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과 주한영국문화원(원장 마크 봄필드 Mark Baumfield)은 한국과 영국간의 문학교류의 일환으로 10월 13일과 14일, 이틀동안 교보생명빌딩 10층 대강당에서 “한ㆍ영 문학포럼(UK-Korea Literature Forum)”을 공동개최하였다.
“문학에 있어서의 여성(Women in Literature)” 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번 포럼에는 영국측 작가로 미셸 로버츠(Michele Roberts), 폴 베일리(Paul Bailey), 루이자 영(Louisa Young)이 참여하였고 한국에서는 소설가 오정희, 시인 김승희(서강대 국문과교수), 평론가 최혜실(한국과기원 인문사회과학부교수)이 참여하여 함께 주제발표를 가졌다. 아울러 송승철(한림대 영문과), 서숙(이화여대 영문과)교수가 토론을 맡았고 영국문화원 문학디렉터이자 소설가인 알라스터 니븐(Alastair Niven)과 유명숙(서울대 영문과)교수가 공동사회자로 참여하였다.
이번 포럼은 모두 3개의 주제발표와 토론 및 1개의 종합토론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미셸 로버츠와 오정희, 폴 베일리와 김승희, 루이자 영과 최혜실이 주제 발표를 하고 마지막 종합토론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제 1부에 참여한 미셸 로버츠는 여성들의 복잡다단한 삶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작가로서 작가가 다루어야 할 것이 성별이 가지는 의미 뿐 아니라 소설의 형식에 관한 문제들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작가는 항상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야 하며 이 새로운 형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작가 개인에 달린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오정희는 “내 소설 속의 여성”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조건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유년의 뜰」「중국인거리」「어둠의 집」「별사」「바람의 넋」등 자신의 소설에 나타난 주인공들을 통해 시대의 변화 속에 자연스레 나이를 먹는 각 연령대의 여성의 문제를 보여주며 이들을 평범한 한국 여성의 정서와 심리를 간직한 우리들의 초상으로 삼아 진정한 삶의 의미를 획득하고자 했다고 말하였다.
제 2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초서(Chaucer)의 초기 작가들로부터 시작된 남성에 의해 창조된 강력한 여성 주인공의 소설 전통을 잇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폴 베일리가 자신이 성장기에 독서를 통해 얻은 자서전적 성찰을 기초로 어떻게 위대한 작가들이 실감나는 여성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디킨스(Dickens)와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여성인물을 비교하며 문학에 있어서의 여성이라는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해 사무엘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과 제인 오스틴(Jane Austin)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시인 김승희는 “아버지들 속에 살기: 황무지의 힘”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공무도하가」의 여옥과 「조침문」의 유씨부인으로부터 시인 고정희(1947-1991)에 이르기까지 타인과 사회를 위해 울던 우리의 여성들은 이제 여성 자신 내부의 제도화된 모순과 남성중심의 상징질서 해체를 통해 진정한 해방을 이루어야 하고 남성중심사회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기 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저항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한국여성시인이 해야 할 일이며 21세기의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제 3부에서 루이자 영은 생의 문제를 남성과 여성으로 규정짓기 보다 거시적으로 우리가 속한 언어나 종교, 문화, 기대의 차이 등에 의해 다양화 할 수 있다고 보며 이러한 환경이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문제 역시 이러한 조건들 아래 놓일 수 있음을 자신의 소설 「Desiring Cairo」와 「Tree of Pears」의 여자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었고 국가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인간은 개인적으로 성공할 수 있으며 성적 한계 이상으로 서로 화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론가 최혜실은 “근대성, 사랑, 젠더(Gender): 신여성의 사랑과 고백” 이라는 제목으로 근대적 사랑과 성의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자유연애와 낭만적 사랑, 모성애의 결합 같은 것을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인간을 체계 속에 몰화시키는 근대성의 이중적인 것으로 살피고 결국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항분류 속에서 남성의 특성이 여성의 특성을 억압하므로써 대변되던 시대 속에서 신여성은 피식민자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타자성을 모성과 성욕이라는 금기로 인해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이 번 포럼은 섹션별로 영국과 한국작가들이 발제를 하고 패널리스트들과의 토론이 30분간 이어졌으며 청중들과 질의 응답하는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한․영 문학포럼’은 영문학의 본산인 영국의 현대작가들을 초청하여 우리작가들과 함께 공동의 관심 주제에 관한 다양한 발표와 토론을 나눈 자리로 양국간의 본격적인 문학교류의 장을 열었다는데 의의가 있었으며 “문학에 있어서의 여성”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관련 작품을 활발히 쓰고 있거나 관심이 깊은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해 소개하고 동시에 서로 의 문학관을 교류하는 장이라는데 관심이 모아졌다.
한․영 문학포럼을 마치며
마크 봄필드(주한 영국문화원장)
먼저 성공적으로 끝마친 한․영 문학포럼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포럼은 한국에 영국문학을 본격적으로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국작가들이 한국문학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 포럼을 통해 두 나라의 작가들이 보여준 일제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모자가정, 밸리댄서, 국제 로맨스와 같은 서로 다른 경험의 상호 교환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상이한 경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유대감이 형성되고 그러한 경험들을 긍정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젊은 청중들이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먼 루이자 영의 현대적이며 이국적인 연애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영국 참가자들은 한국 작가들이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보다는 보다 장대한 사건들을 주로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특히 발표자와 관객이 주고 받은 토론의 깊이에 압도당했다. 한국과 영국의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대해 생생한 토론의 장이 되었던 시간들은 매우 흥미롭고 고무적이었다. 주한 영국문화원은 이와 같은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영국에 한국 작가를 알리는데 적극 협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