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승우_소설가. 1960년 생. 소설 『생의 이면』 『목련 공원』 『내 영혼의 지도』 등
최근에 라디오 방송에서 이상한 광고를 들었다. 어떤 책 광고였는데(제목으로 보아 연애 소설인 듯 했다), 저자 이름이 소개되지 않는 것이었다. 저자 이름이 빠진 책 광고를 이전에 듣거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로서는 지은이의 이름을 빼놓고 책을 소개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잘못 들었으려니 했다. 그러나 똑같은 방송을 세 번쯤 들은 후에, 내가 세 번씩 잘못 들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머리 속으로 이게 뭔가? 하는 의문문이 솟았고, 곧바로 아하! 하는 영탄조의 깨달음이 따라왔다. 이게 바로 작가의 죽음이라는 것인가 싶었다.
내 독서와 창작의 경험 안에서 말하자면, 작품은 그 작품을 쓴 작가로부터 떼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없는 작품은 없다. 작품은 작가가 만든 세계이고 작가의 정신이며 작가 자신이다. 어떤 위대한 작품이나 어떤 형편없는 작품도 작가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창작하는 자는 자기 작품에 자기 이름을 쓴다. 자기 작품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익명이나 집단 창작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여러 작가들이 각각의 추리소설을 써서 한 이름으로 출판한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한 권이 나온 후 흐지부지해졌지만 나로서는 여러 작가가 한 이름을 공유한다는 그 구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추리 소설을 폄하하는 보편적인 생각이 그런 구상의 동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름을 감추면서 써야 하는 까닭을 납득할 수 없었다. 작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떻게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카프카를 읽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차르트를 듣는다고 말하고 피카소를 본다고 말한다. 작가의 이름은 그가 창조한 작품에 대한 유일한 환유(換喩)이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세계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누리며 동시에 절대적 책임을 진다. 작가의식이야말로 작품의 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작금의 현상으로부터 수상하고 불순한 기운을 감지해내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가의식의 사라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현상은 모든 것을 시장판으로 바꾸려는 상업주의의 맹렬한 공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다. 작가가 사라지면 작품도 사라진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런 예문을 떠올려보자. 자전거나 라면이나 볼펜, 혹은 라디오나 자동차나 나사 같은 공산품을 만드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지 않는다. 작가가 아니므로 그들은 자기가 만든 자전거나 라면이나 볼펜, 혹은 라디오나 자동차나 나사 같은 물건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들이 작가가 아니므로, 그들이 만든 그것들은 작품이라고 불리지 않고 상품이라고 불린다. 상품은 작가의식과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유통된다. 상품의 유일한 꿈은 유통에 있다. 상품은 오로지 유통되기 위해서만 만들어진다.
저자를 밝히지 않는 책 광고는 이런 현상에 대한 한 뚜렷한 상징처럼 내게는 여겨진다. 작가의 이름을 감추거나 은폐하기 시작할 때 작품은 상품이 되고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이 아니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된다. 유통 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가의 상표화 현상도 그 동기나 내용은 같다.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작가를 택해 행해지는 극성스런 상표화는 겉으로는 작가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작가의 이름을 상표로 대치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표가 되는 순간 작가는 죽는다. 왜냐하면 상표는 작품이 아니라 상품에 붙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상품에 붙는 하나의 기호일 뿐 창조적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품에는 상표가 붙고 작품에는 작가의 이름이 붙는다. 누구보다 먼저 내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지만, 작가가 추구해야 할 것은 확고한 작가의식이다. 작가는 작품을 창작하기 때문에 작가이고, 작가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가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