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대산문화재단은 학생들이 문학과 친숙해지고 생생한 현대문학의 흐름을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문예교육프로그램으로 ‘중고교순회 작가와의 대화’를 교보문고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 원고는 지난 11월1일 성심여고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 강사로 참석한 소설가 안정효씨의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책이란 인생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책을 읽는 기쁨은 숲 속을 산책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나는 한 때 매년 신정연휴가 끝나면 설악산으로 등산을 가곤 하였다. 연휴를 피해 가는 이유는 일부러 사람들이 별로 없는 때를 택해 혼자 등산을 하다보면 여럿이서 함께 산을 오를 때 보지 못했던 세세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새, 거미줄, 작은 얼음조각 등.

문학이란 작가들의 체험에서 나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는 문학을 통해 작가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고 거기서 세세한 많은 것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생텍쥐페리는 「야간비행」이라는 소설에서 편지배달을 하는 비행기조종사의 삶을 통해 비행조종사이기도 한 작가 자신이 별을 보며 비행하던 중 경험하고 사색했던 것들을 말해주고 있으며, 주인공이 안데스 산맥에서 추락하여 기적적으로 생환하나 결국 사망하고 마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때로는 문학작품을 영화를 통해 쉽게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작을 통해 읽는 기쁨은 영화를 통해 얻는 감동의 몇배 이상이다. 원작을 제대로 영화화하려면 10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거닐던 자작나무 숲사이로 드리우는 빛을 영화로 본다면 잠시 스크린을 스치는 화면의 인상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원작을 읽고 난 후 직접 숲 속을 거닐며 그 사이로 내리쬐는 빛을 볼 수 있었을 때 소설 속의 닥터 지바고가 거닐었던 배경이 지금과 같지 않을까 나름대로의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문학은 과거 뿐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게도 해준다. 이미 1백여년 전에 쓰여진 해저 2만리에서 잠수함을 만나게 되고 로봇라는 용어가 과거 희곡에 처음 등장했음을 알게되기도 한다. 우리가 현재 밀접하게 접하고 있는 TV와 정보의 바다라 하는 컴퓨터는 정보의 알갱이가 빠진 표피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다. 진정한 정보는 찾는 것보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진정한 정보의 획득은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는 정보는 진정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이 입시를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인생의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정보만을 얻는 것이다. 입시준비를 위해 독서평을 보고 모범독후감을 암기하는 것은 책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닐라 고통만을 안게 되는 것이다. 숲 속을 거닐며 만날 수 있는 세세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오직 책의 제목과 저자, 내용만을 암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독서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비슷하다. 과일을 먹기위해 그때 그때 다른사람의 수고를 얻어먹기보다는 당장 힘들더라도 과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 보다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장의 입시를 위해 1백권의 책을 아는 것보다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 책에 대해 배우는 것이 잠시 앞의 요령을 배우는 것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큰 수확을 위한 나무를 심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빠른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노력이 없는 빠른 성공은 빠른 퇴보만을 가져온다. 일찍부터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우물을 파고 한 그루의 나무를 심기보다는 한 우물 한 우물, 한 그루 한 그루에 정성을 기울여 가능한 많은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길 바란다. 즉 한 권 한 권 많은 독서를 하길 바란다.

덧붙여 학생인 여러분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우려 하지 말길 바란다. 가르치는 것을 모두 배울 수는 없다. 기껏해야 70-80%의 가르침을 배우면 성공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면 인간은 계속 퇴보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르침을 받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스스로 배워간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하고 배워야 한다. 독서를 통해 보지못한 세상을 만나고 세상의 가르침을 배워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