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단편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으로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서정인은 그 수상 인사에서 “우리말을 잘 쓰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이 그에게만이 아니라 그의 창작집에 작가의 머리말 대신에 수록된 그 인사말을 읽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한국인의 모국어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상실하고 뜨내기처럼 경박해져 가는 오늘의 우리 삶의 추한 꼴을 벗겨내는 일의 기본에 말의 올바른 사용법이 서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정인은 작중 인물을 통해 “국어좀 제발 제대로 써라. 제나라 말이라고 아무렇게나 써도 좋다는 법 없다”(「치과의사의 죽음」)고 당부하고, 우리가 상용하는 외래어도 대부분 ‘상업용 승용차(택시)’ ‘영상띠(비디오 테이프)’ 식으로 우리말로 바꾸어 쓰고 있다.

  한 편의 중편과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된 그의 근작 소설집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은 그 우리말들의 갖가지 놀이를 활달하게 벌이고 있다. 그 말놀이판은 가령 효과는 비슷하지만 그 수법은 전혀 다른 고어체의 박상륭의 것과는 달리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의 말들을 재료로 하고 있다. 그래서 어휘가 쉽기는 하지만, 늘리고 틀고, 줄이고 뒤집고, 재우쳐묻고 시침떼는, 그래서 읽고 따지기가 까다로워지는 이 말들의 장난이 때로는 판소리이고 재담 같으면서도 그 대부분은 지문과 대화, 독백과 토론의 구분이 사라지고 그래서 화자가 애매해지기도 하고 주인공이 사라지기도 해서 줄거리를 건져내는 데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까다로움과 힘듦을 이겨내면 우리는 우리말의 재미와 묘미, 읽기의 흥겨움과 신선함을 즐기게 되고, 읽어낸 다음의 되생각하기와 바로보기의 사유에 젖어들게 된다. 이 수법은 『달궁』 이후 그만이 쓸 수 있고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특유의 대화적 문체이다.

  그러나 그의 말놀이는 그저 놀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형태 실험’이 의미론적 효과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서정인 문학의 독자성이 숨겨져 있다. 그는 말의 놀이를 통해 그 말이 진상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인지, 진의를 전달하는 책임을 바르게 전달하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그래서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억압되며 실종되는가를 우리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언어의 진리 발견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서정인의 요설 같고 만담 같기도, 동어반복 같기도 한 대화체 문체는 허위를 벗기고 은폐를 젖혀 바로 그 진술을 찾아내는 방법적 수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방법이기에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른바 서사적 구조로서의 줄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기승전결의 리얼리즘적 이야기에 작가는 그리 매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의 작품들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중편 「무자년의 가을 사흘」은 여순 사건과 6․25전쟁 때의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작가의 성장 소설로서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몸과 마음이 자라며 이 세계를 “가슴으로 겪으며” 깨우쳐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잠적」은 고지식한 주인공이 누군가에 의해 이유도 모호하게 기도원으로 납치되어 가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와 과정이 아니라 말을 말로써 곧이곧대로 캐묻는 사람이 그것을 무책임하게 쓰는 사람들에 의해 추방되지 않을 수 없는 말의 현실의 모순이다. 그것은 말의 올바른 사용이라는 도덕적 책임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도덕성의 문제는 「치과 의사의 죽음」에서도 여전히 신랄하게 제기되는데 이 역시, 의사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예절 없이 법도에 어긋나는 세태에 대한 풍자가 작품의 골격을 이룬다. 독백과 지문의 구분 없이 이어지는 「생일」은 “제 정신이 아닌” 오늘의 우리 갖가지 모습들을 해학적으로 그려주고 있고 작가의 여행기라 할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은 동행하는 여자와 그 자신이 이것저것 상실하거나 만남을 이루지 못하는 우수 어린 장면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과 묘사들은 독자에게 자칫 어리벙벙하나마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기운을 일구고 있지만, 작가의 초기작 『강』에서 범람하던 삶의 페이소스가 여전히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살아간다는 일 자체가 허망하고 무의미하며 현실적인 실효성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비판과 반성, 그것들을 감싸안는 해학과 슬픔이 말들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서정인의 서정성은 오늘의 문학이 기능주의적 현대인에게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그러나 그 읽어내기가 까다로운 문학적 호소력의 아름다운 본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