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오정희_소설가. 1947년 생. 소설 『유년의 뜰』 『저녁의 게임』 『바람의 넋』 『새』 『불의 강』 등
문학의 위상이나 영향력은 갈수록 위축된다는데 내가 속한세계가 그쪽이어서인가, 자주 적지않은 수의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게 되고 오직 ‘문학’만을 하겠다는 열망에 몸을 떠는 그들에게 나는 간혹 문학하는 삶이나 자신의 문학행위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글쓰기가 건강하고 진실한 노동이어야 한다거나 문학적 포즈만으로는 문학을 할 수 없다거나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불합리함과 실망과 환멸이 있고 노고와 노력에 응당한 보상과 영광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인데 나의 좁은 경험체계 안에서 얻어진 ‘나의 앎’이기에 개개인에 따라 반드시 옳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어 어느곳에서나 누구에게나 가림없이 말하기에는 조심성이 따른다. 나 역시 작업할 때의 의자를 형틀이라 치기어린 호칭으로 표현하며 자신이 작가라는 것 또한 글을 쓰는 행위에 비장하게 도취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삶이든 어떤 일이든 나아가 존재 자체까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신을 묶는 형틀, 그 어려움 아닌 것이 있겠는가.
미국의 작가 카슨 메컬러즈는 글쓰기에 실패하여 황폐해져가는 작가의 모습을 ‘20명의 로마군주를 하나로 뭉쳐놓은 것 같은’으로 표현했고 포크너는 글을 쓰려 할 때의 작가를, 어디를 향해 짖어야 할지 모르는 사냥개에 비유했다. 항용 겪는 일이어서 새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내게 있어 글쓰기란 목표물의 향방조차 포착하지 못한 사냥개의 막막함과 당혹스러움에 다름아니다. 쓴다는 것이 한없이 막막하고 막연할 때, 애를 쓰며 쓴 글에서 남루함이나 빈약함 상투성 따위만을 볼 때 게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실존적 의미 내지 사회적 의미 따위를 생각할 때 나는 왜 내가 글을 쓰는 것일까를 자문하곤 한다. 소설이 별건가, 짐짓 모멸적인 어조로 중얼거리기도 하고 남들은 기껏 2～30분 정도 할애해서 읽고 줄거리조차 금시 잊어버리기 마련인 소설 한편 쓰노라 목숨을 건 시늉으로 비대발괄하며 수없이 희망과 좌절의 줄타기를 하다가 종내 절망적인 혐오감에 빠지게 되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자칫 허섭쓰레기가 되기 십상인 책을 내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이 또 몇 그루 베어져야 하는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까지 회의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짧지 않은 세월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자신의 힘을 신뢰하라고, 실지로 써보기 전에는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스스로도 모르지 않겠는가 라며 자신을 부추기기도 한다. 진정한 소설의 덕목은, 낯익은 것들의 새로운 의미찾기라거나 잃어버린 생의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거나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거나 우리의 땅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의 언어를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거나 등등 남의 나라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사유와 언어와의 거리, 한 문장과 다음 문장과의 간극은 우주보다 멀고 그 사이에서 헛되이 헤메면서, 분명해지는 것은 아마 평생을 해도 글쓰기의 그 막막함과 두려움 어려움에서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사실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애정을 가지면 가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삶의 어려움이고 사랑의 어려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생에 대한 연애걸기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쓰기 역시, 되풀이 겪어도 면역과 내성이 생기지 않는 점 그리고 그 가슴뜀과 온갖 갈망과 공상, 기진맥진과 지리멸렬 이윽고 쓰디쓴 환멸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구조와 신통히도 닮아 있다.
연애의 형태는 사람의 개체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가볍고 산뜻하거나 어둡고 무겁거나 강렬히 함께 타오르다 스러지거나……
나의 글쓰기, 나의 생과의 연애는 어떤 것일까, - 때로 정말 싫다고 진저리를 치고 의심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 쓰디쓴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애달픈 짝사랑, 허망한 정열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