 제사장은 마른 나무를 비벼 얻은 새 불을 마을 광장에다 피워 놓는다. 그러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 새롭고 깨끗한 불을 당겨 자기 집 부엌으로 가져 가며 비로소 햇곡식과 햇과일로 잔치를 벌이고 춤추며 노래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화적 제의인 셈이다. 한 해를 단위로 모든 낡고 묵은 것들을 버리고 매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멕시코인들은 52년을 단위로 한 세상이 끝나고 새 세상이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때마다 이와 비슷한 제의를 갖는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유태민족에게서도 같은 관습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7년이 한 단위이고, 그 7배수인 49년마다 대희년을 맞는다. 이때는 노예가 자유함을 얻으며, 모든 부채도 탕감되고,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땅도 원주인이 되찾는다. 일테면 그간에 얽히고 설킨 사회적 관계들이 모두 무화되어 순결한 원래의 자리, 그러니까 근원적인 자연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개운한 혁명인가! 거듭남인가!
금세기의 중심 화두는 규범파괴와 욕망해방이 아니었던가 싶다. 삶의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세기말적 분위기까지 편승하여 기승을 부린 결과 이제 온전하게 남아있는 규범은 없는 것 같다. 정신적 황무지 위에 내팽개쳐진 느낌이라면 넘치는 표현일까. 이 잿더미 위를 인간의 욕망은 무한질주, 거침이 없다. 그것이 아무리 추악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세기말적 상황은 당연히 문학과 예술에도 반영된다. 단순 모방의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왜곡현상을 광범위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특히 성적 담론에서 그렇다. 근자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냐 외설이냐의 시비를 불러 일으킨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연(인간 또는 그 삶)과의 심각한 괴리를 느낀다. 저것이 정말 우리들의 ‘성’ 또는 ‘욕망’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매번 회의하며 자문한다. 포르노적 글쓰기를 혐오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자연(그 실체적 진실)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그래서 병적으로 왜곡된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극히 불순한 동기로. 무식하게 말해서,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면 왜 그런 식으로 풀어놓고 까발리겠는가, 싶은 것이다.
문제는 성적 담론에만 있지 않다는 데 심각성은 더 깊어진다. 맹목적인 규범의 파괴는 자기 수련을 경시하고 서툰 흉내내기를 정당화한다. 여기에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적 유행성까지 가세하여 우리 현금의 문학, 예술의 세계는 너무 병적으로 왜곡되어 가고 있다. 근원 곧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유리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다가올 세기는 사이버 시대가 되리라고 한다. 환상과 실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상은 지금도 흔하게 목격된다. 판타지소설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그 징후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원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엄청난 상상력의 재앙에 직면하게 되리라 예견된다.
‘우리가 진실로 인디언적인, …… 자연적인 수단으로 인류를 구제하려고 한다면, 먼저 자연 그 자체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되도록 하자’고 소로는 쓰고 있다. 문명인의 병든 의식과 욕망을 겨냥한 말이다. 다소 자의적인 해석이 되겠지만, 나는 이 말에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우리의 문학과 예술이 그 근원적인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복귀의식이 그것이다. 물론 저 소박한 ‘모방론’으로의 단순 회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문학(예술)정신의 건강성 회복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근원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다. 그만큼 왜곡된 정신의 정화가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