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시인 신경림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안개를 헤짚어 길을 찾는 일과 같다. 하늘이며 나무, 들판이며 바람이 늦가을의 운치를 떨구는 데 손색이 없지만 그의 고향길을 찾아나선 사람에게는 안개와의 동행이 무엇보다 거추장스럽다. 길눈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 신경림의 고향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 상입장 470번지는 시인에게 삶의 길눈을 뜨이게 한 곳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엄연하게 시에 편입돼 있지만 때로는 중원군이기도 했고, 충주군이기도 했던 이곳은 지금도 ‘명실상부한 촌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인 신경림의 생가는 그 촌동네의, 노은 면사무소가 자리한 곳에서 5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생가 초입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버티어 서 있다. 굳이 의미 부여를 하자면, 이 느티나무 역시 시인의 시심을 길러내는 데 한몫을 했을 터이다.

지금 시인의 생가에 사는 박사분 할머니(71)는 ‘시인이 살았던 이 집에서 내가 10남매 중 7남매를 키워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뒷얘기가 참 재미 있다. 그는 글을 모른다고 했다. 따라서 신경림 시인의 시 한 줄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했다.

시인이 살았던 생가에서 눈길을 끄는 곳은 시인이 기거했던 건넌방의 툇마루와 우물이다.

왜 하필 마루인가. 툇마루와 맞닿을 듯이 내려앉은 지붕은 마치 시인이 겪어낸 어두운 시절의 휘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가의 작은 마룻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농무」를 썼으리라.

왜 하필 우물인가. 우물의 절반은 집 안쪽으로, 절반은 집 바깥 쪽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물을 동네 사람과 함께 썼다는 의미이며, 그의 시가 우리네 촌것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힘없는 자들의 쓰라린 가슴을 쓰다듬는 데 복무(服務)한 것 역시 우물의 위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신경림은 약관의 나이, 그러니까 대학 3학년 때 문단에 나온 후 서른 살이 되어 다시 서울로 올 때까지 고향에서 갖은 일을 다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주 고급스러운 직업에 속했고, 공사판 노동일이며 농사와 광산 일을 가리지 않고 해낸 것이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는 ‘낮은 곳에 임한’ 사람들의 얘기를 시 속으로 편입해 들이는 좋은 소재가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고달픈 생계 수단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그의 생가 모습은 시인 신경림의 얼룩진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가 까맣게 낀 알전구, 마당 귀퉁이에 내걸린 무쇠솥, 낮고 길게 이어진 담벼락 저 끝에 오종종하니 키재기를 하고 있는 장독대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쯤 되면 시인 자신이 고향을 향해 읊은 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마시고/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되어/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고향길」 중략)

필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연신 짖어대는 시인의 생가에서 나와 광산 가는 산길을 탔다. 놀랍게도 그의 생가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연하리 3구 산자락에는 아직도 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높은 산자락에서 금을 캐어내면 방아를 찌어내던 방앗간이 거대한 폐가의 모습으로 가을 하늘을 이고 있었던 것이다.

광산은 시인 신경림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철이 든 이후 그는 ‘내가 글을 쓸 기회를 만나면 제일 먼저 광산 이야기를 쓰리라. 그것이 나의 의무이리라’고 다짐했던 적도 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시인 신경림의 부친과 삼촌이 광산의 하청업자 일도 했고, 금방앗간도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광산이 폐허가 된 후 광산 일을 하다가 낙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마을의 청년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절창으로 불리는 그의 시 「폐광」에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빈 금구덩이에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신경림의 절창을 낳은 광산의 산자락에는 여전히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금방앗간 자리를 넘어서자 낯선 이의 기척을 알아챈 맹견의 울음소리가 산자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는 시인과 동갑나기라는 장대성씨가 염소와 개 등속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는 신경림 시인을 취재하러 왔던 방송국 사람들과 이 산자락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며 신경림 시인이 작품 속에서 살려낸 광부들의 삶을 들려 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인의 고향에서 농투성이 고향 사람들과 광산의 역사 못지않게 중요한 공간은 강이다. 장마가 지면 지금도 강물이 마을 신작로를 덮치는 옛 목계장터는 시인 신경림에게는 ‘추억의 1번지’로 작용하는 곳이다. 그가 초등 학교 때 소풍을 갔던 곳인데 그는 소풍을 갔다 온 이후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곤 하는 목계의 모습에 시달렸다고 한다. 꽃과 번듯한 이층집과 가게와 소금배와 뱃사람들이 불러대는 노랫가락 등등이 시인의 가슴을 저려들게 했던 것이다.

그 강자락에는 단 한줌도 목계장터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목계’라는 두 글자를 넣은 가게만 두서넛 자리하고 있을 뿐 강 위로는 길고 긴 목계교가 지나고, 강 밑으로는 가을 갈대밭을 헤치며 밋밋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뿐이랴, 목계 사람들조차도 그곳이 목계장터였다는 것을 모르기 일쑤이니 그만큼 세월이 흘러 버린 것이다. 그 강, 그 강마을 사람들은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로 시작되는 「목계장터」를 알고나 있을까.

사실, 신경림은 오래 전 절필을 선언한 적이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노은 초등학교에 다닐 적의 일인데 도 백일장에서 산지기집 아들에게 장원을 빼앗긴 것을 알고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노은초등학교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어린이로 공인받고 있던 그가 같은 학교의 산지기집 아이에게 장원을 빼앗겼으니 절필하고 싶은 생각이 왜 안 들었을까.

가을에는 늘 안개에 젖어 있는 그 노은초등학교는 지금 10학급(본교 6학급, 분교 4학급)에 불과한 미니 학교이다. 그러나 군 단위, 도 단위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학생 수만 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안개에 푹 싸여 있는 교문을 향해 차를 몰고 출근하던 박명의 교장이 그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 그는 이런 현상이 시인 신경림을 배출한 모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도 장학사로 있다가 올해 교장 발령을 받아 부임했다는 그는 그런 점에서 자부심에 넘쳐 있었다. 평범한 시골 학교가 아니라 내년이면 80주년이 되고 그 역사에 걸맞게 대학 총장 두 명과 시인 신경림을 낳은 학교이니 이만한 명문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노은초등학교에는 지금 유치원도 설치돼 있는데 지각한 줄도 모르는 유치원생들은 안개 속의 운동장을 뜀박질하며 재재거리고 있었고, 축구 골대 옆의 고목에서는 한 점 한 점 잎사귀가 떨어지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 그 나뭇잎도 언젠가는 알 터였다. 목계나루로 소풍을 갔다 오고 나면 그 강물, 그 강의 언저리가 눈에 밟혀 자신들도 시를 쓰게 되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