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지막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는 전후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고와 행동의 일치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서유럽의 문화적 전통에 가장 충실한 작가 중 한명이다. 독일과 폴란드의 분쟁지역인 단치히(당시 독일, 현재는 폴란드)의 폴란드계 소시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력에서 짐작되듯이, 그가 평생을 두고 작품과 행동을 통해 표출한 사회적 발언들은 나치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집약할 수 있다.
대표작 『양철북』은 50년대 그의 파리 체류 기간중 쓰여진 것이다. 이 작품은 3살 때 성장을 멈춘 오스카라는 난쟁이 소년을 통해 뒤틀리고 왜곡된 금세기 초중반의 독일 역사를 알레고리화했다. 『양철북』은 그 비상한 언어구사와 환상으로 가득찬 서사기법 때문에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에 비견할만 하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신성모독과 외설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라스가 『양철북』을 통해 “인간들이 떨쳐버리고 싶어했던 거짓말과 피해자, 패자와 같은 잊혀진 역사의 얼굴을 그려냄으로써 당대의 역사를 재검토하는 크나큰 성과를 이뤘다”는 말로 노벨상 단골 수상 후보였던 이 독일 작가에 대한 뒤늦은 선정이유를 밝혔다.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라는 독일 통일의 방식에 강력히 반대했던 그라스는 노벨상 수상 후 한국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동서독이 취했던 흡수통일 방식은 늘 상대방을 가르치고 도와준다는 서독의 고질적인 태도 탓에 양자간의 극심한 갈등을 유발했다”며 “남북한은 서로 존경심을 갖고 존중하며 통일에 대비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일 작가로 노벨상을 수상하기는 그라스가 9번째이며 72년 하인리히 뵐 이후 27년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