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인환_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6년 생. 평론집 『문학과 문학사상』『비평의 원리』 『상상력과 원근법』 등
격월간 잡지인 『녹색평론』을 발간하는 일에 전념해 온 김종철 교수가 ‘인간․흙․상상력에 관한 에세이’ 라는 부제가 붙은 비평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을 펴냈다. 1978년에 첫 문학 평론집『시와 역사적 상상력』을 펴낸 이후 20여년만에 묶어낸 이번 비평집은 “시인이란 본래 생명을 보살피는 사람이다.” 라는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생태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그는 첫 평론집에서도, 자연 전체를 커다란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한 마리의 작은 벌레와 곤충과 나뭇잎까지도 인간의 일부로 파악했던 블레이크에게 공감을 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인간 공동체나 사회 공동체 같은 인간 중심의 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생명 공동체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 교수는 오늘의 생태학적 위기가 본질적으로 문화적 위기라고 판단한다. 현대 산업문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 된 기술주의적 사고 방식에는 본질적으로 타자를 자기의 의지 밑에 종속시키려는 지배와 권력의 욕망이 내재해 있고, 그 기술 독재가 뿌리로부터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기술적 접근이나 법적․정책적 차원의 변화와 같은 외면적 방법만으로는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우리 자신의 에콜로지, 즉 우리가 얼마나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기심과 자기 중심적이라는 불모의 정신적 상황에 갇혀 있는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존재의 내면적 풍부성과 근원적인 긍정의 마음으로 변화해 갈 수 있는 것일까? 김 교수는 만물이 하나이고 형제라고 생각하는 시적 사고와 시적 감수성이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시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 방식이다. 시적 사고는 은유적 사고에 의존하는 것이고, 시적 은유의 근거를 형성하는 것은 모든 것이 상호 의존의 관계 속에 존재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두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는 진정성에 도달한 시는 독자의 전인적인 인격에 호소하여 마음을 변화시키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우리의 삶이 상품성과 유용성의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정도가 심해질수록 <쓸모 없는> 시는 오히려 활로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기술 사회가 진전되어 감에 따라서 비인간화가 심화되고, 인간 관계가 망가지고, 자연이 황폐해지고, 우리 내면의 위기가 심화되면 될수록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시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렬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번 비평집에는 이용악, 신동엽, 심호택, 이선관의 시에 대한 빼어난 비평이 실려 있다. 그는, 이용악을 가리켜서 식민지 시대의 민중적 현실을 자기 실존의 구체적인 실감을 통해 절실하게 표현하여 진정성을 획득한 시인이라고 하였고, 신동엽은 고대의 이상사회 이미지를 척도로 삼아 인간 본연의 자유롭고 소박한 흙의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 오늘의 문명이 왜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하는가를 말해 준 시인이라고 하였다. 또 박용래를 말과 생명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지녔던 시인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간략히 언급하였고, 김수영의 죽음에 대한 명상도 깊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가 리얼리즘 개념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그 근저에 놓여진 인간 중심주의적 시각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비판한 점도 유의해 볼 만한 대목이다.
김 교수가 이 책에서 밝힌 생명 공동체에 대한 비전은 일견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몽상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가 미국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를 강조하고, 만인이 평등하게 억압받지 않고 삶을 누리던 무정부적인 토착 사회를 기반으로 한 도가 사상 등에 공명하는 태도를 보일 때 우리에게 그런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하여 김 교수는 유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은 현실을 역사적인 변화의 흐름 가운데서 파악하게 해 주고 주어진 현실을 최종적인 상태라고 보는 것을 거부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미래는 아직 실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미래를 마음 속에 구상할 수 없고,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는 홉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고대의 황금 시대에 대한 기억의 소생은 인간적 삶이 본래 자유롭고 평등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인식의 전환과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