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하버드대 음대 페인 홀(Paine Hall). 5백개의 객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통로까지 빽빽이 들어선 미국 청중들은 동양에서 날아온 조그만 체구의 시인이 뿜어대는 혼이 깃든 시낭송에 숨을 죽였다. 콧대높은 미국 동부의 지식인들이 한국 시의 정수와 만나는 순간이었다. 대산문화재단,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뉴잉글랜드 한인회가 공동 주최한 ‘고은 시인의 밤’이 바로 그 문향(文香) 넘치는 무대였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당대 미국 문단의 첫손 꼽히는 시인인 로버트 하스(前 미의회 계관시인, 버클리대 교수)가 자리를 함께 해 그 중량감을 더했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인 카터 에커트 교수의 개회사와 하버드대 한국학과 데이비드 맥켄 교수의 고은 시세계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 등단한 로버트 하스는 80년대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처음 접했던 고은과 한국문학에서 받았던 깊은 감흥에 대해 털어놓았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그 뿌리가 닿아있는 고은의 선시(禪詩)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어진 시낭독에서는 카터 에커트, 데이비드 맥켄, 그리고 중국 문학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스티브 오웬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하스가 차례대로 영어로 번역된 고은의 시를 낭송하고, 고은 시인이 그에 해당하는 한국어 시를 낭송했다. 시에 취한 방청객들 중에는 96년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하버드대 영문과 시창작 교수에 오른 조리 그래함이 있어 주목을 받았다. 또한 행사 중간중간에는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가수 최성수의 노래와, 고은의 시 「가을 편지」를 춤으로 각색한 무용가 김선호의 공연이 곁들여졌다.
멕시코 시낭송 및 출판기념회
대산문화재단의 번역지원을 받은 고은시선집 『불타는 샘』의 출판을 기념하여 고은 시인 멕시코 시낭송회 및 출판기념회가 재단의 지원으로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되었다.
11월 25일에 열린 멕시코시티 시낭송회 및 출판기념회에서는 공동주최자인 엘 콜레히오 데 메히코의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장인 벤하민 프레시아도 박사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번역자 서성철․파시엔시아 온타뇬씨의 고은 시세계에 대한 발표, 고은 시인과 알바로 무티스, 엘자 크로스 등 멕시코 시인의 고은 시 낭송 순으로 진행되었다. 27일에는 멕시코시티의 한 식당에서 고은 시인 부부와 멕시코의 저명시인, 비평가 약 15명이 참석하여 서로의 시를 낭송하고 문학관을 교류하는 ‘멕시코 시인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30일에는 과달라하라의 국제도서박람회장에서 『불타는 샘』출판기념 시낭송회가 현지 비평가 리카르도 카스티요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과달라하라의 ‘국제도서박람회’는 40여개국의 출판․문화관계자 1만여명이 참가하는 미주지역에서 가장 큰 문화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고은 시인은 국제도서박람회의 초청으로 파블로 네루다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였다.
고은 시인은 시카고대 전미시인대회(외국시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 파리 세계시인대회 등에 참가해 한국문학과 그의 시를 알리고 2000년 2월, 1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