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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를 따라서_ 블룸을 따라 더블린을 걷다

글과 사진 ㅣ 나희덕_시인,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6년생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등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리피 강변의 야경

 
 
1. 사랑하는 더러운 더블린

▲1932년에 나온 『율리시스』 일본어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주인공 리오폴드 블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돼지콩팥이다. 지금도 6월 16일 블룸스데이(Bloomsday)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돼지콩팥을 먹으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블룸은 푸줏간에서 싱싱한 돼지콩팥을 사다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내에게 차를 끓여다주는 선량한 남편이다. 또한 소심한 시민이자 낭만적인 구석을 지닌 중년의 샐러리맨이다. 그 평범한 남자의 하루를 서사적 영웅 오디세우스의 일생과 맞먹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율리시스』다.

22살에 노라 바너클을 만나 사랑의 도피를 떠난 제임스 조이스는 트리에스테, 로마, 파리, 취리히 등을 떠돌며 방외인으로 살았지만, 그의 문학은 한 순간도 “사랑하는 더러운 더블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식민의 역사와 음주, 폭력, 가난, 섹스, 무기력, 정치적 부패, 종교적 위선 등으로 얼룩진 아일랜드를 자신이 잘 닦아낸 소설에 비치게 만들었다. 특히 더블린은 그가 사랑했고 증오했던 아일랜드의 심장과도 같았다. “나는 언제나 더블린에 대해 쓴다. 더블린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 말처럼 그는 더블린이라는 고유명사를 세계문학의 일반명사로 바꾸어 놓았다. 더블린은 조이스의 소설을 통해 독특한 색채와 냄새, 소리와 풍경을 지닌 문학적 장소가 되었다.

▲타임 지 표지에 등장한 제임스 조이스


그래서인지 더블린에서의 며칠이 내게는 실제 도시가 아니라 소설 속의 공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더블린이 소설을 낳은 게 아니라 그의 소설 속에서 더블린의 이미지가 생겨났다고 할까. 실제로 더블린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지만, 조이스의 소설처럼 속내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며칠 동안 같은 장소를 몇 번씩 다시 지나치게 되고, 같은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되고, 어이없는 곳에서 길을 잃거나 시간을 허비하고, 애써 찾아가면 문이 닫혀 있고…… 그럴 때마다 『율리시스』라는 미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오늘날의 더블린은 더 이상 조이스의 묘사처럼 “잿구멍과 묵은 잡초와 고기 찌꺼기의 악취가 분분한” 도시가 아니었다. IT강국의 문화예술도시로서의 품격과 낭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바깥의 비판자’를 포용할 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기리고 있었다. 지금도 더블린의 중심가에는 그의 청동입상이 서 있다. 그는 유목민답게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고 왜소한 체격, 약간 삐딱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 불편한 한쪽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 그 입상 아래 피부색이 다른 행인들이 무심하게 앉았다 간다. 동상 바로 뒤에는 그의 단골카페였던 킬모어(kylemore)가 아직 남아 있다. 더블린을 누구보다 불편해했던 그가 이제는 더블린의 가장 편안한 의자가 되어 있는 듯했다.(중략)
 
▲마텔로 탑에 재현된 『율리시스』 1장의 무대

 
*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2012년 겨울호 지면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