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문단의 화제는 단연 정영문의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일 듯하다. 한무숙문학상과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거머쥐며 ‘문학상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문제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영문 작가가 받게 될 총 상금액만 1억1000만원에 이른다. 작가는 대산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며 “올해 상 세 개를 연거푸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긴 하지만 한 작가가 상을 독점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짐짓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6년 등단한 정영문 작가는 16년 동안 12권의 책을 썼지만 팔린 책은 다 합쳐도 2만부가 안된 정도. 해외 소설을 번역해 생계를 꾸려온 그에게 수상 소식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됐을 터다.
『어떤 작위의 세계』는 뚜렷한 줄거리도 플롯도 없다. 과거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았을 때의 기억과 그 5년 뒤의 이야기로 나눠진 이 소설은 그래서 읽기에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물론 그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인지라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쳐 시작 페이지를 정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발생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동인문학상 심사평)거나 “사소한 것 중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한무숙문학상 심사평)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상 3관왕’이라는 타이틀 덕인지 『어떤 작위의 세계』는 국내소설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그렇지만 영화나 드라마 원작 소설로 눈길을 끈 책을 제외하고 올 가을 출간된 순수 문학 작품의 성과는 다소 빈약하다. 입양아의 친모 찾기 과정을 그린 김연수의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정도가 선전하고 있을 뿐이다. 김연수 작가는 올 초 장편소설 『원더보이』를 펴낸 뒤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선보이고 잇따라 또 하나의 장편소설을 출간하면서 그 폭과 깊이에 있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임을 보여줬다.
중견작가들도 잇따라 신작을 내놓으며 건재를 알렸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소설가로 꼽은 이승우 씨가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를 출간했고 『경마장 가는 길』로 1990년대 한국문단에 충격을 던졌던 하일지 씨도 신작 장편소설 『손님』을 펴냈다.
쓸쓸한 가을에 찾아든 반가운 편지처럼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인 작가도 많았다. 과작(寡作)의 작가라 불리는 이혜경 씨가 6년 만에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를 펴냈고, 그의 첫 소설집 『그 집 앞』도 재출간됐다. 최수철 씨도 소설집 『갓길에서의 짧은 잠』으로 5년 만에 독자를 찾았다. 장편소설만 썼던 한강 씨도 12년 만에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시집 중에서는 진은영 시인이 4년 만에 내놓은 시집 『훔쳐가는 노래』가 출간과 동시에 시 부문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문정희 시인의 『카르마의 바다』도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기택 시인이 3년 만에 펴낸 『갈라진다 갈라진다』 또한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문인들은 신작이나 수상 소식 등으로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마련이지만 올 가을에는 좀 낯설고 생소한 영역에서 시인과 소설가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12월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문인들이 대선 후보의 캠프에 속속 합류하거나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신경림ㆍ안도현, 소설가 윤대녕ㆍ공지영 씨 등이 문재인 후보 캠프의 문학ㆍ시민사회 멘토단에 합류했고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인 조정래 씨가 안철수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문인들의 정치참여가 본격화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를 다룬 르포르타주 『의자놀이』 등을 펴내며 사회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공지영 씨는 자신의 신간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ㆍ사회ㆍ노동ㆍ사랑ㆍ아픔 등 사람의 모든 삶을 다루는 작가가 정치만 다루지 않는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학과 정치의 역학관계는 늘 논쟁적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중국 작가 모옌(莫言)을 둘러싼 논란이다. 중국 국적을 가진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에 대해 중국 내부에서도 그의 친정부적 성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사실상 준정부기관에 가까운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을 맡고 있는 모옌을 수상자로 결정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에 대해 “중국 당국과의 거래 의지를 반영한 것”(중국 반체제 인사 웨이징성)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모옌의 작품은 판타지와 리얼리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을 결합하는 한편 중국 전통 문학과 구비 문학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아 중국 사회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모옌이 수상자로 결정되며 한국의 고은 시인과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경합한 노벨문학상 한·중·일 삼국지는 중국의 승리로 끝난 셈이 됐다.
과거와 달리 ‘노벨상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모옌의 작품은 수상을 계기로 속속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모옌의 『열세 걸음』도 최근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100번째 책으로 번역ㆍ출간됐다. 특히 올 가을에는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다양한 해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세계문학전집 출간이 홍수를 이루며 세계문학전집의 질과 양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출판 시장에 쏟아지는 세계문학전집은 해외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갈증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세계문학전집 출간의 선두주자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11월초 『이상 소설 전집』을 출간하며 300권을 돌파했다. 1998년부터 책을 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그동안 25개국 1백75명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했고 15년간 천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9년 『안나 카레니나』로 시작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도 백권을 넘었다. 게다가 창비가 지난 10월 ‘창비세계문학’ 발간에 뛰어들며 세계문학전집 대전은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창비는 이번에 오스트리아 작가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딩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했으며 출간이 예정된 90종의 소설 중 30권 정도는 초역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양한 해외 작품 등이 소개되며 국내 문학의 지평과 질이 넓고 깊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