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일천구백년대의 마지막 노벨 문학상이 귄터 그라스에게 돌아갔다. 독일 사람이다. 물론 독일어로 계속 글을 써온 사람이다. 그라스가 이 세기의 마지막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 데에 대해서 문학계는 대체로 수긍하는 듯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가로서도 그렇고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도 그렇고, 그라스는 그런 영예를 누릴만한 사람이다. 그의 모국어가 독일어보다 더 세력이 약한 언어였으면 보기에 더 좋았을 것이다. 특히 힘이 약한 언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노벨 문학상의 한 세기 역사가 영광으로만 수놓아진 것은 아니다. 많은 뛰어난 작가들이 이 상을 받지 못했고, 몇몇 ‘이류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았다. 평화상 수상자 명단에 끼임직한 윈스턴 처칠이 문학상 수상자 명단에 끼어 있는 것도 재미있다. 문학적 가치로 보자면 드골의 회고록이 처칠이 회고록보다 몇 수 위련만, 처칠은 받았고 드골은 못 받았다. 드골이 받았다고 해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과의 친소 관계가 수상자 선정에 크게 작용한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노벨 문학상을 탄 스웨덴 사람은 일곱명이나 된다.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세계 1위다. 노벨상 전체를 놓고 보아도 그렇다. 경제학상까지를 포함해서 노벨상을 수상한 스웨덴 사람은 스물아홉명에 이르는데, 이 수치 역시 인구당 수상자 수로는 세계 1위다. 스웨덴이 여러 점에서 모범적인 나라이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수치가 ‘주최측의 이점’과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주최측의 이점’은 세상사의 한 단면이다. 어떤 상도 그런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구나 문학의 크기나 높이를 재는 것은 어차피 어느 정도 주관적인 것이니, 그걸 가지고 스웨덴 한림원(또 스웨덴 한림원과 함께 추천권을 지닌 프랑스와 스페인 한림원)을 물고 늘어질 수도 없다.

노벨 문학상이 ‘불공정’하다고 할 때, 그 불공정의 핵심은 쉴리 프뤼돔이 그 상을 받았는데 톨스토이는 그 상을 받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핵심은 왜 수상자들의 대부분이 유럽어권 사람들이냐는 데에 있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동안 이 상을 받은 작가들은 대체로 영어나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나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로 작품 활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영어권과 프랑스어권과 스페인어권의 수상은 압도적이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제3세계의 작가들도 대체로 그 세 언어로 작품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열한명씩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해서 이 분야의 수위를 나누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대부분이 유럽어권, 특히 서유럽어권에서 나온 이유는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거나 그 둘 또는 셋일 것이다. 첫째는, 지난 한 세기동안의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들은 그 대부분이 유럽어권에서 나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은 우리같은 비-유럽어권 독자들로서는 수긍하기 힘든 설명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자존심을 긁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일면의 진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전 몇 세기동안 그래왔듯, 지난 세기에도 유럽어권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문학적 공간이었다.

둘째는, 노벨상 수상자 추천에 직접적으로 간여하는 스웨덴·프랑스·스페인 한림원이 강한 유럽 중심주의를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주의를 버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힘들다. 한림원 회원들도 유럽인인 이상 유럽 중심주의를 떨쳐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럽어권에서 뛰어난 문학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수상작을 결정하는 유럽인들의 자기 중심주의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한 세기동안의 수상자가 그렇게 유럽어권으로만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한림원 회원들에게는 특별한 유럽 중심주의가 없지만, 그들이 유럽어 - 특히 영어나 프랑스어 - 이외에는 읽을 재주가 없어서 제3세계의 작가들·작품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고려되지 못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 설명에도 부분적인 진실이 있다. 한림원 회원들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까.

사실은 이 세번째 설명에 기초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한국 문단의 ‘노벨 문학상 전략’이다. 우리의 좋은 작품을 영어로, 프랑스어로, 독일어로 계속 번역하자는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단지 위대한 작가여서 노벨상을 탄 것이 아니라 번역자를 잘 만나서 노벨상을 탔다는 말까지 곁들여진다. 그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노력 자체를 비웃을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런 노력이 어느 정도 보답을 받으려면, 한 작품을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영어 한 가지로 많은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영어의 세계 지배는, 이제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분야에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번역 작업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 번 이런 생각도 해 보자. 미래의 어느 땐가 아주 뛰어난 번역자의 손을 거친 뛰어난 우리 작품들이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의 눈에 들어 우리 작가 누군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고 해 보자. 그리고 노벨 문학상이 문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라는 일반적 생각이 옳다고 하자. 그럴 때, 우리 작가 누군가가 받는 노벨 문학상은 한국 문학의 영예일까? 나는 반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림원 회원들이 읽은 작품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번역된 텍스트일 텐데, 이 텍스트를 온전한 ‘한국 문학’ 텍스트라고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문학의 정의에서 언어가 본질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텍스트는 한국 문학 못지 않게 영문학이나 불문학과 더 깊이 관련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두보의 시가 중국 문학의 성과라고 할지라도, 『두시 언해』는 중국 문학 못지 않게 한국 문학과 관련되듯이 말이다. 즉 수상의 이유가 된 텍스트는 한국 작가의 글인 것 못지 않게 번역자의 글인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을 타는 사람은 한국인이겠지만, 수상의 이유가 된 작품들은 부분적으로만 한국 문학일 뿐이다.

외국인들 가운데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늘어난 연후에(즉 한국어로 쓰인 소설이나 시를 번역 과정 없이 읽을 수 있는 외국인 독자층이 두텁게 형성된 이후에), 거기에 기초해서 한국인에게 수여되는 노벨 문학상이야말로 한국 문학에 온전한 영예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열심히 번역하는 작업 못지 않게,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보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업에 문화관광부나 교육부의 손길이 좀더 자주 미쳤으면 좋겠다. 외교통상부도 거들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